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한 공기. 경향신문 자료사진 |
“이 작업복의 비밀이 뭔지 알아? 우리를 투명인간으로 만들어주는 거지.”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빵과 장미>에서 마야에게 동료 청소노동자가 건네는 말이다. 영화 밖 청소노동자들이 ‘투명인간’ 취급을 받으며 일하는 현실을 세상에 알린 사람은 노회찬 전 의원이다. 2012년 국회 본회의장에서 새벽 첫차를 타고 출근하는 청소노동자들의 존재를 알린 ‘6411번 연설’은 사회에 큰 울림을 줬다.
이제는 투명인간의 노동은 진부한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들의 고단함은 덜어지지 않았다. 대학 청소노동자들은 새벽 4시30분부터 일을 시작한다. 출근 시간은 6시지만 제시간에 오면 일을 마칠 수 없다고 한다.
청소노동자들은 최소 두 끼를 학교에서 해결해야 한다. 지난달 국회 앞 기자회견에서 청소노동자 문유례씨는 “새벽에 나와 전날 쌓인 쓰레기를 치우고 화장실 변기, 세면대며 바닥까지 닦다 보면 한겨울에도 땀이 흐르고 허기가 진다. 아침을 먹어야 오전 일을, 점심을 먹어야 오후 일을 할 수 있다”고 토로했다. 그런데도 이들의 한 달 식대는 12만원, 한 끼로 따지면 2700원꼴이다. 이마저도 5년째 동결됐다. 김밥 한 줄도 살 수 없는 돈이다. 학생식당도 5000원이 넘는다.
그래서 이들은 빗자루 대신 팻말을 들었다. 평소대로였다면 먼지 섞인 땀을 식힐 시간에 캠퍼스로 나섰다. “청소노동자 밥 한 끼의 권리, 보장하라.” 지난 25일 점심 고려대 청소·경비·주차 노동자들은 대학 본관 앞에 모여 구호를 외쳤다. 서울 13개 대학의 청소·경비·주차 노동자들도 한 달째 손팻말 시위를 하고 있다. 이들은 ‘한 달 식대 2만원 인상(12만원→14만원)’을 요구하고 있다. 직접고용이 이루어진 국공립대 노동자들은 기획재정부 예산편성 지침에 따라 14만원의 식대가 책정됐다. 그렇지 못한 대학에서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같은 식대를 보장해달라 한 것이다. 하지만 용역회사로 노동자의 처우를 모두 떠맡긴 학교는 묵묵부답이다.
‘밥 한 끼’를 위해 싸우는 학교 청소·경비·주차 노동자들의 시위를 지지한다. 이들은 묻고 있다. 사람의 가치가 존중받지 못하는 이곳이 큰 배움터, 대학(大學)의 자격이 있느냐고.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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