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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이혼후 문제, 한번에 해결할 수도”…대법 40년만에 ‘혼인무효’ 판례 뒤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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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당사자 실질합의 없는 혼인 등
특정 경우 혼인무효 청구 가능

“이혼후 생기는 많은 법률분쟁
혼인 관계 없애 한번에 해결”


매일경제

조희대 대법원장(가운데) 등 대법관들이 23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전원합의체 선고를 하기 위해 착석하고 있다. 이날 선고를 통해 ‘혼인 무효’에 관한 판례가 40년만에 변경됐다. 왼쪽부터 김선수 대법관, 조 대법원장, 이동원 대법관.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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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부부가 이혼신고를 마친 뒤라도 혼인무효 확인을 청구할 수 있다. ‘이혼한 부부는 혼인무효로 얻을 이익이 없다’고 본 기존 판례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40년 만에 뒤집혔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해 12월 취임한 후 전원합의체 재판장을 맡아 처음으로 내린 판결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23일 A씨가 이혼한 전 배우자를 상대로 제기한 혼인무효 확인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의 청구를 각하한 원심 판결을 파기자판하고 사건을 서울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2001년 12월 결혼해 2004년 10월 조정을 통해 이혼했는데, 2019년 ‘실질적 합의 없이 혼인신고를 했다’며 혼인무효 확인을 청구했다. 민법 제815조는 당사자 간 합의가 없는 혼인은 무효라고 정하고 있다.

1·2심은 A씨의 청구를 각하했다. 이미 이혼신고를 마쳐 혼인관계가 해소된 부부는 혼인을 무효화해서 얻는 법률적 이익이 없다고 본 1984년 대법원 판례에 따라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반면 대법원은 전원일치 의견으로 새로운 법리를 내놓았다. 과거 판례와 달리 이혼 이후라도 혼인을 무효로 되돌려서 구할 이익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혼인관계를 전제로 수많은 법률관계가 형성된다”며 “그에 관해 일일이 효력의 확인을 구하는 절차를 반복하는 것보다 과거 혼인관계 자체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것이 관련된 분쟁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유효·적절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혼인무효 확인 소송 한 번으로 무효 사유가 인정되면 여러 법적 분쟁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취지다. 혼인무효와 이혼의 법적 효과가 다르다는 점에서 파생되는 문제들이 대표적이다. 혼인무효는 처음부터 혼인의 효력이 없었던 것이 되지만, 이혼은 혼인관계에서 발생한 법률관계에 대해서는 유효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혼과 달리 혼인 자체가 무효라면 민법상 ‘인척간의 혼인 금지’ 규정이나 형법상 ‘친족상도례’ 규정은 적용되지 않는다. 가사와 관련된 빚에 대해 배우자에게 연대책임을 묻는 ‘일상가사채무’도 적용받지 않게 된다. 이혼 이후에도 혼인관계가 무효임을 확인할 실익이 있는 셈이다.

잘못된 가족관계등록부를 고치기 위한 구제 수단이 마련됐다는 의미도 있다. 대법원은 “무효인 혼인 전력이 잘못 기재된 가족관계등록부의 정정 요구를 위한 객관적 증빙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혼인관계 무효 확인의 소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며 “혼인무효 확인의 이익을 부정한다면 혼인무효 사유의 존부에 대해 법원의 판단을 구할 방법을 미리 막아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혼 후 혼인무효 확인 청구에 대해 포괄적 법률 분쟁을 일거에 해결하는 수단으로 확인의 이익을 긍정한 판결”이라며 “이 판결로 이미 해소된 혼인관계의 무효 확인을 구하는 경우 확인의 이익을 개별적으로 따질 필요 없이 일반적으로 확인의 이익이 인정될 수 있게 됐다”고 의의를 설명했다. 또 “국민의 법률 생활과 관련된 분쟁이 실질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당사자의 권리구제 방법을 확대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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