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9 (토)

개인수익 300억, 슈퍼카 7대 굴렸는데… 법원은 “37억만 불법”[히어로콘텐츠/트랩]③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

<3> 플랫폼 사채 총책의 ‘사냥법’

불법사채의 주 무대는 이제 거리가 아니라 휴대전화 화면이다. 대다수 조직은 더는 전단이나 명함을 뿌리지 않는다. 온라인 대부중개 플랫폼을 통해 전국에서 영업할 수 있어서다. 대출부터 추심까지 모든 게 비대면이라 흔적도 안 남는다. 지난해 3월 검거된 불법사채 조직 ‘강 실장’ 조직 역시 그랬다. 걸리지 않고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에 불법사채에 발을 들이는 이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강 실장은 검거됐지만, 지금도 플랫폼에는 수많은 강 실장이 ‘먹잇감’을 찾고 있다.

“피고인,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시죠.”
“93××××입니다.”

5월 29일 춘천지방법원 102호 법정. 피고인 박성훈(가명)은 판사의 물음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는 갈색 수의(囚衣)를 입고 있었다. 형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날은 박성훈의 항소심 첫 재판이었다.

생년월일과 주소를 확인한 후 박성훈은 피고인석에 앉았다. 양옆의 공범들보다 앉은키가 주먹 하나만큼 작았다. 볼은 폭 들어갔고 피부는 푸석했다. 박성훈의 변호인은 양형 부당 등을 항소 이유로 들었다. 그는 앞서 2월 1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판사가 재판을 마치자 공범 2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박성훈 혼자 판사를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박성훈은 재판에 넘겨진 지난해 4월 이후 이날까지 반성문을 230차례나 제출했다.

지난해 봄까지 그는 불법사채 조직의 총책 ‘강 실장’이었다. 강 실장 조직은 2021년 2월부터 장사를 했다. 뒤를 봐주는 폭력조직이나 전주(錢主)는 없었다. 강 실장을 수사한 경찰은 “젊은데도 돈으로 사람을 조종하는 수를 꿰뚫고 있었다”고 했다.

경찰이 압수한 강 실장 조직의 대포통장에는 피해자 1000여 명을 대상으로 1000억 원대 불법사채를 굴린 흔적이 나왔다. 지난해 3월 붙잡혔을 때까지 강 실장이 챙긴 것으로 의심된 범죄수익은 약 300억 원이다. 하지만 추징이 명령된 돈은 6억6635만 원에 그쳤다.

동아일보

‘강 실장’ 조직의 총책은 평범한 외모의 서른한 살 청년이었다. 강 실장 박성훈(가명·가운데)이 지난해 3월 서울 서초구에서 경찰에 검거될 당시 모습. 강원경찰청 제공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은 강 실장 조직이 덫을 친 과정을 재구성하기 위해 전직 조직원과 변호인, 피해자, 수사 경찰 등 18명을 인터뷰했다. 이들의 판결문 26건을 분석해 사실과 주장을 골라냈다. 주먹을 쓰지 않고 오직 휴대전화로 돈을 뜯어내는 ‘플랫폼 사채’의 세계 한가운데 강 실장 조직이 있었다. 강 실장 조직이 거액을 굴린 첫 번째 비결은 ‘대부업 등록증’이었다.

● 스물셋 총책 ‘민 실장’

강 실장이 되기 전, 박성훈은 ‘민 실장’이었다. 그는 스물세 살이던 2016년 7월 불법사채 조직을 만들었다. 그때만 해도 몇몇 대부중개 플랫폼에는 아무나 광고할 수 있었다. 불법사채 광고가 문제가 되자 모든 플랫폼이 2017년부터 대부업 등록증을 요구했다. 이후 박성훈은 자기 명의로 정식 대부업체를 차렸다. 서울의 한 건물 지하에 작은 사무실을 빌리고 구청에서 대부업 등록증을 받아왔다.

그렇게 박성훈은 불법사채 조직 총책이자 정식 대부업체의 사장이 됐다. ‘소액 대출 당일 가능, 금리는 법정 이율 준수’. 거짓 광고를 올렸다. 민 실장 조직은 이 ‘미끼’를 보고 연락한 사람을 표적으로 삼았다. 30만 원을 빌려주고 일주일 뒤 50만 원을 받아내는 연이율 3476% 고리 영업이 표준 방식이었다. 제때 안 갚으면 피해자를 겁박했다. 그렇게 1년 동안 21억 원을 뜯어냈다.

