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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앱으로 처방전까지 OK"… 급증한 비대면 진료, 의료대란 끝나도 허용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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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적 허용에 이용자 네달 만에 6.5배
의사단체는 오진·오남용 이유로 반대
상시 허용을 위한 법제화는 갈 길 멀어
한국일보

6일 기자가 비대면 진료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병원 의사에게 진료 예약을 하고 있다. 김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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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래가 생기고 잔기침이 계속 나와요. 으슬으슬한 것 같기도 하고요."

"많이 아프진 않나요? 항생제 같이 처방해드릴게요. 챙겨드세요."

동네의원 진료실에서 의사와 환자 사이에 직접 오갔을 법한 이 대화. 그러나 사실은 비대면 진료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기자와 의사가 전화로 나눈 문답이다. 평소 기관지가 약해 고생하던 기자는 6일 낮 기침과 몸살 증세를 앓다가 비대면 진료 앱으로 상담 예약을 걸었다. 그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의사에게 연락이 왔고, 증상을 얘기했더니 비염약과 항생제가 포함된 5일 치 약 처방전을 받을 수 있었다. 진료비(6,400원)는 미리 등록한 카드로 자동 결제됐고, 처방전은 선택한 약국으로 팩스 전송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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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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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직접 병의원을 찾지 않아도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비대면 진료'가 일상생활에 스며들고 있다. 의사들의 집단 사직에 따른 의료 공백 사태를 막기 위해 정부가 대상 의료기관·환자를 더욱 확대하며 비대면 진료 이용 건수는 급증했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 등에 따르면, 3월 한 달간 주요 비대면 진료 앱(굿닥·나만의닥터·닥터나우·솔닥) 네 곳으로 접수된 진료 요청 건수는 총 15만5,599건에 달했다. 지난해 11월 2만3,638건보다 4개월 만에 약 6.5배 늘어난 규모다.

정부는 2월 의료대란 대책으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확대했다. 당초 재진 환자나 의료 약자(격오지 거주자, 노인, 장애인 등)만 받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24시간 받을 수 있다.

비대면 진료를 직접 이용했던 이들은 신속성과 편리성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경기 고양시에서 세 살과 일곱 살 아이를 키우는 김지연(36)씨는 "아이가 아파도 병원 가기 힘든 때가 있는데, 전화로 약 처방을 받을 수 있어 시간을 아낄 수 있다"고 만족했다. 서모(39)씨도 "1, 2분 진료하는 병원과 별 차이가 없었다"며 "앱에 리뷰가 실시간으로 올라오기 때문에 의사들이 더 신경 쓰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다만 스마트 기기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에 비대면 진료는 여전히 낯선 방식이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허모(84)씨는 "앱을 쓸 줄도 모르고, 몇 시간 기다리더라도 의사를 직접 만나는 게 낫다"며 "전화로 진료가 되겠느냐"고 불신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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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를 비롯한 의료계의 집단행동이 이어지고 있는 6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 환자용 휠체어가 놓여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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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단체는 비대면 진료에 매우 부정적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특수 상황에서나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가 △오진 △의료 과소비 △약물 오남용 등의 문제를 일으킨다며 반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3일 낸 입장문에서 "비대면 진료는 법적 분쟁 위험성, 의료 과소비, 중증·응급질환 치료 지연 문제를 야기한다"며 "의사 파업을 핑계로 대상을 넓힌 것은 부적절하다"고 철회를 요구했다.

하지만 비대면 진료가 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결국 '현장 의사'들이 앱을 통한 진료에 적극적으로 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앱을 통해 환자를 보는 한 의사는 "간단한 질병은 비대면으로 해도 크게 문제없다"며 "다른 측면에선 의사들의 새로운 영업 방식"이라고 귀띔했다.

이런 차원에서 코로나19나 의료대란 같은 변수를 고려하지 않더라도, 이제는 비대면 진료를 상시적으로 법 테두리 안에 들여와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다만 '상시 허용'을 위한 법제화는 갈 길이 멀다. 2021년 비대면 진료를 제도화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지만, 의정갈등 상황이 지속되면서 이번 회기에 통과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

파업 이후 의료계에 찾아올 혼란 역시 고려할 문제다. 최근 출범한 의료개혁특위에서는 비대면 진료의 제도권 편입 등 의제가 본격 논의될 전망이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비대면 진료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기보다는 환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수단 중 하나"라며 "특위에서 비대면 진료의 방향성에 대한 전방위 논의가 이뤄지면, 입법 등 관련 해결책도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현 기자 k-jeah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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