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지구 남부 칸유니스에서 8일 팔레스타인인들이 물통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 칸유니스/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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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이 이스라엘에 제공한 고중량 폭탄에 가자지구 민간인들이 목숨을 뺏겼다고 인정했다. 미국 행정부가 고중량 폭탄 선적을 보류했다고 밝힌 가운데 바이든 대통령은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남단 라파흐에 진입하면 공격용 무기 제공을 중단하겠다는 경고도 내놨다.
바이든 대통령은 8일 시엔엔(CNN) 인터뷰에서 “난 이스라엘군이 라파흐에 진입하면 라파흐 등 도시들을 다루는 데 지금까지 써온 무기들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고 말했다. 선적이 보류된 고중량 폭탄뿐 아니라 포탄 등도 공급하지 않겠다고 경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미국이 이스라엘에 준 2천파운드 폭탄이 민간인들 목숨을 빼앗았냐는 질문에 “인구 밀집 지역을 노린 이런 폭탄들 및 다른 방식들에 의해 가자의 민간인들이 사살당했다”고 답했다. 그가 이스라엘에 무기 공급 중단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경고한 것도, 미국이 제공한 2천파운드 폭탄에 팔레스타인인들이 사살당했다고 발언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이와 관련해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이날 상원 세출위원회에 출석해 지난주에 이스라엘에 대한 “고중량 폭탄의 1회분 선적”을 보류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이스라엘이 스스로를 방어하는 수단을 갖도록 필요한 일을 계속하겠다”면서도 “라파흐 상황과 관련해 단기적 군사 원조 제공에 대해서는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기 선적을 일부 보류했다는 보도를 확인한 것이다. 미국 언론들은 2천파운드(907㎏) 폭탄 1800개와 500파운드(227㎏) 폭탄 1700개가 보류 대상이라고 전했다.
오스틴 장관은 또 라파흐 공격 같은 데는 “정확히 맞는 무기”를 써야 한다며 “인구가 조밀하고 건물이 밀집한 곳에서는 정밀도가 높은 소구경 폭탄이 매우 유용하다”고 말했다. 또 “부수적 피해를 일으킬 수 있는 2천파운드 폭탄은 그런 무기가 아니다”라고 했다. 라파흐에는 가자지구 북쪽에서 이스라엘군에 쫓겨온 피난민 등 140만명이 몰려 있어 전면 공격 때 대규모 참사가 우려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과 오스틴 장관의 발언은 2천파운드 폭탄에 의한 민간인 살상 문제가 심각함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베트남전 때 개발된 2천파운드 폭탄의 현재 모델은 전투기에서 투하되며, 미군이 보유한 매우 강력한 재래식 무기들 중 하나다. 설계에 따라 넓은 면적을 파괴할 수도, 땅속 표적을 부술 수도 있다. 에이피(AP) 통신은 폭발 반경이 360m일 정도로 파괴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정밀 유도 장치를 달아도 특히 도시에서는 심각한 민간인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 설명이라고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지난해 10월7일 개전 이래 인구·건물 밀집지에서 이 폭탄을 자주 사용했다. 폭탄 하나로 건물 몇 개가 산산이 부서지고 큰 폭발 구덩이가 생기는 게 사용 ‘증거’로 제시된다. 개전 한 달 만에 2천파운드 폭탄 사용을 뒷받침하는 구덩이가 500개가 생겼다는 집계도 있다. 시엔엔(CNN)은 “베트남전 이래 본 적이 없는” 심각한 파괴가 진행 중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스라엘에 “민간인 살상 최소화”를 거듭 주문하면서도 고중량 폭탄 공급을 중단하라는 요구에는 최근까지 귀를 막아왔다. 가자지구 보건부 집계 사망자 수는 이제 3만5천명에 육박하고 있다.
한편 길라드 에르단 주유엔 이스라엘대사는 미국의 고중량 폭탄 선적 보류는 “매우 실망스러운 결정”이라고 이스라엘 언론에 말했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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