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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만물상] 하늘의 에어포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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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일러스트=양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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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방글라데시에 취재 갔다가 수도인 다카 상공에서 난기류를 만났다. 비행기가 순간적으로 동력을 잃은 듯 급강하하자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졌다. 인터넷에는 이와 비슷한 경험을 찍어 올린 동영상이 수두룩하다. 인천을 출발해 미국 댈러스로 가다가 태평양 상공에서 난기류를 만난 한 여행객은 유언까지 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2001년 11월 12일 에어버스 항공기가 뉴욕 JFK공항을 이륙하다가 난기류에 균형을 잃고 추락해 탑승객 260명이 전원 사망했다. 다른 항공기가 1분 40초 먼저 이륙하며 난기류를 일으켰는데 여유를 두지 않고 뒤따랐다가 휩쓸렸다. 비행기가 일으키는 난기류를 항적 난기류(Wake Turbulence)라 한다. 공항 주변에서 순간적으로 부는 급변풍(wind shear)과 함께 난기류 사고의 주범이다.

▶파일럿을 떨게 하는 난기류는 항적 난기류와 급변풍처럼 낮은 곳에 부는 돌풍이다. 비행기가 지상과 가깝기 때문에 균형을 잃으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1만m 상공을 날다가 만나는 고고도 난기류는 아무리 거칠어도 추락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요즘 여객기는 압력 2.5G(지구 중력의 2.5배)에도 견디도록 설계돼 있는데 자연 상태에선 폭풍을 만나도 1G를 넘는 경우가 드물다. 운항 고도도 워낙 높아 난기류를 만나 급강하해도 자세를 고쳐 잡고 상승할 시간·공간적 여유가 있다. 7000m를 급강하했다가 날아오른 사례도 있다.

▶싱가포르 항공 소속 여객기에서 난기류 사고로 사상자가 발생했다. 항공기 여행은 일반화하는데 기후변화로 지난 40년간 두 배 넘게 난기류 사고가 늘었다니 걱정이 크다. 사고 항공기가 만난 난기류는 고고도 난기류 중에서도 맑은 하늘에 공기 밀도 차이로 발생하는 청천 난기류다. 대기 중에는 밀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에어 포켓이 있다. 비행기가 여기 들어가면 양력을 잃는다. 사고 항공기도 1800m를 3분 만에 급강하했다. 이 때문에 탑승객이 천장에 머리를 부딪히거나 나동그라지며 다쳤다. 바다의 에어 포켓은 생명을 지키는 희망이지만 하늘에선 반대로 사고를 일으킨다.

▶고공 난기류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한다. 특히 청천 난기류는 레이더에도 잘 안 잡혀 안전벨트 표시등이 켜지지 않은 상태에서 닥치곤 한다. 항공사들이 자리에 앉아 있을 때는 안전벨트를 무조건 매라고 권하는 이유다. 이번 사고의 유일한 사망자는 심장마비라는 사실도 눈여겨보게 된다. 불의의 사고가 있을 수 있다고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서 나쁠 것은 없을 듯하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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