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에서 존재감 과시하는 ‘AI 기술’
■ 경제+
열심히 전쟁터를 뛰어다니던 당신, 먼발치 수풀에서 적의 움직임을 감지했다. 가까이 가보니, 웬걸. 사람이 아니라 사족보행 로봇개다. 초소형 인공지능(AI) 드론 폭탄을 꺼내 위치 정보 입력하고, 버튼을 누르니 알아서 날아가 로봇개를 타격, 상황은 종료됐다. AI 기술 발전에 따라 이런 전쟁은 더 이상 먼 미래가 아니다. 인류 역사를 뒤바꾼 핵무기를 제조한 죄책감을 떠안은 줄리어스 오펜하이머 박사처럼, 스스로 판단해 사람을 죽이는 AI가 로봇과 결합해 언젠가 인류의 존망을 위협할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다. AI 킬러로봇, 정말 현실이 될 수 있을까.
AI 장착 무기, 전쟁의 미래?
우크라이나군 65여단 ‘스카이 헌터’ 부대 장병이 전선에서 민간용 제품에 폭발물을 실은 드론을 조작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의 AI 드론은 스스로 지형을 파악하며 러시아 군사시설을 공격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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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이미 현시점 전쟁터에서 없으면 안 될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 야전(野戰)을 누비며 전쟁의 역사를 새로 써내려가는 초소형 드론부터 지휘실에서 사령관의 결정을 돕는 똑똑한 참모까지 모두 현실이 됐다.
① 야전에서: AI 드론, 미래 전쟁=작게는 12㎝에 불과한 초소형 드론도 AI를 탑재하면 ‘만능 무기’로 변신한다. 원래 드론은 원격에서 사람이 조종하거나, GPS(위성항법장치) 경로를 미리 입력해 비행한다. 그런데 AI를 탑재하면 스스로 지도를 보고 길을 찾으며 정찰한다. 여기에 폭탄을 실으면 가격이 400~500달러(소형 드론 기준, 약 55만~69만원)에 불과한 유도탄으로 변신한다. 현재 고성능 유도폭탄(JDAM)은 한 개에 3000만원, 공대지 유도미사일(AGM)은 1억원이 훌쩍 넘는다. 레이더에 잘 잡히지도 않고 요격이 힘들어 더욱 치명적이다. 글로벌 AI 방산업체 팔란티어의 전유광 국방·공공분야 고문(예비역 육군 소장)은 “현재 자율 무기체계가 탑재된 각종 드론은 이제 시작 단계지만, 궁극적으로는 전쟁의 양상을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경기도 양주시에서 열린 2024 아미 타이거 드론봇 페스티벌에서 다목적 무인차량이 돌격하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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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적군을 공격하는 것만큼, AI로부터 나를 방어하는 기술도 발전한다. 예컨대, 특수 제작 스티커를 무기나 군사 시설에 붙이면 AI 기술을 탑재한 드론이나 무인기가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기술이 발전하는 것이다. 이를 ‘적대적 공격(adversarial attack)’ 기술이라고 한다. 김창익 KAIST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사이버안보연구소장)는 “앞으로 AI 공격과 방어 기술은 끝없이 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는 전쟁에서 AI 모델인 ‘GIS 아르타’를 작전 지휘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드론 등으로 적군 위치를 파악하면, GIS 아르타가 근처 어느 부대가 어떻게 적군에게 포격할지 최적의 경로, 위치 관계, 사거리 등을 판단해 바로 알려준다. 택시·차량 호출 시 최적 경로를 계산해 매칭해주는 원리와 비슷해 별명이 ‘포병계의 우버’다. 남기헌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차량 호출 같은) 일상 기술이 군사적으로 쓰인 건 AI 기술의 국방 활용에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변화”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에서 지난 4월 열린 무기 전시회에 등장한 우크라이나의 무인 해상 드론 ‘마구라 V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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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지휘소에서: 장군님의 참모= AI는 전쟁 승패를 가르는 고급 정보를 재빨리 생산한다. 전유광 팔란티어 고문은 “AI가 분석하니 빠르게 합리적 군사적 대응 결정을 내려 전장 주도권을 지배하는 시대가 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AI와 사람의 호흡이 얼마나 잘 맞는지다. AI 기술을 탑재한 차량이나 기계가 혼자 전쟁터를 누비지 못해도, 군인을 도와 작전을 잘 수행하는 기술이 관건이다. ‘유·무인복합체계(MUM-T)’, 혹은 ‘HMT(Human Machine Teaming) ’ 등으로 표현된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개발하는 다목적무인차량 ‘아리온스멧(Arion-SMET)’이 대표적인 사례. 원격으로 사람이 차량을 조종하거나, 자율주행모드에서 전장에서 군인을 졸졸 따라다니며 필요할 때 지시를 받고 직접 총을 쏘거나, 물자를 싣고 다닐 수 있다. 현대로템의 다목적무인차량 HR-셰르파도 비슷한 무기체계다.
