컨텐츠 바로가기

07.03 (수)

20대 여성, 야구판 큰손 되다…“팀 성적이 최고의 복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기아 타이거즈팬인 홍도연(왼쪽)씨가 지인을 데리고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를 방문했다. 홍도연씨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야구는 선수가 한다. 하지만, 야구장 분위기는 관중이 주도한다. 요즘에는 20대 여성이 관중의 축이 됐다. 이들은 좋아하는 선수의 응원가를 목청 터지라 외치고, 팀 승리를 위해 원정 경기도 불사한다. “공 하나하나에서 나오는 재미”에 집중하는 20대 여성은 이미 야구판의 큰손으로 떠오른 지 오래다.



한겨레가 입장권 티켓 판매 대행사인 인터파크티켓(두산 베어스·키움 히어로즈 등 2개 구단)과 티켓링크(롯데 NC 제외 나머지 6개 구단)를 통해 최근 세 시즌 (2022∼2024년 6월16일) 동안 입장권 구매자의 연령별·성별 비중 추이를 입수해 살펴보니, 20대 여성의 야구 사랑이 최근 두드러졌다. 인터파크티켓의 경우 3년 내내 여성 구매자 비중이 남성 구매자보다 높았고, 여성 구매자 중에서도 20대 비중이 42.3%→47.8%→47.9%로 거의 절반에 육박했다. 티켓링크에서는 여성 구매자 중 20대 여성 비중이 최근 3년간 비약적(36.4%→37.8%→41.4%)으로 늘었다.



한겨레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올해 발간된 2023년 ‘프로스포츠 관람객 성향 조사 보고서’에도 프로야구 고관여팬(관심 있는 리그의 지난 시즌 우승팀과 응원 구단의 선수를 모두 알고 있고 유니폼을 보유한 응답자) 6316명 중 63.8%가 여성이었고, 연령별로는 20대(37.7%)가 전 연령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여성, 그중에서도 20대에서 프로야구 찐팬(어떤 대상에 열정적인 팬)이 많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응원 문화는 20대 여성이 야구에 열광하는 요소 중 하나다. 2013년부터 엘지(LG) 트윈스팬인 김민지(28)씨는 “현장에서 보면 그 순간에 굉장히 몰입하게 되고 그에 따른 희열이 (TV로 보는 것과) 다르다. 팬들끼리 모여 한 팀을 응원하고 환호하는 소리도 같이 들리다 보니, 더 흥이 난다”고 설명했다. 기아팬인 홍도연(25)씨 또한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데, 야구장은 커다란 노래방과 같다고 느꼈다. 좋아하는 선수가 타석에 설 때마다 나오는 응원가는 중독성도 강해 부르고 나면 집에 가서도 흥얼거리게 된다”며 직관만이 지닌 매력을 전했다.



야구장은 연고지를 중심으로 전국에 퍼져 있어 장거리 이동이 어려운 청년들에게 접근이 용이하다. 특히 문화생활에 갈증을 느끼는 청년들이 야구장으로 향하고 있다. 전주에 사는 홍도연씨는 “가수 콘서트 비용은 비싼 데다 수도권으로 가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이에 비해 야구장은 상대적으로 가깝고, 경기도 매일 있는 데다 가격도 만원대로 저렴하다”고 강조했다.



올 시즌 KBO리그 독점 중계권을 따낸 티빙이 경기 영상 재가공을 허용하면서 야구를 접할 통로가 늘어난 영향도 있다. 지난 시즌까지 프로야구 중계권을 쥐고 있던 포털·통신사 컨소시엄은 영상 재가공을 막아왔다. 김민지씨는 “야구 경기 도중 웃긴 상황을 담은 짧은 영상이나 숏츠에 재미를 느끼는 친구들이 실제로 야구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있었다. 구단이 유니폼도 다양하게 내놓고 있는데 20대 여성들의 관심 분야에서 마케팅을 많이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대 여성이 점점 야구판의 큰손으로 자리잡고 있으나 여전히 남성 중심적 시각이 많다는 의견도 있다. 키움 팬인 원윤아(26)씨는 “해설진들이 여성팬들이 많이 늘어났다는 말을 종종 하는데, 시대착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키움은 원래 여성팬이 많았다”고 지적한 뒤 “이미 야구장 풍경은 바뀐 지가 좀 됐는데, 굳이 (해설진이) 여성팬 증가를 계속 말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다”고 꼬집었다.



지난달 30일 키움의 방문 경기를 보려고 광주챔피언스필드를 찾았던 원씨는 “어렸을 때부터 야구를 봐왔고, 아버지를 따라 키움을 응원하게 됐다. 올시즌에만 직관을 10번 이상 갔다”며 야구를 향한 팬심(무언가를 열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드러냈다.



한겨레

기아 타이거즈팬인 홍도연씨가 지인들과 함께 광주챔피언스필드를 찾아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홍도연시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각 구단들은 관중 변화에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대표적인 구단이 키움이다. 키움은 20대 여성을 포섭하기 위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2012년부터 수도권 여자대학을 대상으로 특강을 진행했고, 여대생들의 단체 관람 행사를 꾸준하게 열고 있다. 키움 관계자는 “20대 여성을 코어 타깃으로 삼아 팬덤을 형성하고 구단을 향한 로열티가 형성되면 프로야구 산업화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키움은 여성 팬 유입으로 엠디(MD·상품) 매출과 관중 수가 동반 상승했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20대 여성들이 야구단에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선수들이 다치지 않고 야구만 잘하면 된다.” (홍도연), “그 어떤 마케팅보다 성적이 (팬들에겐) 복지다.” (김민지), “바라는 건 야구를 잘하는 것뿐이다.” (원윤아) 결론은 성적인 셈. 여느 해보다 더 치열한 순위 다툼이 팬들을 야구장으로 끌어 모으고 있고, 20대 여성팬도 예외는 아닌 셈이다.



프로야구는 1990년대 중반 X세대 선수들을 내세워 ‘오빠 부대’를 야구장으로 끌어모았다. 최근에는 박진감 넘치는 경기력으로 20대 여성을 ‘찐팬’으로 만들고 있다. 이들을 야구장으로 계속 이끌기 위한 방법도 결국 경기력이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