박성훈의 이중생활은 피해자 신고로 2017년 경찰에 검거되면서 막을 내렸다. 압수수색 당시 그의 집에선 일본 사채업계를 다룬 만화책 ‘사채꾼 우시지마’가 나왔다. 그에겐 대부업법 위반뿐 아니라 범죄단체 조직 혐의가 적용됐다. 박성훈은 정식 대부업체를 운영했을 뿐인데 일부 직원이 불법을 저지른 거라고 잡아뗐다.

동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박성훈은 실명 석 자가 적힌 등록증으로 플랫폼에 광고를 냈을 뿐 아니라 구인 광고도 직접 올렸다. 조직원과도 얼굴을 맞대고 일했다. 그게 패착이었다. 판사는 “사채 조직 전면에 나서서 조직 관리와 운영을 주도했고, (대부업 등록증은) 오직 그 명의로 광고를 내서 피해자의 전화번호를 얻는 데에만 썼다”며 징역 3년을 선고했다. 항소심과 대법원 판단도 같았다. 2020년 11월 출소한 그는 다른 사람이 되기로 했다. 출소 석 달 만에 새로운 불법사채 조직을 만들고 ‘강 실장’이라는 새 가면을 썼다.

● ‘강 실장’의 탄생

강 실장이 된 박성훈은 첫 번째 실수를 바로잡았다. 자기를 외부에 드러내지 않고 철저히 그늘에 숨겼다. 이번엔 대부업 등록증도 돈을 주고 사 오기로 했다. 등록증 조달은 ‘막 사장’에게 맡겼다.

“저는 등록증이 뭔지도 몰랐어요. 관공서에서 발급해 주는 거니, 불법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시키는 대로 한 거예요.”

취재팀과 만난 막 사장은 자신은 ‘심부름꾼’이었다고 주장했다. 막 사장은 강 실장의 부탁대로 대부업체 바지사장을 수소문했다. 강 실장이 보낸 문자메시지에는 대부업 등록 절차가 상세히 정리돼 있었다. 강 실장은 등록증 한 장당 300만~500만 원을 줬다. 그렇게 강 실장이 사간 등록증이 10장 내외였다고 한다.

동아일보

강 실장 조직이 ‘던지기’ 방식으로 현금을 주고받았던 강원 원주시 중앙고속도로 인근의 한 인적 드문 굴다리.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막 사장은 인터넷주소(IP주소) 추적을 피하기 위한 휴대용 와이파이를 구해줬다. 범죄수익을 배달하는 역할도 했다. 조직원이 야산 등 인적 드문 곳에 현금 상자를 숨겨두면 막 사장이 이를 도심 모텔이나 오피스텔로 옮겼다.

현금을 나를 땐 강 실장이 정한 규칙을 철저히 따라야 했다. △폐쇄회로(CC)TV가 없는 곳에 주차하고 걸어서 이동하기 △누구와도 잡담하지 않기 △퇴근할 때도 거처에서 3km 이상 떨어진 곳에 주차하기. ‘안전운전’도 수칙 중 하나였다. 조직원의 안위를 걱정해서가 아니었다. 현금을 옮길 때 대포차를 사용했는데, 교통사고가 나면 들통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동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막 사장은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강 실장 조직에서 이렇게 여러 역할을 동시에 맡은 건 막 사장 외엔 거의 없었다. 1심 법원은 “(막 사장은) 총책으로부터 상당한 신뢰를 얻었다”고 판단했다. 막 사장도 이 부분은 인정했다. “제가 배달 사고는 안 냈거든요. 배달 물건이 뭔지 알려주진 않았지만 딱 보면 현금인 거 알잖아요. 욕심도 났지만 괜히 건드렸다간 뒤탈이 날 수도 있고, 무엇보다 ‘롱런’하고 싶었어요. 어느 날 강 실장이 그러더군요. ‘사장님은 착실히 일해주시네요’라고요.”

