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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일본 40년 전부터 의대증원 ‘사회적 대화’…회의록도 전부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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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왼쪽 셋째)이 지난 1월 일본 도쿄의 한 의료기관을 방문해 이야기를 듣고 있다. 조 장관은 의대 정원 확대와 관련해 일본 사례를 살펴보기 위해 도쿄를 방문했다. 당시 다케미 게이조 후생노동성 장관, 가마야치 사토시 일본의사협회 상임이사, 가타미네 시게루 의사수급분과회 회장 등을 만났다. 보건복지부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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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의대 정원 확대에도 의사 사회가 의사 부족에 공감하며 갈등 없이 이행했다.”(보건복지부)



“일본은 의사회와 긴밀하게 협의하면서 의사 인력 확충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대한의사협회)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싸고 의-정 갈등이 3개월가량 계속되는 가운데 일본의 의대 증원이라는 같은 사례를 놓고도 양쪽의 시각차가 뚜렷한 모습이다. 서로 부각하고 싶은 부분만 강조했기 때문이다.



저출산·고령화, 지역·필수 의료의 위기 등 한국과 비슷한 과제를 안고 있는 일본은 의사 수급 문제를 40년 전부터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를 근거로 사회적 변화에 맞춰 의대 정원을 줄이거나 늘려왔다. 한국 사회 전체를 혼란에 빠뜨린 의대 증원 문제를 일본에선 어떻게 큰 갈등 없이 풀어왔을까.



일본 의대 정원은 197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크게 네 차례 변화가 있었다. 일본 정부는 1973년 최소한 ‘인구 10만명당 150명’의 의사가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의과대학이 없는 지방에 의대를 만드는 방식으로 정원 확대에 나섰다. 1973년 6200명이던 의대 정원은 1980년대 초반 8280명까지 2080명이 증가한다. 정원 확대를 이어가던 일본 정부는 1982년 이제는 ‘의사 과잉’ 우려가 있다며 점차 의대 정원을 축소하기로 결정했고, 2003~2007년엔 7625명까지 줄어든다.



2000년대 초반 다시 추진된 일본의 의대 정원 확대는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일본에선 지금 한국과 마찬가지로 지방·필수의료 의사 부족이 심각한 사회적 쟁점으로 떠올랐다. 일본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을 중심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했다. 2007년 7625명이던 정원이 2009년 8486명, 2013년 9041명에서 2017년 9420명으로 정점을 찍게 된다. 교육 여건 마련 등이 필요했던 만큼, 10년 동안 점진적으로 1795명이 증가했다. 한 번에 ‘2천명’ 증원을 강행하던 한국과 견주면 상당히 속도 조절을 한 것이다. 2018년 이후 다시 의대 정원 축소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최고 정점이던 ‘9420명’을 넘지 않은 선에서 현재 소폭 조정되고 있다. 의대 정원 증가로 일본의 의사 수도 2010년 29만5천명에서 2022년 34만3천명으로 늘었다.



일본에선 의대 정원 조정을 놓고 정부와 의사들 간 견해차는 있었지만, 복지부가 말한대로 집단 행동까지 가는 극한 반발은 없었다. 의료계와 긴밀하게 논의한 것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일본 정부는 1983년 ‘장래의 의사 수급에 관한 검토회’를 시작으로 ‘의사 수급의 재검토 등에 관한 검토회’(1993년), ‘의사 수급에 관한 검토회’(1997년) 등 명칭은 조금씩 달라지지만, 의사 수급과 관련해 별도 전문가 조직을 만들어 운영했다. 2015년부터는 직종마다 상황이 다르다며 후생노동성 검토회 산하에 의사·간호사·물리 치료사 수급 분과회를 각각 만들었다. 일본은 의사 수급 문제를 두고 40년 동안 ‘사회적 대화’를 해온 셈이다.



‘의사 수급 검토회’는 의료계 중심으로 꾸려졌다. 2022년 1월 의사 수급 분과회 자료를 보면, 전체 위원 22명 가운데 의료계가 15명으로 68%를 차지한다. 그밖에 지방정부, 경제학자, 의료 컨설팅 회사, 언론인, 복지시설 관계자, 행정학자, 시민단체가 각각 1명씩 참여하고 있다. 검토회는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며 논의 근거가 되는 자료뿐만 아니라 회의록을 전부 누리집에 공개하는 등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에 반해 윤석열 정부는 일부 전문가 보고서를 근거로 장래 의사 수를 추산하고, 의대 증원과 관련해 의료현안협의체·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정원배정심사위원회를 운영했지만 회의록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의대 정원 논의도 정부 주도로 추진했다.



