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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소고기라고 속을 뻔했다’…연탄불에 구워 먹는 돼지생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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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정교(73) 미도불갈비 사장이 연탄불에 고기를 굽고 있다. 김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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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을 상대하는 북적이는 ‘TV 맛집’은 사절합니다. 지역의 특색있는 숨은 맛집, 누가 가장 잘 알까요? 한겨레 전국부 기자들이 미식가로 이름난 지역 공무원들에게 물었습니다. 대답을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한두 군데 마지못해 추천하면서 꼭 한마디를 덧붙이네요. “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팀장님, 자주 가시는 찐맛집 없습니까? 대구 차례가 왔어요.”





‘소문나면 곤란한’ 맛집을 소개해야 할 차례가 다가왔다. 김승태 대구시 언론정책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난 1월부터 전국부 기자들이 돌아가면서 지역 맛집을 소개해 온 터라 메뉴가 겹치지 않았으면 했다. 김 팀장에게 “아무리 맛집이라도 국밥, 칼국수는 제외해달라”고 부탁했다.



“내일 점심시간 되시나요?” 이내 김 팀장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벌써 맛집 섭외가 됐나요?”



“그럼요. 제가 자주 가는 집인데, 사장님이 취재해도 좋다고 하시네요. 내일 바로 갑시다.”



“혹시 메뉴가 뭐에요?”



“생갈빕니다. 연탄불에 구워줘요.”



“헐, 너무 좋아요! 생갈비면 저녁에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저녁에 가면 자리 없어요. 소고깁니다. 기대하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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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중구 연탄불고기 골목. 1980년대에는 연탄불고기 식당만 24곳 있었지만, 현재는 3곳만 남았다. 김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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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낮, 김 팀장과 박남태 대구시 언론담당관과 함께 대구시청 동인청사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떨어진 대구시 중구 ‘미도불갈비’ 로 향했다 . 교동시장을 가로질러 대구역이 보이는 곳까지 걸었다 . 옛 국제극장이 있던 곳이라 ‘국제극장 골목 ’이라고도 불리고 , ‘연탄 불고기 골목 ’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 북구 칠성시장 , 중구 북성로 와 함께 대구의 연탄 불고기 3대장 가운데 하나다 . 연탄불에 고기를 구워 먹는 이른바 ‘연탄석쇠불고기’는 대구가 원조라고 한다.