● 그림자 총책

강 실장은 조직 안에서도 철저히 자신을 숨겼다. 민 실장 때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조직은 점조직으로 설계했다. 콜팀은 피해자의 연락처만 수집했다. 상담팀은 대출 계약을 맺고, 수금팀은 빚 독촉을 담당했다. 인출팀은 현금 출금을, 수거팀은 현금 배달을 맡았다. 조직원은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섬처럼 각자 맡은 일만 처리했다. 이건 민 실장 때도 써먹었던 방식이다. 과거 항소심 재판부가 “매우 이례적인 방식”이라고 평가했던, 검증된 방식이었다.

달라진 건 강 실장 스스로 조직원의 한 명으로 위장한 것이다. 강 실장 조직에서 1년 넘게 일한 조직원은 취재팀에게 이렇게 말했다. “강 실장은 목소리만 알았어요. 가끔 ‘자기 위에 누가 있다’고도 했어요. ‘실장’이었으니 그 말을 믿었죠. 그가 총책이라는 건 붙잡히고야 알았습니다.”

동아일보

경찰이 압수한 강 실장 조직의 대포폰 등 범행 장비. 신입 조직원이 들어오면 업무 연락은 반드시 대포폰을 사용하도록 철저하게 교육했다. 강원경찰청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신입 조직원이 들어오면 신분증뿐 아니라 가족과 지인 10명 이상의 연락처를 받아뒀다. 조직원이 다른 마음을 품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신상을 채무자나 경찰에 넘기겠다고 겁박했다. 일면식도 없는 조직원을 목소리만으로 통제했던 비결이자, 혹시 모를 ‘배신’을 막기 위한 일종의 보험이었다. 민 실장 재판에서 조직원들이 총책의 범행을 증언한 것을 강 실장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교도소에 수감 중인 한 수금팀 조직원은 2년 전 친구 소개로 조직에 합류할 땐 정식 대부업체인 줄 알았다고 했다. 열흘 정도 일했을 무렵 ‘이건 아니다’ 싶어 그만두려 했지만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총책이라는 사람이 ‘지금 관두면 네 신상 뿌려버린다’고 했어요.” 조직원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강 실장은 채무자도 조직원으로 끌어들였다. 통제하기 쉬운 상대였기 때문이다. 훗날 조직 서열 2위에 오른 ‘서 이사’도 처음엔 채무자였다. 조직원 중 30%가량을 이렇게 채무자 중에서 영입했다.

● 고수익의 유혹

나머지는 첫 조직 때 검증된 수법을 그대로 썼다. 조직원은 구인 사이트에 광고를 내서 구했다. 조직원에겐 같이 일할 사람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 쉽게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은 강력했다. 조직원이 금세 80여 명으로 불어났다.

신입 조직원은 합숙 교육을 받았다. 행동강령을 철저히 주입했다. 조직원끼리 이름 등 신상이나 사생활 묻지 않기, 업무 시엔 대포폰만 사용하기, 공용 와이파이 사용 금지…. 모든 보고와 지시는 대포폰과 텔레그램으로 이뤄졌다.

조직원이 주로 고향 선후배를 새 조직원으로 끌어들이면서 지역 기반이 생겼다. 콜팀은 광주, 상담팀은 서울과 부산, 수금팀은 충북 청주와 충남 천안, 전남 여수에 흩어져 있었다. 여기에 모든 업무가 온라인과 전화, 문자로 이뤄졌기 때문에 이들의 활동 범위는 전국이었다.

대출 수법도 같았다. 대부중개 플랫폼에 접속한 피해자를 노렸다. 철저히 소액만 빌려줬다. 적게는 10만 원, 많아도 150만 원을 넘지 않았다. 그래야 채무자가 이자가 비싸지 않다고 착각해 돈을 더 빌리기 때문이었다. 혹시 채무자가 돈을 빌리고 잠적해도 손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동아일보

지난해 3월 박성훈 자택을 압수수색하던 경찰은 집안 곳곳에서 현금 약 1억 원을 찾았다. 박성훈은 돈의 출처에 대해 “어머니한테 받은 것”이라며 범죄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강원경찰청 제공.


