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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환한 6월에 띄운 결핍과 죽음의 서정시를 번갈아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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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22년 등단한 시인 조성래(32·왼쪽)와 2020년 등단 시인 차도하(1999~2023)의 첫 시집이 나왔다. ‘시로 버틴 삶’의 서정성이 돋보인다. 차도하의 첫 시집은 유고집이기도 하다. 타이피스트·봄날의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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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어 사전
조성래 지음 l 타이피스트 l 1만2000원



미래의 손
차도하 지음 l 봄날의책 l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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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지의 시들이 있겠다. 말하자면, 시인의 처지가 제풀로 시가 되는 지경. 그 처지가 낯선 이들에겐 일상의 무딘 말조차 시 안에서 비의적이고 불온해진다. 시인 김수영의 말마따나 죽음의 리듬이 있는 시들이다. 처지란 대저 비관하는 것이다. 기껏해야 위로해보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 처지는 그렇지 못하다.



어떤 처지는 속죄되고 되레 용서 구한다. “무엇이든 용서할 수 있을 것처럼/ 흰 것들은/ 희구나// 언제부턴가/ 착한 사람을 만나면/ 미안할 일이 닥쳐올 것만 같은// 하얀 구름/ 하얀 파도// 아무런 악의도 미움도 없었는데/ 심지어 사랑도 없었는데// 한 사람이 자신의 시신을 끌고/ 해안선을 따라가네”



한 시집의 권두시라 할 ‘무인도’에선 자신이 자신만 “미워하”여 소외되는 삶, 꿈도 사랑도 겨를 없어 “가족”마저 “적”이 되는 그 삶을 스스로 용서할 수 있게 해달라 간구하는 한 인간이 보인다. ‘일어날 불행은 일어난다’는 믿음을 정언명령 삼는 시인의 후기와 맞닿아 있다.



시집 ‘천국어 사전’은 그 연유요 내막이다. 그러지 못했던 시절의 고해성사 같다. 시집을 다 넘기면 이런 단어들이 물적으로 남는다. 공장 노동, 편의점·피시방 단기노동, 어머니의 뇌종양, 아버지의 배신, 돌봄의 중량, 동생과의 불화, 이주 노동자와의 인연…. 순수와 적의의 대립, 포기·도망·죽음의 유혹을 배태하는 현실들이다. 시 ‘우리는 가난한 시절’이나 표제시 ‘천국어 사전’에서 보듯 “가난”이란 수사는 차라리 낭만에 가깝다. 관념이고 추억이다. “삶을 배신한 건/ 둥둥 떠오르는 나다”(‘그 누구도 억울하지 않게’)거나, 가족의 삶들이 “각자 옥상에서 떨어지는 간단한 사물이고 싶었던 거”(‘이제와 저희 죽을 때’)라는 생의 절리 상태에 견주면 말이다.



‘천국어 사전’은 2022년 문학사상 신인상으로 등단한 시인 조성래(32)의 첫 시집이다. 자전적이다. 이성복(지적 비관주의)과 기형도(그로테스크 리얼리즘)가 자못 어리나, 대가들의 어떤 시들보다 조성래의 시는 구체성을 띤다. ‘육신’의 처지에서 비롯한 터, 여러 시가 ‘창원’, ‘순천’, ‘부천’이란 분류 아래 귀속되어 있다. 장소만 한 구체성이 있던가. 낯설 수 없는 세계의 대단히 구체적으로 낯선 시공간을 증거하는 방식일 것이다.



“…성산구라면 일진테크가 있는 봉암공단과 이웃해 있는 동네, 큰일 났구나 나는 내가 보조로 있는 라인의 용접공 필리핀 소녀 윤희를 떠올렸다 하루아침에 공장을 멈추는 힘이란 대체 무엇일까 (…) 나는 내가 숨이 멎는 상상을 해보았다 완싱(万幸), 공장이 숨을 멎는 일보다 숨 막히지 않았다”(‘완싱’ 부분). 코로나 역병 탓이다. 완싱(만행)은 다행을 뜻하는 중국어. 공장엔 아마 조선족도 있었을 것이고, 컨베이어벨트가 죽어라 돌아야 사는 사람들 가운데 ‘시인’도 있었을 것이다.



