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이스라엘 충돌 사태가 진정됐지만 중동 리스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 번 더 위기가 찾아오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훨씬 더 악화될 것이다."
글로벌 리스크 예측 전문가인 이언 브레머 미국 유라시아그룹 회장(54)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매일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최근 불거진 중동 리스크에 대해 이같이 진단했다. 그는 "이란과 이스라엘이 처음으로 상대국 영토에 직접 공격을 단행함으로써 루비콘강을 건넜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충돌은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완전히 제거하기 어려워 장기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의 안보 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내다봤다.
중동사태 최악의 시나리오로는 중동전쟁이 발생하고 미국이 개입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되면 하루 2000만배럴의 원유가 수송되는 해운물류가 붕괴되고 세계 경제는 오일쇼크 이상의 충격에 빠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하 일문일답.
―중동사태가 소강상태다.
▷지난 몇 주간의 이란·이스라엘 위기는 일단 끝났다. 이란은 이스라엘에 대해 의도를 드러낸 공격을 했고, 이스라엘은 이란 내 군사시설을 타깃으로 제한적인 대응 공격을 했다. 이 두 가지는 고조되는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조치였다. 그러나 중요한 루비콘강은 이미 건넜다. 이란과 이스라엘이 모두 상대국 영토에 직접 공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만일 또 위기가 찾아온다면 중동 리스크는 훨씬 악화될 것이다.
―앞으로 중동사태는 어떻게 전개될까.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이란의 공격 덕분에 라파 지역에 군사작전을 실행할 더 큰 명분을 얻게 됐다.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라파 지역 후퇴 압박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라파에서 하마스의 잔존 군사를 위축시킨다 하더라도 가자에서 안보 상황을 관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는 뭔가.
▷이스라엘과 이란이 중동 지역에서 서로 충돌하고 미국이 개입하는 것이다. 지난 몇 주간 이에 거의 근접할 뻔했다. 다행스럽게도 미국이 배후에서 압력을 넣으면서 양측이 후퇴했다. 그러나 중동에서 충돌 리스크는 여전히 높다. 이란은 헤즈볼라, 이라크 무장단체, 예멘 후티 반군처럼 함께 싸울 동맹 세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의 북부 국경을 접하는 레바논부터 홍해, 시리아는 물론 매일 2000만배럴의 원유가 지나가는 호르무즈해협과 페르시아에까지 잠재적 재앙을 뜻한다.
―세계 외교안보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은 이번 중동 위기를 처음부터 억제하기 위해 적극적이었다. 그러나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은 국제사회의 비판을 받았고, 이란의 동맹 세력인 후티 반군은 글로벌 해운물류를 뒤흔들었다. 이란은 이스라엘에 처음으로 탄도미사일을 쏘았다. 이번 위기를 통해 미국이 글로벌 안보 리더임이 확인됐지만 동시에 이스라엘과의 관계에서 미국 파워의 한계도 드러났다.
―공급망 붕괴 따른 경제위기 가능성은.
▷중동 위기는 '원유' 문제로 즉각 이어진다. 지금까지 유가에 대한 영향이 제한적이었음은 놀랍다. 1970년대 오일쇼크와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는 상당한 양의 원유 재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페르시아만 유전으로 중동 충돌이 확산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원유 공급 붕괴는 유가를 크게 올릴 것이다. 만일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한다면 경제적 충격이 불가피하다.
―글로벌 패권 구조에도 변화가 있나.
▷현재 미국은 중동 지역에 대한 역사적인 이해관계, 상당한 미군 주둔, 이스라엘과의 밀접한 관계를 감안해 중동 위기에 깊이 개입하고 있다. 반면 다른 강대국들은 거리를 두고 있다. 유럽은 부차적 역할을 하고 있고, 러시아는 거의 무관심하다. 중국은 중동 원유 접근권을 유지하는 데만 급급하다.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으로 인해 수년 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팔레스타인 이슈가 부상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대응은 어땠나.
▷이번 중동 사태는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큰 문제였다. 명확한 해법이 부족했고, 이스라엘이 미국의 이익을 거부하는 듯 보였고, 이란과 그 동맹 세력이 합심하게 되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수세에 몰렸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라면 다를 것이라고 보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이 대통령이었다면 바이든 대통령과 다르게 대응했을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오는 11월 대선에서 이기더라도 그가 행사할 수 있는 옵션은 제한적이다. 과거 트럼프 전 대통령의 개인적 스타일에 기반한 외교 정책은 한계가 노출됐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좋은 관계였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관계는 상당히 악화됐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당시 이란과의 갈등은 최악이었다. 따라서 바이든과 트럼프 모두에게 중동 위기는 어려운 과제다.
이언 브레머 회장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은 미국을 대표하는 국제정치학자이자 글로벌 리스크 전문가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리스크 컨설팅 회사 유라시아그룹을 1998년부터 이끌고 있다. 한국에서도 출판된 '우리 대 그들' '리더가 사라진 세계'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저자다.
그는 특히 미국을 비롯한 주요 7개국(G7)의 리더십과 영향력이 줄어든다는 'G제로' 이론을 창안해 이름을 알렸다. 1969년생으로 스탠퍼드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뉴욕대·컬럼비아대 교수를 지냈다. 부친은 한국전 참전용사다.
[뉴욕 윤원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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