상담팀 조직원은 실적을 채우려고 동시에 같은 피해자에게 경쟁적으로 연락하기도 했다. 돈을 잘 빌리고 갚는 피해자의 번호를 공유하며 다른 업체인 것처럼 접근해 ‘돌려막기’를 유도했다. 사채를 사채로 갚기 시작하면 그 빚은 삽시간에 불어났다. 강 실장 조직에서 25만 원을 빌렸던 한 50대 피해자의 빚이 1억5000만 원으로 늘어나는 데 걸린 기간은 불과 3개월이었다.

● 총책의 아내

얼마를 빌려주고, 누구를 추심하고, 현금은 어디로 배달할지까지. 조직의 모든 의사 결정은 총무팀에서 이뤄졌다. 자금도 총무팀이 관리했다. 총무팀을 이끈 건 박성훈보다 7세 어린 아내였다. 조직 내부에선 ‘아 주임’으로 불렸다. 총무팀은 이 부부의 지인으로만 채웠다. 이들만 부부의 진짜 이름을 알았다.
동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내는 박성훈과 따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총책의) 통제하에 제한된 정보만을 제공받으면서 배정된 업무를 수행했다”고 봤다.

법정에서 만난 아내는 실제 나이보다 어려 보였다. 인터뷰를 요청하자 “죄송하다”, “모든 게 제 잘못”이라며 연신 고개를 숙이면서 정중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조직원이 기억하는 모습은 달랐다. “악랄했죠. 총무팀 직원 중 아 주임만 전화로 ‘일 이따위로 할 거냐’고 막말을 자주 했거든요. 검거된 이후에야 걔가 총책 와이프라는 걸 알았죠.”

● 비대면 추심의 비밀

수금팀은 매일 낮 12시, 오후 2시, 4시 등 하루 세 차례 실적을 보고했다. 부진하면 윗선에서 폭언을 들었다. 심지어 맞기도 했다. 내가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돈을 받아내야 했다. 피해자보다 가족을 괴롭히면 더 빨리 돈을 받아낼 수 있었다.

악랄한 추심의 흔적은 경찰이 압수한 대포폰에 문자메시지 등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한 조직원은 인큐베이터에서 꼬물거리는 채무자의 갓난아기 사진을 보내며 ‘돈 안 갚으면 죽인다’고 협박했다.
동아일보

강 실장 조직이 피해자에게 보낸 협박 문자. 갓 태어난 아이 병원비 등을 마련하려고 돈을 빌린 피해자는 ‘아이가 태어난 게 사실이면 추심을 미뤄주겠다’는 조직원의 꾐에 넘어가 아이 사진을 보냈다. 그것도 덫이었다는 건 협박 메시지를 받고서야 알았다.  강원경찰청 제공


빚을 불리는 것도 수금팀 역할이었다. 상환 시간은 오전 10시로 정해져 있었다. 이를 넘기면 시간당 10만~20만 원을 연체료로 붙였다. 애초에 빌려준 적 없거나 이미 다 갚은 빚을 다시 받아내기도 했다. 조직에선 이걸 ‘돌림’이라고 불렀다. 여러 번 사채를 쓴 피해자는 언제 어디서 얼마를 빌리고 갚았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단, 채무자를 직접 찾아가거나 물리력을 쓰진 않았다. 직접 만나면 흔적이 남아 붙잡힐 위험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동아일보

강 실장 조직이 또 다른 피해자에게 보낸 협박 문자. 조직은 피해자에게서 ‘비상연락망’ 명목으로 받은 가족과 지인 연락처를 볼모로 돈을 뜯어냈다. 강원경찰청 제공


불법사채 피해자를 돕는 이기동 한국금융범죄예방연구센터장은 비대면 추심이 가능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가족과 지인에게 사채를 쓴 사실이 알려지는 걸 두려워하기 때문에 계속 돈을 뜯기게 되는 겁니다. 번듯한 직장인처럼 잃을 게 많은 사람일수록 이런 협박에 더 취약합니다.”