“마산에 살 적 이성복의 시집이 좋았다 (…) 그 시집을// 캄보디아 여자에게 주었다 (…)//…// 용지공원의 밤은 까맣고 아름다웠다 그녀는 남편과 시댁 사람을 다 죽이고 싶었다고 식칼을 쥐는 대신/ 이혼해 주지 않는 남편을 두고 도망 나왔다고 눈물 흘렸다 공장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그녀를 보는 것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내 어머니와 같은 머릿속 종양을 앓고 있었다// …… 나는 연락을 두절했다” ‘시인’은 이윽고 어머니로부터도,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도시로 도망쳤다.”(‘낙원’ 부분)



다행을 바라는 마음도, 달아나려는 마음도 이처럼 실체적이니, 가족을, 친구를, 급기야 자신을 떠날 수밖에 없는 ‘시인’이 공장 작업에 빗대 “누구의 마음에든 불량해지지 않는 구슬 하나가 굴러다녀서 괴로웠다”(‘지상화’) 하는 고백도 마냥 자기연민 내지 미화 같진 않다. 게다 도망도 선택받은 자의 선택 아니겠는가.



“이제 두 달도 더 못 산다는 어머니/ 연명 치료 거부 신청서에 서명하러 갔다// 아무리 먼 곳이라도 일단 도착하면/ 나는 그곳과 너무 가까운 사람이었다// 먼 곳은 먼 곳으로 남겨 두기 위하여/ 나는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았다// 먼 곳이 너무 싫어서 먼 곳을 견딜 수가 없어서/ 세상의 모든 먼 곳으로 가고 싶었다”(‘창원’ 부분)



식물과 흰색에 투사하여 품은 결심과 희망이 시집에 없진 않지만, 시는 대개 닫고 끊고 고립되길 자처한다. “행복을 본 적도 없는 자들이 퍼트리고 다닌 소문이 바로 행복”(‘암’)임을, 따라서 “이 완고한 슬픔 안에서”만 “안전한 사람”(‘아름다운 울화병’)들을 시인은 몸소 알기 때문이리라.



조성래의 처지가 드러나는 것이라면, 차도하는 캐낸다. 처지를 들추고, 처지가 처지를 낳으며, 처지를 밀어붙여 진실에 다가가려는 것 같다. 2020년 등단 시인 차도하의 시집 얘기다. “여름이 죽었다. (…) 끝나간다고는 생각했지만 정말로 죽을 줄이야. 하긴 누군가 신도 죽었다고 했고 재작년 이맘때쯤 김희자도 죽었는데 계절이라고 못 죽을 거 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시작하는 시 ‘부고’를 포함해 죽음의 기색은 도처에서 짙다.



“갑자기 터지는 웃음처럼/ 강간이라는 단어가 생각나//…// 그녀의 장례식장에 있는 꽃들은/ 모두가 잠든 밤에/ 모두가 잠들었다고 했는데 어떤 여자들은 깨어 있는 밤에// 일제히 떠올라/ 제자리로 돌아갔다”(‘요절복통’ 부분)



“아는 사람이 죽었음/ 나는 그 소식을 식당에서 들었음/…// 주문하신 마파두부덮밥 나왔습니다/ 그는 마파두부와는 관련 없음/ 모르는 얼굴들 중 하나가 살짝 눈물을 훔쳤음/ 왜 우는 것임?/ 왜 식당에서 남이 죽은 이야기를 하며 우는 것임?/ 나는 따질 자격 없음/ 나는 마파두부덮밥 비볐음/…”(‘명사형 죽음’ 부분)



시인은 “그가 죽은 이유 궁금하지 않았음”이란 역설로 죽음의 모든 출처를 묻게 만든다. 그곳에 처지가 있고, 청춘, 여성, “관련 없”이 관련된 삶들이 있다. 만 스물넷 시인은 2023년 10월 지인들의 부고로 처지를 알려왔고, 남은 시인들(강성은·신해욱·김승일)이 62편을 묶었으니 그의 첫 시집이자 유고집이 ‘미래의 손’이다.



조성래의 ‘돌멩이 유물론’을 읽고 차도하의 ‘돌 던지기’를 읽고, 조성래의 ‘기억나지 않는 대화’를 읽고 차도하의 ‘기억하지 않을 만한 지나침’(기형도의 ‘기억할 만한 지나침’을 변주한 제목)을 읽고, “나를 펼쳐주세요 나는 줄줄 흐르고 싶어요 강이 될래요 바다가 될래요 마그마가 될래요 마그마를 피하기 위해서는 마그마를 등지지 말고 마그마를 보고 도망쳐야 한다고 한다”(‘독서 유예’)는 차도하를 읽고, “너에 대해서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는데/ 자꾸 네가 걸어 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슬픈 이야기를/ 아무도 들려주지 않는데// 둘러앉은 모두가 아는 한 사람이 있다”(‘유령’)는 조성래를 읽는다.



서정이 결핍한 시대, 결핍의 서정이 이처럼 진솔하고 패배적이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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