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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홍콩판 국보법에 떠날 준비? ‘최대 부호’ 리카싱, 아파트 2차 바겐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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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식의 온차이나]

청쿵그룹, 아파트 30% 할인분양 재개

자회사 80곳도 ‘비홍콩 회사’로 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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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리카싱 회장의 청쿵그룹이 4월6일 분양에 들어간 홍콩섬 남부 웡척항 지역의 '블루 코스트' 아파트 단지. /홍콩신방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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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 주변 시세보다 30% 싼 가격에 아파트를 분양했던 홍콩 청쿵(長江)그룹이 4월 초 다시 30% 할인한 가격에 신규 아파트 단지를 분양한 일로 중국과 홍콩이 떠들썩합니다. 청쿵그룹은 홍콩 최대 부호로 꼽히는 리카싱(李嘉誠·96) 회장이 창업한 회사죠.

홍콩 입법회(의회 격)는 지난 3월 19일 홍콩판 국가보안법인 ‘국가안보수호조례’를 통과시켰죠. 반역, 내란 등의 범죄에 대해 최대 종신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해 사실상 홍콩 민주주의와 자유를 봉쇄하는 법안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번 분양은 그로부터 18일 뒤에 진행됐어요. 홍콩 안팎에서는 그동안 중국과 홍콩 내 자산을 계속 매각해온 리카싱이 다시 한번 ‘짐 정리’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옵니다. 청쿵그룹은 2022년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1년2개월 간 그룹 자회사 80곳을 홍콩에 등록하면서 ‘비홍콩회사’로 등기한 사실도 공개됐어요.

◇중국인까지 가세, 경쟁률 66대1

청쿵그룹이 이번에 분양한 아파트 단지는 홍콩섬 남부 웡척항 지역에 짓고 있는 ‘블루 코스트(Blue Coast)’입니다. 웡척항역을 코앞에 둔 역세권 아파트로, 총 642가구가 들어가요.

분양 첫 날인 4월6일 이 중 422가구의 물량이 나왔는데, 2만8000명이 분양을 신청해 순식간에 동났다고 합니다. 66대1의 경쟁률을 보였어요. 이날 계약액수는 75억 홍콩달러(약 1조3100억원)로 하루 분양액수로는 지난 10년 사이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가격이 주변 시세보다 30%가량 저렴해 거저 줍는 수준”이라고 한 중국 매체는 보도했어요.

청쿵그룹은 작년 8월 주룽반도 동쪽 야우퉁 지역의 신규 아파트 ‘코스트 라인’ 2기 132가구를 7년 전 가격으로 할인해 분양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엔 5000여명이 분양을 신청했어요.

작년 홍콩 부동산 시장은 최악의 침체기를 겪었습니다. 거래량이 3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죠. 하지만 올해는 거래가 회복되는 분위기입니다. 홍콩 정부가 부동산 경기 부양을 위해 지난 2월말 외국인이나 중국인이 홍콩 부동산을 구매할 때 내는 15%의 세금(구매자 인지세, 신주택 인지세)을 4.5%로 대폭 낮춘 덕분이죠. 중국인들이 홍콩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겁니다.

이번 블루 코스트 아파트 분양 현장에도 중국인이 대거 몰렸고, 전체 분양 물량의 10% 이상이 중국인에게 돌아갔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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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6일 홍콩 블루 코스트 아파트 단지 분양 현장의 모습. 이날 청약경쟁률은 66대1에 달했다. /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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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비가 오려하니...”

청쿵그룹이 아파트 바겐세일에 나선 건 홍콩 부동산 시장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최대한 빨리 재고 부지를 털어내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청쿵그룹이 확보해둔 홍콩 내 아파트 건설용 부지 면적은 7500만㎡에 이른다고 해요.

외국 기업의 잇따른 철수, 홍콩인 이주 등으로 인해 홍콩 부동산 시장의 장래가 어둡다고 보는 겁니다. 리카싱 회장의 오랜 사업 파트너로 리카싱재단 국장인 솔리나 차우는 작년 12월 한 국제회의에서 기자들에게 “리카싱 회장이 2021년초부터 여러 차례 ‘산 비가 오려 하니 누각에 바람이 가득하다(山雨欲來風滿樓)’, 즉 폭풍전야와 같은 상황이라면서 자금을 확보해 두라고 당부했다”고 했어요. 중국은 2020년 홍콩보안법을 제정해 사실상 홍콩을 중국 본토로 통합하는 조치에 들어갔습니다. 리카싱 회장은 그 직후부터 홍콩에 닥칠 풍파를 우려해 현금 확보에 나선 것으로 보여요.

리카싱 회장은 10년 앞을 내다보는 투자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중화권에서는 그를 ‘초인(超人)’이라고 불러요. 청쿵그룹이 30% 아파트 세일에 들어가자 중국 내에서는 “역시 리초인은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부동산 규제 완화로 중국 돈이 몰리는 시점에 자산 현금화를 위한 과감한 수를 던졌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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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최고 부호인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 /조선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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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홍콩회사’ 등기에 숨은 뜻

홍콩 명보는 4월8일 청쿵그룹이 자회사를 홍콩에 등록하면서 ‘비홍콩회사’로 등기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2022년12월부터 올 2월까지 항구 관리, 소매업, 의약, 투자 분야 등에 걸쳐 80개 기업을 등록했는데, 모두 ‘비홍콩회사’였다는 거예요.

‘비홍콩회사’로 등기를 한 데 대해 홍콩 내에서는 세금 절약과 매각 절차 간소화 등을 위한 목적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외국기업으로 등록하면 세금이 줄어들고, 기업 인수·합병 절차도 번거롭지 않다는 거죠. 하지만, 그보다는 미중 갈등에 따른 홍콩 기업 제재 등 지정학적 리스크를 낮추려는 더 큰 배경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청쿵그룹은 2015년 그룹 지분 관계를 정리하면서 지주회사인 CK허치슨홀딩스의 등록지를 이미 영국령 케이맨제도로 옮겼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취임한 2013년부터는 상하이, 광저우 등지의 상업용 부동산을 대거 매각해 그 돈을 영국 등지에 투자했죠. 홍콩 상황의 변화에 따라 그룹이 흔들리지 않도록 미리 차곡차곡 준비를 해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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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일간지 명보는 4월8일 "청쿵그룹이 해외 자회사 80곳을 '비홍콩회사'로 등기했다"고 보도했다. /명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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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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