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21일 옛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직후 쉬고 있는 11공수여단 부대원들. 5·18조사위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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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민들이 1980년 5월21일 옛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 현장에 있었던 계엄군 지휘관 2명을 고발했다.
5·18기념재단과 5·18유족회, 5·18공로자회, 광주시민단체협의회, 광주진보연대는 26일 공동 보도자료를 내어 집단살해죄, 살인죄, 내란죄 등의 혐의로 최웅 5·18 당시 11공수여단장, 안부웅 11공수여단 61대대장을 대검찰청에 고발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최 여단장과 안 대대장이 1980년 5월21일 오후 1시께 옛 전남도청 앞에서 11공수여단이 집단 발포로 광주시민을 학살할 때 발포를 지시했거나 사격 중지를 명령하지 않은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당시 발포로 시민 36명이 총을 맞아 숨졌고 이 중 18살 이하 미성년자는 9명이라고 밝혔다.
안 대대장은 당시 도청 앞에 배치된 공수부대(11공수여단 61·62·63대대, 7공수여단 35대대)의 선임대대장으로서 최 여단장에게 4개 대대에 대한 지휘권을 위임받았다. 최 여단장은 전투병과교육사령부(상무대)에 머물며 안 대대장에게 작전을 지시 했다.
5·18단체는 “집단살해죄는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의 적용을 받아 공소시효가 배제된다”며 “검찰총장은 수사와 공소제기, 공소유지를 담당할 검사를 이른 시일에 배정해 엄벌에 처해주길 요청한다”고 밝혔다.
앞서, 5·18조사위는 12일 5·18 관련 계엄군 현장지휘관과 명령 수행자 14명을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광주시는 이날 입장문을 통해 5·18조사위 활동 종료를 맞아 항구적인 5·18조사기구를 설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광주시는 “5‧18조사위가 핵심 쟁점을 제대로 밝히지 못한 미완의 상태로 막을 내려 아쉽다”면서 “발포 책임, 행방불명, 은폐‧조작 사건 등 5‧18진상규명을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항구적 조사기구를 설치해야 한다”고 밝혔다.
광주시는 또 5‧18민주화운동기념사업기본법(가칭) 제정 등 국가 권고사항 이행 촉구, 5‧18기록물 연구‧조사 기반 구축, 5‧18정신 헌법전문 수록 등에 대해서도 촉구했다.
김용희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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