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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사설] 송전선 없어 발전소 멈추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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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24년 5월 8일 강원도 동해시 GS동해전력의 화력발전소 모습. 송전선 부족으로 지난달부터 가동을 전면 중단하면서 석탄 저장고가 텅비어 있다. /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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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낼 송전 선로가 없어 동해안의 대형·신규 화력 발전소들이 속속 가동을 멈추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GS동해전력과 강릉에코파워, 삼척블루파워, 삼척빛드림 등이 운영하는 석탄화력 발전소 8기가 지난달 중순부터 전력 생산을 전면 중단했다고 한다. 이들 8기의 발전 총량은 삼성전자가 300조원을 들여 건설하고 있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수요를 댈 수 있는 막대한 규모다.

이런 사태가 빚어진 것은 한국전력의 송전선 건설 계획이 7년 이상 미뤄지면서 전기를 보낼 송전선이 과포화됐기 때문이다. 동해안에서 수도권으로 송전선로 용량은 11.4GW인데 동해안권의 원전과 석탄 발전,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은 18GW에 이른다. 자동차를 만들고도 도로가 없어 멈춘 것과 같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2019년까지 8GW짜리 송전선로가 추가 건설돼야 했다. 하지만 탈원전·탈석탄을 밀어붙였던 문재인 정부는 주민 반발 등을 이유로 선로 신규 건설에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신규 사업자들이 스스로 발전소 건설을 포기할 것을 기대하면서 계획된 선로 건설 사업을 사실상 방치했다. 에너지 백년대계를 생각해야 할 정부로선 있을 수 없는 무책임한 일이었다.

지금 수도권에선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과 데이터센터 건설 등으로 전기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그런데도 송전선로 부족으로 송전을 못 받는 바람에 발전 원가가 석탄보다 30% 이상 비싼 LNG 발전이나 공해 물질 배출이 2배 이상인 구형 석탄 발전에 의존하는 상황이 됐다. 문 정부 때 호남 등 서해안에 우후죽순으로 들어선 태양광과 풍력 발전 시설 또한 송전선이 부족해 수시로 생산을 중단·제한하고 있다. 이는 전기 요금 인상으로 이어지고, 여름철 대규모 정전 사태도 우려된다. 지방에선 송전선이 없어 발전소가 전기 생산을 못 하고, 수도권은 전력이 부족해 법으로 데이터센터를 못 짓도록 막는 코미디가 벌어지고 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작년 10월 국민의힘 의원 주도로 ‘국가 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이 발의됐다. 정부가 직접 주민과 갈등을 중재하고 각 부처의 인허가 절차를 통합해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토록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민주당이 다른 법안 처리를 조건으로 논의를 미루는 바람에 폐기될 상황에 몰렸다. 문 정부 시절, 한전에 5년간 26조원의 탈원전 부담을 떠안긴 민주당이 이젠 송전선 건설까지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고도 어떻게 반도체와 빅데이터 등 미래 먹거리 산업을 키울 수 있겠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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