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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이스라엘, 정보기관 동원해 약 10년간 ICC 수장 도청·협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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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국제형사재판소(ICC).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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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자국 정보기관을 동원해 약 10년 동안 국제형사재판소(ICC) 전·현직 검사장을 도·감청하고 협박을 가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는 ICC의 팔레스타인 문제 조사를 방해하고 이스라엘에 유리한 결과를 끌어내려는 의도였을 것으로 추정되나, ICC가 조사를 지속하고 영장을 청구하면서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28일(현지시간) 가디언에 따르면, 이스라엘 정보 당국은 ICC 직원들의 통화·메시지·이메일 및 문서를 가로채 이스라엘 및 팔레스타인에 관한 수사 정보를 파악했으며, 담당 검사를 위협하고 염탐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국가안보보좌관의 감독하에 국내 정보국 신베트, 해외 정보기관 모사드, 군 정보국 아만, 사이버 정보국 8200부대가 정보를 수집해 법무부, 외교부, 총리실 등에 전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활동은 팔레스타인이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에 가입을 신청한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돼 최근까지 9년 넘게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황은 가디언과 독립 언론 ‘+972매거진’, ‘로컬콜’의 공동 취재를 통해 알려졌다. 사안을 잘 알고 있는 정보 관계자, 외교관 등 소식통 20명 이상이 관련 정황을 증언했다.

팔레스타인의 ICC 합류가 이스라엘에는 큰 위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스라엘은 ICC 회원국이 아니지만 ICC 회원국 영토 내에서 발생한 범죄는 ICC의 조사 대상이기 때문이다. 한 전직 국방 관계자는 “이는 위험선을 넘는 것으로 인식됐다”고 전했다. 정보 관리 출신 소식통 또한 “ICC에 대한 반격은 ‘이스라엘이 해야 하는 전쟁’이란 군사 용어로 설명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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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투 벤수다 전 국제형사재판소(ICC) 검사장. ICC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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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측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파투 벤수다 전 ICC 검사장을 협박했다는 증언도 이어졌다. 벤수다 전 검사장은 2015년 1월16일 “팔레스타인의 상황”에 대한 예비 조사를 시작했는데, 그 다음달 그의 집으로 두 남성이 찾아왔다는 것이다.

이 남성들은 신원을 밝히지는 않으면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는 이를 대신해 편지를 전달하러 왔다’며 현금 수백달러와 이스라엘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가 든 봉투를 전달했다. 이 사건을 두고 ICC가 “이스라엘이 벤수다 검사장에게 ‘네가 사는 곳을 알고 있다’는 신호를 보냈을 가능성이 있다”고 결론 내렸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또한 이스라엘이 벤수다 전 검사장과 그 직원들이 팔레스타인 쪽과 주고받았던 통화를 정기적으로 염탐했다고 소식통 5명이 밝혔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동예루살렘,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ICC가 접근하는 것을 차단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조사를 유선상으로 해야 했는데, 그러면서 감시에 더 취약해졌다는 설명이다.

한 소식통은 “팔레스타인 통신 인프라에 접근하기 쉬웠기 때문에 ICC 직원의 장치에 스파이웨어를 심지 않고도 통화 내용을 알 수 있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벤수다는 흑인이고 아프리카인인데 누가 신경이나 썼겠나”라며 내부적으로 도청에 거리낌이 없었다고 전했다.

이렇게 얻은 정보는 2017~2019년 열린 이스라엘과 ICC 간 비공식 회담에서 유용하게 쓰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후 벤수다 전 검사장은 예비 조사를 종료하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가 모두 전쟁범죄를 저질렀다 볼 수 있는 “합리적 근거”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ICC 재판부가 승인을 해주면 전면적인 조사를 시작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의 작전이 실패한 것이다.

이후 요시 코헨 당시 모사드 국장이 벤수다 전 검사장을 여러 차례 기습 방문해 위협을 가했고, 모사드가 그의 남편에 관한 자료까지 부적절하게 수집했다는 전언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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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림 칸 국제형사재판소(ICC) 검사장.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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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과 하마스 지도부에 체포영장을 청구한 카림 칸 검사장 또한 압박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 감청된 내용에 따르면, 네타냐후 총리 체포영장 청구가 임박한 시점에 칸 검사장이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압력”을 받았다고 파악됐다. 이때 네타냐후 총리는 영장 청구가 다가왔다며 “자유세계 지도자들이 단결해서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한 이스라엘 정보 당국은 칸 검사장과 그의 사무실에 소속된 직원들의 이메일, 첨부파일, 메시지를 가로챘다. 칸 검사장은 끝내 영장을 청구하며 “ICC 직원을 방해·위협하거나 부적절한 영향을 미치려는 모든 시도는 즉시 중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가디언의 보도에 대해 ICC는 “ICC에 적대적인 여러 국가 기관이 정보 수집 활동을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최근 그 어떤 공격도 ICC의 핵심 증거 자료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총리실은 “이는 이스라엘에 해를 끼치려는 거짓된, 근거 없는 주장으로 가득 차 있다”고 반박했다. 이스라엘군 역시 “ICC에 대해 감시나 정보 작전을 수행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제법 전문가 토비 캐드먼 변호사는 “보도 내용을 보면 이는 독립된 조사기관을 직접적으로 방해한 것이다.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알자지라에 말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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