● 배신의 왕국

박성훈은 민 실장 시절 조직원에게 감금돼 폭행당한 뒤 돈을 뺏긴 적이 있었다. 그 조직원은 박성훈의 중학교 선배였다. 300만 원만 빌려달라는 부탁을 박성훈이 거절하자 앙심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

강 실장이 된 박성훈은 조직원을 믿지 않았다. 조직 2인자인 서 이사에게도 본명과 나이를 숨기고 대포폰으로만 연락했다.

동아일보

한 조직원이 교도소에서 보낸 편지. 그는 “강 실장의 정체는 경찰에게 잡히고야 알았다”고 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강 실장이 총책이라는 걸 아는 소수의 조직원도 강 실장을 믿지 않았다. 그래도 그의 밑에서 일한 건 돈 때문이었다. 약속한 월급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불만이 싹텄다. 2022년 가을, 서 이사 등 핵심 간부들이 강 실장을 몰아내고 조직을 장악하려는 ‘쿠데타’를 계획했다. 강 실장이 먼저 알고 쫓아내면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조직원의 배신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무렵 충북 진천에 있는 수금팀이 잠적했다. 강 실장 몰래 채무자 연락처를 빼돌려 따로 불법사채 조직을 꾸린 것. 강 실장은 인출팀을 언제라도 내칠 수 있는 채무자 출신으로 채웠다. 하지만 이들은 강 실장 조직처럼 치밀하지 못했다. 지인에게 현금 인출을 맡겼다가 흔적을 남겨 2022년 11월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이 피해자 가족의 신고로 수사에 착수한 지 2개월 만이었다.

그렇게 강 실장 조직의 존재가 드러났고, 경찰 수사는 윗선을 향했다.

● 가짜 총책들

수사망이 좁혀오자 강 실장은 ‘가짜 강 실장’을 내세웠다. 수거팀 조직원에게 거액을 주겠다며 거짓 자수를 요구했다. 그 조직원은 서울 한 경찰서에 제 발로 찾아가 “내가 강 실장”이라고 자수했다. 박성훈은 그에게 1000만 원 정도를 건네주고 경찰 출신 변호사도 소개해 줬다. 검찰 처분이 나오면 5000만 원을 더 주겠다고 약속했다. 지킬 약속이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거짓 자수가 탄로 났기 때문이다.

박성훈은 지난해 3월 검거됐다. 서울 서초구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나오던 길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전날 필리핀으로 도주하려다가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진 사실을 알고 변호사를 급히 찾았다고 한다.

동아일보

‘강 실장’ 박성훈(오른쪽)은 지난해 3월 서울 서초구 대로변에서 검거됐다. 자신이 쫓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그는 체포 당시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았았지만 범행은 부인했다. 강원경찰청 제공


수사팀 소속이던 배상민 경위(현 강원경찰청 형사기동대)는 체포 당시 박성훈의 모습을 이렇게 기억했다. “자신이 쫓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항하진 않았어요. ‘집 수색은 안 하면 안 되냐’고 하더군요. 수갑 찬 모습은 가족들에게 보이기 싫었나 봅니다.”

그는 검거 후에도 빠져나갈 궁리를 멈추지 않았다. ‘석 부장’을 강 실장으로 몰아갔다. 석 부장은 고교 시절 박성훈을 폭행한 고향 선배였다. 그런데도 강 실장은 그를 핵심 측근으로 부렸다. 돈 앞에선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었다.

올해 2월 14일 박성훈은 1심에서 징역 8년과 벌금 5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죄목은 범죄단체조직과 대부업법 위반 말고도 범죄수익은닉, 범인도피교사 등까지 총 7개였다.

박성훈은 항소했다. 변호인은 “죄는 인정하지만 징역 8년은 너무 과하다”며 “가족 재산을 처분해 합의금을 마련했다”고 했다. 박성훈은 1심 선고를 앞두고 피해자 29명에게 10억 원의 합의금을 줬다. 항소심 재판이 끝나기 전까지 나머지 피해자와 모두 합의할 계획이라고 한다.

● 빙산의 일각

경찰은 8개월간 추적한 끝에 강 실장이 부린 조직원 80여 명뿐 아니라 대포폰, 대포통장 판매자까지 123명을 검거했다. 조직원 대다수는 20대였다. 조직폭력배는 없었다. 경찰이 압수한 대포통장만 300여 개. 그 명세로 파악한 피해자는 1000명이 넘었고, 불법 대출 규모는 1000억 원대로 추산됐다.

