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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 (수)

이슈 버닝썬 사태

밀린 양육비만 1억…'삭발 투혼' 엄마, 승리의 눈물 흘렸다 ['나쁜 부모' 첫 법정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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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양육비 첫 실형사건 미지급 1억원 피해당사자 김은진씨. 김정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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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햇살이 김은진(45)씨의 털모자에 내려앉았다. 봄이 왔는데도 모자를 쓴 이유는 지난해 12월의 삭발 때문이다. 당시 그는 “양육비 미지급자를 엄중 처벌하고 양육비 이행 절차를 간소화하라”는 주장을 했다. 그리고, 3개월여 뒤인 27일 김씨는 승리의 눈물을 흘렸다. 10년간 두 아이의 양육비를 거의 주지 않은 ‘나쁜 전 남편’에게 법원이 양육비 이행법 위반 혐의에 대해 징역 3월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김씨가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양육비는 올해 3월분까지 약 1억원이다. 갓난아기였던 둘째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동안 이어진 싸움이 일단락된 것이다.



이혼 뒤 10년… 양육도, 양육비도 혼자



김씨는 2014년 4월 22일 전 남편과 이혼했다. 2011년생, 2013년생 두 아이의 친권과 양육권은 김씨가 갖고, 전 남편은 양육비로 월 80만원씩을 아이들이 성년이 되기 전까지 매달 말일 지급하라는 이혼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첫째가 올해 중학교에, 둘째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될 때까지 전남편은 이혼 위자료와 양육비는커녕 연락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김씨는 매달 말일에 계좌번호를 보내며 양육비를 요구했지만, 전 남편은 연락도 없이 변호사를 앞세워 대응했다. 딱 한 번, 2021년 12월 양육비 미지급으로 법원의 감치(재판부 직권으로 가두는 조치로, 최대 30일까지 가능) 명령을 받기 직전에 기습적으로 김씨 계좌에 500만원을 송금했다. 그러고도 법원의 감치 명령을 받은 전 남편은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법대로 해라. 능력 없으면 애를 나에게 보내라.”

김씨가 ‘양육비 여전사’로 나선 건 2020년부터다. 법원의 양육비지급 이행명령(2020년 8월)→전 배우자의 3회 이상 양육비 변제 거부→법원에 감치명령 신청 후 감치 결정(2021년 12월)을 거쳐야 했다. 생소한 절차를 꾹 참고 진행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전 남편이 감치 이후에도 1년간 또 양육비를 주지 않자 김씨는 법에 따라 경찰에 고소했다.



전 남편 고소하고 첫 실형 판결 받아내



형사고소 이후엔 야간에 근무하며 경찰서‧검찰청‧법원‧은행‧주민센터 등을 찾아다니며 증거 서류를 제출했다. 수입이 절반으로 줄고 몸도 많이 망가졌지만, 몇 년간 이어진 싸움의 마지막 승부를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씨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다”고 했다.

김씨는 ‘양육비 미지급자’라고 쓴 피켓을 들고 전 남편의 집 근처에서 1인 시위를 하다가 전 시아버지에게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벌금 2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지만, 정식재판을 청구한 끝에 상대의 처벌불원으로 공소기각됐다. 김씨는 “더는 방법이 없으니까 수 십번 1인 시위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세상은 월 몇십만원의 아이 키우는 비용에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국회 앞 삭발시위에도 사람들의 눈빛은 싸늘했다. 전 남편은 부모님 집에서 지내며 지원을 받는데도 양육비를 주지 않았고, 김씨의 부모님은 병원비 등으로 여유가 없어서 늘 김씨에게 미안해했다.

지난 11일 마지막 재판에서 김씨는 “큰 아이는 얼마 전 중학교 교복을 새로 맞추고 입학식을 했다. 그런데, 저 사람(전 남편)은 단 한번도 연락이 없었고 첫 재판 후에도 피해를 복구하려는 노력조차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던 아버지도 돌아가셔서 아이들뿐만 아니라 부모님에게도 죄인이 됐다”며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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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미추홀구에 위치한 인천지방법원 전경. 김정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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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미성년 자녀들을 위해서라도 실형 필요”



이날 인천지법 형사8단독 성인혜 판사는 “전 배우자는 굴착기 기사로 일하며 주로 현금을 받아 사용하면서도 수사개시 이후나 형사재판 중에도 전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다”며 “부모의 주거지에서 안정적으로 생활하며 10여 년간 양육비 채무보다 다른 채무를 우선 변제하며 고의적으로 지급 책임을 회피했다고 볼 수 있다”고 징역 3개월을 선고하고 “도주 우려가 있다”며 법정구속했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아 기소된 ‘나쁜 부모’ 중 첫 번째 실형 선고이자 법정구속이었다.

성 판사는 “전 배우자는 정당한 양육비를 지급받기 위해 사법권리 구제절차를 여러 가지로 강구하고, 조치를 다 취했는데도 감치명령 이후 2년 넘는 지금까지도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았다”며 “이런 법질서를 경시하는 태도를 고려할 때, 추후 동종 범죄를 억제하고 양육비이행법의 목적을 달성하며, 미성년 자녀들과 양육 배우자들에게 장기간 회복할 수 없는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징역형의 실형이 필요하다”고 판시했다.

김씨는 “감사합니다”라며 법정에서 울음을 터뜨렸고 법정 밖에서도 의자에 앉아 한참을 펑펑 울었다. 이날 선고를 지켜본 사람 중엔 수원 양육비 미지급 사건 피해자 강운(52)씨도 있었다. 강씨의 전 부인은 양육비 미지급으로 기소돼 지난 14일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 이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강씨는 판결이 확정되자마자 재판받는 동안 쌓인 미지급 양육비에 대해 또 이행명령을 신청해둔 상태다. 강씨는 “제 사건 선고 보고 ‘이건 나라가 양육비를 받지 말라고 하는 건가’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판결을 보고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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