“예전에 국제극장 앞으로 지나가면 연탄 연기가 자욱했다니까요. 지금은 몇 집 안 남았는데, 골목 전체가 연탄불고기 집이었어요.” 박 담당관이 옛 국제극장이 있던 자리를 기억에서 더듬으며 말했다. 이 골목이 번창하던 1980년대에는 연탄 불고기 식당만 24곳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미도불갈비, 국일불갈비, 대호불갈비 3곳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미도불갈비가 처음 문을 연 것은 1987년이다. 당시 대구역에는 석탄을 실어 나르는 산업선이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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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중구 미도불갈비. 김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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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도불갈비 앞에 다다랐을 때, 눈을 의심했다. 간판에 대문짝만하게 걸린 ‘SBS 생방송 투데이’ 문구가 보였다. “관광객을 상대하는 북적이는 ‘TV 맛집’은 사절”하는 컨셉인데, 이대로 취재가 펑크나는 것일까. 말없이 김 팀장을 올려다봤다. “아잇, 기자님. 이 집은 찐으로 아는 사람만 오는 집이라니까요. 관광객들 많으면 제가 단골집하겠습니까.” 그의 당당함에 홀린듯이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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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교(73) 미도불갈비 사장이 고기를 손질하고 있다. 김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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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교(73) 미도불갈비 사장이 미리 주문한 고기를 손질하느라 분주했다. 이날 점심시간 예약 손님은 우리가 유일했다. “아이고∼ 오랜만에 점심 예약 받십니데이. 2층으로 올라 가이소.” 함께 온 대구시 공보관실 직원들을 먼저 올려보내고, 고기를 들고 연탄불로 향하는 김 사장을 따라 나갔다. “원래는 다 가게 안에서 꾸벘는데, 요새는 연기 싫다카는 사람들이 많아가 밖에서 꾸버가 올라갑니다. 80% 초벌해가 나가니까 묵기 편하지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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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도불갈비 식당 밖 연탄 화로. 김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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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질된 ‘국내산 생갈비’가 석쇠에 차곡차곡 담겨 화로 위로 올라갔다. 채도가 높은 맑고 붉은 고기 때깔에서 이미 맛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치이익’ 소리와 고소한 냄새와 뿌연 연기가 고기가 익어간다는 사실을 알렸다. 김 사장이 때맞춰 휙 하고 석쇠를 뒤집었다. 석쇠에 붙은 고기를 탈탈 털어내고 다시 뒤집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어쩌다 그 귀하다는 소고기를 연탄불에 굽게 됐을까. 김 사장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허허허” 웃음과 함께 대답이 돌아왔다. “누가 소고기를 연탄불에 꾸버 묵십니꺼. 돼지고기 생갈비라예. 소고기보다 부드럽게 내가 손질한다 이 말이지. 무 보면 알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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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교(73) 미도불갈비 사장이 연탄 화로에서 고기를 굽고 있다. 김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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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았다. 적당히 익은 “소고기보다 부드러운” 돼지고기 생갈비와 함께 2층으로 올라가 테이블에 앉았다. 초벌된 고기를 익히기 위한 가스버너와 쌈 채소, 샐러드, 오이무침, 백김치, 김치, 콩나물 무침, 마늘, 고추, 쌈장, 겉절이, 특제 소스가 한 상 가득 펼쳐져 있었다. 팔을 높이 들어 ‘항공샷’으로 모든 메뉴를 사진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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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중구 ‘미도불갈비’의 상차림. 왼쪽 고기는 생갈비다. 김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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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태 대구시 언론담당관, 김승태 대구시 언론정책팀장 등 대구시 공보관실 직원과 함께 미도불갈비에서 생갈비를 맛있게 먹었다. 김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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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아무것도 찍지 말고 고기만 한 번 드셔 보세요!“ 돼지고기를 소고기라고 속였던 김 팀장이 고기 한 점을 건네며 화해의 제스쳐를 보냈다. 입안에 고기를 넣었다. 고소한 고기 향이 가득 퍼졌다. 내가 알던 달달한 돼지갈비 맛은 아니었다. 담백했고, 묵직했다. 미도불갈비의 생갈비 메뉴는 돼지의 갈빗살과 갈매기살이 섞여 나온다. 소금과 참기름으로 밑간한 것이 소고기라고 착각할만한 맛을 내는 비법이었다. 불향이 거칠 것이라는 선입견과 달리 연탄향은 은은하게 베여 있었다. 거부감이 들 정도로 매캐한 불향을 입히지 않는 것이 37년 김 사장의 노하우다. “팀장님, 이거 그냥 끝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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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릇하게 익은 미도불갈비의 생갈비. 김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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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입에 미도불갈비의 매력에 넘어가 버린 뒤, 쉴 새 없이 젓가락을 움직였다. 특제소스에 찍어도 먹고, 겉절이에 휘감아도 먹고, 상추쌈에 마늘과 고추를 얹어 한입 가득 먹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맛있는 고기여도 어쩔 수 없었다. 느끼함이 슬슬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 맛있는 고기를 술도 없이 먹으려니 너무 아쉬운데요?” 볼멘소리하자 박 담당관이 백김치를 건넸다. “백김치 안 드시고 뭐 합니까.”



그렇다. 미도불갈비가 처음인 나는 백김치의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횟집에서나 나오는 백김치가 왜 고깃집에 있을까. 백김치는 김장 김치처럼 길게 아무렇게나 찢은 모양이었다. 고기 한 점을 백김치에 돌돌 말아 먹어 보았다. 새콤달콤한 탄산이 입안에서 터졌다. 사이다만큼 청량하고 깔끔했다. “원래 돼지고기에는 신김치잖아요. 백김치가 시큼하니까 궁합이 딱 맞거든요. 다 우리집에서 담는 거니까 마이 드이소.” 김 사장이 백김치 한 접시를 더 내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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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김치에 싼 미도불갈비의 생갈비. 김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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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탄 공장이 하나둘 문을 닫으면서, 연탄 불고기 식당도 대부분 사라지는 추세다. 미도불갈비 역시 언제까지 운영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고 한다. 이제서야 미도불갈비의 맛을 알았는데, 이별의 순간이 정해져 있다니. 김 사장에게 “2세에게 물려 주셔도 저희가 매일 찾아올게요”하고 붙잡았지만, 소용없었다. “연탄 연기 마시면서 고기 굽는기 쉬운 일이 아니라요. 우리 자식들한테는 안 물리 줄랍니다. 그래도 내가 건강할 때까지는 문을 열테니까 걱정 마이소.”



아쉬운 마음에 “맛만 보자”하며 돼지불고기, 고추장불고기, 곱창전골을 하나씩 추가로 주문했다. 된장찌개에 공깃밥까지 먹었다. 맛있게 양껏 든든히 먹었지만, 무언가 허전한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박 담당관, 김 팀장에게 그 자리에서 다음 저녁 약속을 청했다.



“사장님, 다음에는 저녁에 와서 많이 먹고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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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현 기자 gyuhy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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