강 실장의 수익은 그중 최소 300억 원으로 추정됐다. 그는 월세 1800만 원짜리 서울 성동구 초고급 아파트인 트리마제에 살았다. 람보르기니, 벤틀리, 포르셰, 벤츠, BMW 등 초고가 외제차 7대를 몰았다.

동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

강 실장은 불법사채 수익으로 람보르기니와 벤틀리, 포르셰 등 초고가 외제차 7대를 굴리며 호화 생활을 했다. 강원경찰청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약 37억 원만 불법 대출 규모로 인정했다. 검경에 나와 진술한 피해자가 131명뿐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수사팀을 이끈 이정만 경감(현 정선경찰서 통합수사팀장)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피해자 대부분 연락이 닿지 않거나 진술을 거부해 모두 조사하지는 못했습니다.”

불법사채는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고 숨는 경우가 많아 전체 규모를 파악하기 힘든 대표적인 암수(暗數) 범죄다. 금융감독원 미공개 조사에서 2022년 피해자가 82만 명으로 추정됐지만 그해 접수된 피해 신고는 1만350건이었다.

강 실장의 경우 대출 원금과 법정 최대 이자(연 20%)를 제외한 약 15억 원만 범죄 수익으로 판단됐다. 현행법에 법정 상한을 초과한 이자는 추징 대상이지만, 원금과 법정 이자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그게 불법사채여도 마찬가지다. 그중에서도 박성훈의 추징금은 고작 6억6635만 원이었다. 수익 배분을 정확히 알 수 없어 다른 공범과 똑같이 나눴다. 결국 강 실장은 대포통장에 기록된 불법 대출액의 1%도 내놓지 않게 된 것이다.

공범조차 ‘말도 안 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박성훈보다 먼저 재판받은 한 조직원은 억울하다고까지 했다. “제가 죄가 없다는 건 아닌데요. 저랑 박성훈은 재판부가 달랐거든요. 저는 검사가 구형한 그대로 추징금이 나왔는데, 박성훈은 절반 가까이 깎였더라고요.”

국세청은 지난해 11월부터 박성훈 일가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다. 수사팀 이정만 경감은 “금을 사 모았다는 진술과 정황을 찾았지만, 끝내 발견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박성훈 변호인 측은 이런 의혹에 대해 “사실무근이다. 그 정도 자산이 있다면 합의금을 마련하려고 가족 자산을 처분하겠냐”고 되물었다.

이 같은 입장을 전하자 한 조직원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말했다. “조직이 가장 컸을 때 하루 수익이 1억4000만 원 정도였습니다. 조직 규모가 줄었을 때도 하루 8000만 원은 벌었습니다. 박성훈이 적어도 150억 원 이상은 챙겼을 겁니다. 금으로 월급을 준 적도 있어요.”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만난 전현직 불법사채 조직원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불법사채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불법사채로 돈 벌기가 그만큼 쉽다는 뜻이었다. 불법사채를 막지 못한 원인과, 한때 불법사채로 몸살을 앓았지만 지금은 달라진 일본의 이야기는 26일 오후 공개되는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 4회에서 볼 수 있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부터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트랩: 돈의 덫에 걸리다’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돈의 덫’은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히어로콘텐츠’(original.donga.com)에서 디지털 플랫폼에 특화된 인터랙티브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불법사채 피해자에서 가해자가 된 김민우의 이야기를 디지털로 구현한
‘돈의 덫(상): 덫에 걸린 남자’
(https://original.donga.com/2024/money1)
동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돈의 덫(하): 덫을 놓는 남자’
(https://original.donga.com/2024/money2)
동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실제 김민우의 인터뷰를 담은 유튜브 영상
(https://youtu.be/GKw-RO8lUHo)
동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히어로콘텐츠팀
▽팀장: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취재: 김소영 김태언 서지원 기자
▽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
▽편집: 이승건 황준하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
▽인터랙티브 개발: 임상아 임희래 뉴스룸디벨로퍼
▽인터랙티브 디자인: 황어진 김민주 인턴
▽영상: 송유라CD
동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호경 기자 kimhk@donga.com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