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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최재천 “‘지옥 같은 사회’ 벗어날 수 있어요…토론 넘어 숙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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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최근 새 책 ‘숙론’을 펴낸 최재천 교수가 7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 다목적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숙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영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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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은 원래 어렵습니다. 잘되면 신기한 일입니다. 소통은 당연히 잘되리라 착각하기 때문에 조금 대화를 하다 안되면 금방 포기해버립니다. 그렇지만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모든 일에서 소통을 해야하는 운명에 처해있지요. 지금 우리 사회는 이념·지역·남녀·세대 등으로 갈라져 첨예하게 갈등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공간에서 자신의 감정을 배설하기 전에, 또 거리로 뛰쳐나가기 전에 사람들끼리 둘러앉아 얘기한다면 이렇게까지 ‘지옥 같은 사회’에 살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9년 전부터 계속 마음속에 두었던 ‘숙론’이라는 화두를 꺼낸 이유입니다.”



‘통섭’의 과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이번엔 ‘숙론’이라는 화두를 우리 사회에 던졌다. 최근 새 책 ‘숙론’(김영사)을 펴낸 최 교수는 7일 서울 종로구 노무현시민센터 다목적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왜 숙론이 필요한지 또 숙론 문화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설명했다.



‘토론’이 아니라 왜 숙론일까. 최 교수는 토론이라는 단어가 이미 오염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토론을 한답시고 모이면 서로 너무 결연하다. ‘내가 옳고 당신은 틀렸어’를 너무 많이 한다”며 “논쟁을 토론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깊이 있게 생각하면서 서로 합의를 해가는 과정을 일컫는 ‘숙론’이라는 단어를 썼다”고 말했다. 그는 “숙론은 누가 옳은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함께 찾아가는 과정”이라며, 이 목적을 잊지 않는다면 숙론을 잘 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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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교수는 숙론의 좋은 사례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몽플뢰르 컨퍼런스’를 제시했다. 1990년 2월 넬슨 만델라가 27년 간의 복역을 마치고 석방됐을 때, 남아공 사회는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흑백 갈등은 물론 진보 단체와 극우 보수 진영, 기업과 노동자, 빈민과 중산층 간의 갈등이 심했다. 이런 상황에서 케이프타운 몽플뢰르 컨퍼런스 센터에서 남아공의 현재와 미래 세력을 대표할 만한 차세대 지도자 22인을 모아 남아공의 미래에 대한 4가지 시나리오를 만들어보는 숙론을 진행했다. 다국적 에너지기업 셸에서 일하며 다양한 갈등 조정 역할을 해왔던 애덤 카헤인이 진행자를 맡아 ‘남아공 국민 모두의 미래’에만 집중한 논의를 진행했다. 최 교수는 “30년 전 남아공에서 그런 걸 할 수 있었다면, 2020년대 대한민국도 그런 걸 할 수 있지 않겠냐”며 “꼭 정부가 해야 할 것도 아니고, 사회지도자급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대한민국의 미래를 논하는 숙론의 장을 열어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숙론의 장’이 열릴 경우 어떤 주제를 가장 먼저 다뤄보고 싶냐는 질문에 최 교수는 ‘저출생’ 문제를 꼽았다. 최 교수는 “대한민국은 합계출산율이 0.7명대에 이를 정도로 깊은 수렁에 빠졌는데, 대통령이나 정부 부처 혼자 이 문제를 풀 수 없다. 숙론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풀 가망성이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숙론위원회를 구성하고 저출생 문제와 관련 있는 인구학·경제학 전문가뿐 아니라 정치·행정·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숙론의 장을 펼쳐보면 좋겠다는 제안이다.



“대학교수 몇 명 불러서 전문가끼리 얘기하고 일방적으로 어떤 정책을 발표해버리면 백발백중 실패할 것입니다. 숙론의 장을 동심원으로 그리되, 원이 좀 더 커져야 합니다. 다양한 일반인들도 참여할 수 있는, 더 큰 숙론의 장을 만들어보면 좋겠습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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