일본에서 사회적 갈등 없이 의대 정원 확대가 가능했던 것은 의-정이 ‘일본의 지역·필수 의료를 살리자’며 머리를 맞댔기 때문이다. 의료계 중심으로 구성된 ‘의사 수급 검토회’는 2005년 2월부터 이듬해인 2006년 7월까지 총 15번의 회의를 거쳐 최종 보고서를 완성한다. 검토회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 기준과 함께 일본 의료 현장의 구체적인 수요·공급 자료를 바탕으로 2022년 이후 ‘의사 과잉’이 예상된다고 추계했다. 하지만 지역과 진료과별 의사의 불균형은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며 지역을 중심으로 정원 확대 등을 제언했다. 장래 전체적인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지역·필수의료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밥그릇 챙기기’보다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의대 정원 확대라는 말만 나오면 일단 거부감부터 드러내는 한국의 의료계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후생노동성은 검토회 보고서를 바탕으로 관계 부처 회의와 지방정부 논의를 거쳐 ‘새 의사확보 종합대책’(2006년), ‘긴급 의사확보 대책’(2007년), ‘경제재정 개혁 기본방침’(2008년)을 잇따라 발표하면서 정원을 확대해 나갔다. 지역 의사 확충을 위해 일부 대학에 도입됐던 ‘지역정원제’가 2008년 정식으로 시행된다. 정원과 운용 방식은 지역마다 다르지만, 의대 6년 동안 장학금을 받고 졸업 뒤 9년 동안 해당 지역의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제도다. 학생 수로 보면 지역정원제 등 지역 의사 양성 정책으로 입학한 정원은 2007년 173명에서 2022년 1736명까지 늘었다. 이 기간 의대 정원이 1749명 증가했는데, 지역정원제 등이 1563명(89%)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의대가 설치된 전국 80개 대학 중 71곳이 지역정원제를 실시하고 있다. 장학금 덕택에 경제사정이 좋지 않지만 의대 진학을 원하는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받고 있다.



물론 과제도 있다. 기간을 채우지 못하면 장학금을 반환해야 하는데도, ‘이탈자’가 계속 생기고 있다. 후생노동성이 2019~2020년 실시한 조사를 보면, 지역정원제 9707명 중 450명(4.6%)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간 것으로 집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도시보다 설비가 떨어지는 지방 병원에서 전문성을 키우기 어렵거나 결혼·출산 등 환경이 바뀐 것이 배경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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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원제가 지역의 의사 부족 해소에 일정한 공헌을 했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일본 의료의 불균형은 여전히 심각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외과·응급과·산부인과 등은 의사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도호쿠(동북) 지방 등은 의사 부족이 심각하다”며 “이런 진료과나 지역 의료는 기존 의사들의 장시간 노동으로 버티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방·필수 의료를 살리기 위해 의대 증원을 계속 확대하기도 쉽지 않다. ‘의사 수급 분과회’는 2020년 8월 현재 의대 정원을 유지하면 2029년께 ‘의사 과잉’이 된다고 추계했다. 일본에선 “의료비가 늘어날 수 있으니 정원을 축소해야 한다”, “의료의 지역 불균형이 여전하니, 정원을 유지하거나 늘려야 한다” 등 다양한 의견이 있다. 의사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오모리·이와테 등 12개현은 2020년에 ‘지역 의료를 담당하는 의사 확보를 목표로 하는 지사의 모임’까지 만들어 공동으로 대처하고 있다.



후생노동성은 지난 1월 의료계 중심으로 ‘의사 양성 과정을 통한 편재대책 검토회’를 새롭게 만들었다. 의대 정원을 줄이면서도 지방·필수 의료를 살리는 방안을 찾겠다는 목적이다. 지난달 4차 회의 내용을 보면, ‘의사가 많은 곳의 의대 정원을 줄이고, 의사가 적은 곳엔 늘리는 방안’을 주요하게 검토하고 있다.



재무성은 지난달 한발 더 나아가 지방 등 의료기관이 부족한 지역의 수가를 올리고, 과잉인 도시에선 낮추자는 정책도 제안했다. 이에 대해 일본의사회는 “(지열별 수가 차별은) 지극히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여론은 좀 더 강한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사설을 통해 “의사 총수가 늘어나는데도 의사 부족 문제가 사라지지 않는 것은 의사 배치의 편중이 원인이다. 의사 전공이나 근무지 선택에 어느 정도 제한을 두는 논의도 시작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강조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dand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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