보급물자가 얼마나 남았는지, 앞으로 얼마나 더 필요할지, 누가 필요한지 AI가 사람 대신 빠르게 계산해줄 수 있다. 이미 한국군도 개발을 시작했다. 생성AI 스타트업 포티투마루는 방위산업청의 군수지원 AI모델 개발 사업에 지난 9월부터 착수했다. 김동환 포티투마루 대표는 “초급 장교가 보급물자 매뉴얼을 하나하나 읽지 않아도,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처럼 쉽게 습득할 수 있도록 개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AI 군사 ‘터닝 포인트’
지난 9월 제76주년 국군의 날 미디어데이 리허설에 등장한 로봇개. [연합뉴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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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분야의 ‘3차 혁명’, AI가 실제로 전쟁터에 등장했다. 전쟁의 비극이 덮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 그리고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에서다.
우크라이나군이 쓰는 10㎝ 크기의 초소형 AI 드론을 두고 “전쟁을 다시 써내려가는 중”(로이터, WSJ)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러시아의 방공망을 피해 스스로 지형을 파악하며 100㎞ 밖 러시아 군사시설과 정유시설을 때리고 있어서다. 한 우크라이나 AI 전문가는 로이터 인터뷰에서 “AI 기술을 드론에 탑재하면 목표 타격 확률이 30~50%에서 80%로 올라간다”고 추정했다.
이스라엘은 군 지휘, 정보 파악에 AI모델을 능숙히 사용한다. 하마스 대원이 머물 것 같은 건물을 파악하는 ‘가스펠(The Gospel)’, 건물을 드나드는 사람 신원을 파악하는 ‘라벤더(Lavender)’, 특정 인물이 군사건물이 아닌 자택에 머무는지 파악하는 ‘웨어스대디(Where’s Daddy)‘ 등 알려진 AI 모델만 최소 3개다. 우크라이나의 AI 기업 ’몰파르(Molfar)‘는 세계 각국 소셜미디어 게시글을 인식해 적군 위치를 파악한다.
조셉 리 팔란티어 이사(국제사업본부 한국사업 공공부문 대표)는 팩플과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면서 일종의 기술적 변곡점을 지나게 됐다”고 말했다.
AI 군대, 최강국은
AI 실력이 AI 군사력도 가른다. 방산업계 및 학계에선 AI군사력도 세계 최강은 미국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 뒤를 중국 그리고 이스라엘이 좇고 있다.
미국 국방고등연구계획국(다르파, DARPA)은 AI, 로봇 공학, 자율주행 등에서 연구를 선도해왔다. 여기에 실리콘밸리 AI 빅테크까지 가세했다. 오픈AI는 이미 국가 안보를 위해 “다르파와 협력하고 있다”고 했고, 미국 국방부와 더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안전한 AI‘를 천명한 앤스로픽마저 팔란티어, AWS(아마존웹서비스)와 협력해 미국 안보 기관에 자사의 AI 모델 ’클로드‘를 제공하고 있다.
중국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중국에도 다르파와 유사한 인민해방군(PLA) 연구기관인 군사과학원(AMS)이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들은 최근 메타의 오픈소스 AI 모델 ’라마‘를 활용해 군사용 AI 모델 ’챗비트(ChatBIT)‘를 개발했다. 특히 얼굴인식 AI 분야에선 최고로 꼽힌다.
이스라엘은 군-대학-방산기업의 삼각편대를 갖췄다. 2022년 이스라엘방위군(IDF)은 AI 전략을 발표하며 모든 군사 분야에서 디지털 전환과 데이터 활용, AI 통합을 목표로 했다. 텔아비브대와 테크니온공대는 바로 무기화할 수 있는 첨단기술을 개발하는 주축 대학이다. 유명한 방공시스템인 ’아이언돔‘은 방산기업인 라파엘이 만들었다.
한국은 미·중에 비해 빅테크 수도 적고, 군의 움직임도 느린 편이다. 올 4월에서야 AI 과학기술 강군 육성을 위한 국방AI센터가 창설됐다. AI 군수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는 작업에 이제 막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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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언·김남영 기자 youn.san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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