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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공공병원으로 발길 돌린 환자들 “의료대란 여기까지 옮아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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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병원 환자·취약 계층
진료 거부·지연 등 우려에
서울의료원·보라매병원 찾아

의료진도 “업무량 증가해”
비상체계 가동 등 검토 중

“30년 넘게 서울아산병원만 다녔거든요. 거기서 입원도 하고 약도 받고 그랬는데…, 파업한다고 하니 별수 있나요. 응급 환자니까 일단 여기로 바로 왔죠.”

21일 오후 1시쯤 서울 중랑구 신내동 서울의료원 응급실에서 만난 송재식씨(78)가 말했다. 그는 뇌경색·심근경색으로 치료를 받아온 남편이 이날 오전 갑자기 황달 증상이 생겨 응급실에 왔다고 했다. 남편이 병과 싸웠던 세월만큼 오래 믿고 치료를 맡긴 병원이 있지만 이날만은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송씨는 “(전공의 공백이) 길어지면 당분간 여기로 와야 한다”면서 “의사들이 왜 ‘내가 잘났다’는 식으로 나오는지 화가 난다. 정부가 절대 양보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 등으로 근무를 중단하자 일부 환자들은 ‘의료대란’을 피해 공공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서울의 이른바 ‘빅5’(서울대·세브란스·서울성모·서울아산·삼성서울) 병원에서 진료가 어렵다며 거부당했거나, 진료 지연 및 혼선을 걱정한 시민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서울의료원이나 보라매병원 등을 찾았다. 그러나 공공병원에서도 일부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데다 규모도 대형병원에 비해선 작은 편이어서 이번 사태가 길어지면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서울 동작구 보라매병원에서 만난 김경훈씨(64·가명)도 대형병원 응급실에 가려다 발걸음을 돌려 이곳으로 왔다고 했다. 짙은 멍이 든 눈 위에 거즈를 덧댄 채 이동하던 김씨는 “어제 크게 다쳐서 동네 병원에 갔는데 대형병원으로 가봐야 할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대형병원에서 받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여기로 왔는데 여기서도 ‘의사가 없다’며 다른 병원으로 가라고 한다”고 말했다. 이날 보라매병원 1층 접수·수납 창구는 이른 시간부터 다소 붐비는 모습이었다. 일반주사실 등 일부 시설도 노인 환자들로 북적였다. 선택지가 공공병원밖에 없는 취약계층은 이번 사태가 미칠 파장에 대한 우려가 특히 컸다. 암으로 수술을 했다는 정재윤씨(56)는 “보라매병원에서 여러 번 수술을 했는데 전공의가 파업한다고 하니 걱정돼서 둘러보러 왔다”면서 “나는 극빈층이라 다른 병원에서 지원을 받기도 어렵고 갈 수 있는 곳이 한정돼 있다”고 했다. 정씨는 “그래도 공공병원이니까 하는 믿음이 있는데, 만약 문제가 생기면 지방까지 가야 한다”며 한숨을 쉬었다.

공공병원 의료진의 고군분투는 전공의가 대거 빠져나간 대형병원 상황과 다를 바 없었다. 보라매병원 휴게실에서는 몇몇 간호사들이 모여 “거기도 우리가 커버해야 되나” “자기 환자가 아니어도 부르는 건가” 등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간호사는 “전에는 간호사들이 하지 않았던 업무를 하라는 지시를 받는 상황”이라며 “업무량 증가 때문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서울 동대문구 동부병원에서 만난 환자이송 담당자는 “공공병원까지 의료대란의 여파가 있을 것이라고 해서 걱정이 컸는데 다행히 아직 이 병원까지는 영향이 적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앞으로 대란이 옮아오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서울의료원 관계자는 “대형병원이 포화 상태다 보니 (우리 병원) 진료 대기가 평소보다 길어지는 면은 있을 것”이라며 “서울시 방침에 따라 향후 진료 시간을 늘리거나 응급실을 24시간 가동하는 등 비상 진료체계를 운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배시은·이예슬·강은 기자 sieun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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