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4 (월)

[현장] 쪽방은 이미 35도 찜통… 무더위 쉼터도 편히 이용 못 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탁상용 선풍기 한 대로 더위를 견디는 동자동 주민 김경정씨의 쪽방. 허윤희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이고, 흉잡힐까 무섭네. 집구석이 너무 지저분해서.”



낮 기온이 30도까지 오른 16일 오후, 서울 동자동 쪽방촌의 김경정(88)씨는 1평 남짓한 방에서 이른 더위와 싸우고 있었다. 옷과 이불 등 살림살이가 가득한 김씨 방의 실내 온도는 35도가 넘었다. 서둘러 방안을 정리하는 김씨 얼굴이 금세 땀으로 범벅이 됐다. “10년 됐어. 이곳에 온 지. 여름이면 항상 고생인데, 올해는 더위가 더 빨리 온 것 같어.” 더울 때 그가 찾는 곳은 집 앞 골목길의 ‘한뼘 그늘’이다. “낮에는 안에 못 있어. 찜통이라서. 여긴 그래도 바람이라도 통하니까.”



동자동 주민 김태선(64)씨가 사는 3층 건물 복도는 빛이 잘 들지 않아 어두웠다. 성인 한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방들은 대부분 1.5평(4.95㎡) 남짓한 크기였다. 3년 전에 이곳에 온 김씨는 “보증금은 없고 월세 30만원 내고 있다. 몸이 안 좋아 이삿짐 일 쉬면서 몇달 치가 밀렸다”고 말했다. 김씨 방에 있는 냉방기구라곤 지난해 중고시장에서 1만원 주고 산 탁상용 선풍기 한 대가 전부였다. “움직이면 더우니 가만히 있으려고. 나가도 어디 갈 데가 없어.” 김씨가 가만히 앉아 ‘포옥’ 한숨만 쉬었다.



한겨레

서울역 건너편에 있는 동자동 쪽방촌. 허윤희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겨레

동자동 주민인 김태선씨의 쪽방. 허윤희 기자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역 뒤 동자동은 전국 최대의 불량주거 밀집지역이다. 현재 900명 남짓한 주민이 모여 산다. 한국전쟁 직후 피난민들이 판잣집을 짓고 살던 곳에 산업화 시기 영세 숙박업소가 난립하면서 자연스럽게 쪽방촌이 형성됐다. 대부분이 50년 이상 된 노후 건물인 이곳은 최저 주거기준 미만의 주거공간으로 불린다.



올해는 6월 중순부터 폭염주의보가 내리는 등 이른 더위가 시작되면서 서울시도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일단 폭염경보가 발령되면 ‘119 안전캠프’를 설치해 간이 응급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쪽방촌 주민을 위한 무더위 대피 공간은 지난해 5곳에서 올해 7곳으로 늘렸다. 주장욱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폭염, 폭우 등 이상기후가 갈수록 극심해지면서 가장 열악한 주거공간에 사는 쪽방촌 주민들이 가장 큰 영향을 받고 있다”며 “기초자치단체들이 무더위 쉼터 확대 등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쪽방촌 주민들이 편히 이용하기엔 심리적, 사회적 장벽이 적지 않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동자동 같은 노후·불량주거 밀집지역의 정비사업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한다. 앞서 정부도 지난 2021년 2월 동자동 쪽방촌 일대 4만7000㎡ 부지를 개발하고 1000여명의 주민을 재정착시키겠다는 ‘서울역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주택·도시재생사업 추진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발표한 지 3년이 지나도록 사업은 제자리걸음이다. 주장욱 상임활동가는 “가난한 세입자를 쫓아내는 방식의 재개발은 안 된다. 주거환경을 전면 정비하되 세입자들이 들어가 살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 건설도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권력에 타협하지 않는 언론, 한겨레 [후원하기]
▶▶한겨레 뉴스레터 모아보기▶▶오직 한겨레에서 볼 수 있는 보석같은 기사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