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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1 (일)

美·日 반도체 속도전… ‘잃어버린 30년’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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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공 앞둔 日 TSMC 공장·美 인텔 파운드리 선전포고 현장을 가다

조선일보

22일 오후 3시 정각 일본 도쿄에서 한 시민이 닛케이평균 종가가 표시된 건물 전광판을 스마트폰으로 찍고 있다. 일본 증시의 대표 주가지수인 닛케이평균은 이날 3만9098엔으로 거래를 마쳐, 거품 경제 붕괴 직전인 1989년 12월 29일의 직전 최고치를 약 34년 만에 넘어섰다. /로이터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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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낮 12시 30분 일본 구마모토현의 작은 마을 기쿠요마치(菊陽町)에 있는 대만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회사 TSMC의 신(新)공장 정문.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왕복 2차선 도로로 자동차와 트럭이 쉴 새 없이 지나갔다. 정문 바로 옆엔 초대형 야구장인 도쿄 돔 크기만 한 흰색 네모 상자 같은 건물이 우뚝 섰다. 높이 30m, 길이 100m가 넘고 창이 없는 이 건물은 TSMC의 스물세 번째 반도체 제조 공장이다. 일본·대만의 반도체 동맹을 상징하는, TSMC와 일본 반도체 관련 기업의 합작사 JASM(Japan Advanced Semiconductor Manufacturing)이 운영한다.

24일 준공식을 할 예정인 TSMC 구마모토 공장은 2022년 4월 착공했고 예정보다 2개월 당긴 22개월 만에 완성됐다. 일본 정부가 TSMC에 보조금 4760억엔(약 4조2000억원)을 지급하며 적극적으로 유치한 일본 내 첫 TSMC 공장이다. 일본 언론들은 연일 “일본 반도체의 부활을 상징하는 공장”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1980년대 세계 최강의 반도체 국가였다가 한국·대만에 패배해 몰락한 일본이 대만과 손잡고 부활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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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일본 구마모토현 기쿠요마치(菊陽町)에 있는 대만 반도체 파운드리(위탁 생산) 회사 TSMC의 신(新)공장 모습./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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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현국


이날 일본 증시는 전방위적인 AI(인공지능) 확산에 힘입은 반도체 산업 호황 기대감에 크게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도쿄 증시의 닛케이평균이 전일 대비 2.2% 상승해 3만9098엔으로 거래를 마쳐 거품 경제 붕괴 직전인 1989년 12월 29일 기록한 종전 최고치(3만8915엔·종가 기준)를 갈아치웠다. 긴 경기 정체를 뜻하는 ‘잃어버린 30년’을 지나 약 34년 만에 고점의 벽을 넘어섰다.

일본 증시는 미·중 갈등으로 인한 반사이익, 저물가 탈피 기대감 등에 힘입어 지난해 이후 지속적으로 상승해 왔다. 다만 직전 사흘 동안 하락했던 닛케이평균이 이날 강하게 반등한 데는 전일 나온 미 반도체 회사 엔비디아의 ‘깜짝 실적’이 동력이 됐다. AI 열풍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 엔비디아는 지난해 4분기 매출과 순이익이 각각 시장 전문가 예상치를 크게 뛰어넘는 221억달러(약 29조3700억원), 123억달러(약 16조3300억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265%, 순이익은 769% 급증했다.

뉴욕 증시 마감 후 발표된 실적은 엔비디아 주가를 시간 외 거래에서 약 10% 끌어올렸고, 이어 열린 아시아 증시에도 영향을 미쳤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AI 혁명에서 반도체는 필수이며 일본은 반도체 제조 장비 등의 분야에서 강점이 있다. 이날 일본 주식은 이런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이날 도쿄 증시에선 AI 관련 주가 특히 강세였다. 엔비디아와 주가가 비슷하게 움직인다고 ‘엔비디아 삼형제’라 불리는 도쿄일렉트론(전일 대비 6% 상승)·어드밴테스트(7%)·소프트뱅크그룹(5%) 등이 닛케이평균의 상승을 이끌었다.

AI 혁명으로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자 미국·일본 등 강대국들은 정부가 전폭적으로 산업과 기업을 지원하며 한때 한국·대만 등에 빼앗겼던 반도체 패권을 되찾고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앞서 21일 미국 반도체 중심지인 실리콘밸리의 새너제이 맥에너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인텔의 첫 파운드리 행사 ‘IFS 다이렉트 커넥트’는 미 정부와 기업이 힘을 모아 글로벌 반도체 주도권 장악에 나선 모습을 드러내는 현장이었다. 화상으로 참가한 지나 러몬도 미 상무 장관은 “더 많은 반도체가 미국에서 생산되어야 한다. 실리콘(반도체)을 실리콘밸리로 되돌려 놓자”고 강조했다. 한국·대만 등 동아시아에 의존하는 반도체 생산의 기지를 미국으로 돌려 반도체 시장을 이끌던 옛 영광을 되찾겠다는 목표를 강조한 것이다.

이날 인텔은 AI 시대를 겨냥한 ‘인텔 반도체 파운드리’ 계획을 공개했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인텔이) 미국·유럽 중심의 서구 제조업을 재건하겠다”고 했다. 행사엔 러몬도 장관을 비롯해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아트 드 지우스 시놉시스 창업자, 애니루드 데브간 케이던스 CEO 등 미국 테크 업계 거물들이 총출동해 반도체 주도권 장악을 위해 조직적으로 협력할 ‘아메리카 원팀’의 모습을 보여줬다.

[구마모토=성호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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