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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광화문·뷰] 보수여, ‘민희진’을 감당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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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청년 대거 영입”

4년 전 처방 소용없었다

전 연령대 여성 ‘반보수’화

‘시혜적 태도’부터 바꿔야

“위상 추락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것이라 막연한 기대. 상대당 지지율 추락에도 반등 기미 없음. 당내(계파 갈등, 공천 잡음, 유망 정치인 부재), 당외(신뢰 상실, 전통 지지층 이탈, 젊은 유권자 배척)에 절망이 만연.”

2020년 총선 패배 후,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거금을 들여 유명 교수들에게 보고서를 의뢰했다. 이런 대안이 제시됐다. “노화 정당, 재벌 위주 정책 등 당을 낙인찍는 이미지를 고려할 때, 여성, 청년 등 미래지향적 인재를 대거 영입할 제도 시급.” 용역보고서는 비공개됐고, 4년 후 국민의힘은 더 나빠진 성적표를 받았다.

여성 지지가 더 빠졌다. 출구조사 기준, 국민의힘에 대한 20~40대 여성 지지율은 2020년 27~30%쯤이었으나 올해 21~25%대로 떨어졌다. 50대 여성도 46.6%에서 33.7%, 60대 여성도 64.6%에서 61%로 낮아졌다. 여성들이 대동단결해 국민의힘을 밀어내고 있는 형국이다.

양성 평등, 여성 치안, 출산 지원 등 정책을 보면 보수 정부가 결코 여성에게 박하지 않다. ‘여가부 폐지’를 공약으로 세운 윤석열 정부에서도 부처 폐지는커녕 예산을 늘렸다. 주로 출산, 가족 관련이지만, 수혜자는 결국 여성이었다. 전문가들은 진영논리가 강한 40~60대 ‘생계형’ 민주당 지지자와 2030 ‘국힘 반감’ 세대는 신념 체계가 다르다고 본다. 보수가 후자를 공략하는 게 더 낫다고들 한다.

그런데 안 찍어준다. 보수 정치인들은 진심으로 절망한다. “비례대표도 절반씩 시켜주고, 육아휴직에 양육비 지원에 성범죄자 처벌 강화에 할 만큼 해주는데 대체 왜 안 찍나.” 쌍욕하고 배신하는 ‘나쁜 남자’를 좋다고 하는, 이해 못 할 여성을 보는 느낌일 것이다.

문제는 바로 그 ‘시켜준다’ ‘해준다’ 태도다. 정치는 원래 늙은 남자 것인데, 여자들에게 ‘옜다 너도 한입’하는 발상과 태도로는 상황 반전이 어렵다.

얼마 전 “회사 탈취 계획 중”이라는 모회사의 발표로 ‘배신자’ 지목을 받은 자회사 사장 민희진이 기자회견을 했다. 하지 말라는 건 다 했다. 줄무늬 티셔츠에 야구모자를 쓰고, 쌍욕하고, 흥분하고, 울고 불고… 그런데 대반전. “뼈빠지게 일하며 승진에서는 밀리는 직장여성의 한을 풀어줬다”며 주로 젊은 여성들이 환호했다.

조선일보

'뉴진스 엄마'로 불리는 민희진 어도어 대표가 지난 4월 25일 서울 강남 한국컨퍼런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BTS 아버지' 방시혁씨를 대상으로 하는 싸움이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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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진은 자신보다 고작 7살 많은 방시혁 등을 일컬어 “개저씨들이 골프나 치면서” 자기 공적을 빼앗았다고 했다. ‘노동하지 않는 자본가’는 타도의 대상이 됐다.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 자본가여 먹지도 말라’는 파업가(歌)를 30년간 틀어댄 민노총이 하지 못한 일을 민희진이 해낸 셈이다. 그의 성과는 물론, 외모, 논점, 화법, 태도가 한몫했다. ‘선공감, 후논리’는 거스르기 어려운 시대적 흐름이 되고 있다.

국민의힘에도 여성 의원은 적지 않다. 2030 눈에는 ‘구린 남성과 한 패인 여성들’로 보인다는 게 어려운 노릇이다. 이른바 ‘당사자(當事者)성’이 중요하다. 당 로고 아래 ‘당대의 여성’이 서야 한다. 기회를 하사하는 게 아니라, ‘네 몫을 돌려준다’는 태도여야 한다. 2020 보고서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여성의 지지는 정당 이미지와 관련성이 높은 편. 여성 유권자 지지는 향후 유동적일 가능성.” 박지현, 용혜인, 류호정 같은 이들이 보수 눈에는 그저 ‘장난’처럼 보이겠지만, 2030은 그런 여성들에게서 자기 얼굴을 본다.

강력한 고령 지지자가 자연 감소할 수밖에 없는 보수 진영. ‘감당할 수 없는 여성’을 지렛대로 삼아 어려운 세대를 공략해야 한다. 그것에 실패하면 감당 못할 결과가 따를 것 같다. 감당할 수 있겠나.

[박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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