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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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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천명에 감독 데뷔… 점점 좁아지는 한국 영화 등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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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개봉 영화 92편 중 신인 감독 첫 작품은 12편

설 연휴를 앞두고 개봉한 영화 ‘도그 데이즈’와 ‘데드맨’은 늦깎이 신인의 입봉작이다. 도그 데이즈의 김덕민 감독은 JK필름 영화인 ‘그것만이 내 세상’ ’영웅’ 조감독 출신으로 ‘윤제균 키드’, 데드맨의 하준원 감독은 영화 ‘괴물’의 각본가로 ‘봉준호 키드’라 불렸다. 그러나 두 감독은 올해 51세와 48세로 ‘키드’라 하기엔 민망한 나이다. 지난해 여러 영화제에서 신인 감독상을 휩쓴 ‘올빼미’의 안태진 감독 역시 ‘왕의 남자’ 조감독 이후 17년 만인 50세에 첫 장편영화를 선보였다.

‘지천명(知天命)’ 감독들의 데뷔는 한국 영화의 신인 등용문이 그만큼 좁고 험난해졌음을 보여준다. 사회 전반의 고령화 현상이 영화계만 비켜갈 순 없겠으나, 한국 영화의 특장이었던 역동성이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더딘 세대교체는 영화가 주요 소비층인 20~30대를 대변하지 못하고, 젊은 세대가 한국 영화에 등을 돌리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조선일보

그래픽=이철원


지난해 한국 영화 개봉 일람을 기준으로, 독립영화를 제외한 일반 영화 92편 중 신인 감독의 입봉작은 12편이었다. 독립 영화로 데뷔한 후 첫 상업 영화를 찍은 감독을 포함해도 16편이었다. 이들의 평균 데뷔 나이는 약 43세. 20년 전인 2003년(35세)과 비교하면 8년이 늦어졌다.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로 불렸던 2003년엔 개봉 편수가 53편으로 요즘의 절반 정도에 불과했지만, 그중 23편이 신인 감독의 데뷔작이었다. 박찬욱·봉준호 감독이 장편영화로 데뷔한 나이도 각각 29세, 31세였다.

“넥스트 봉준호·박찬욱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10년 전부터 계속되는데도, 신인 감독을 위한 기회는 좀처럼 늘지 않고 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적은 예산으로도 영화를 많이 만들었던 과거와 달리 영화에 대형 자본이 투입되면서 신인 감독에게 기회가 돌아가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 영화계 내부에서도 인위적으로라도 세대교체를 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그래픽=정인성


요즘 영화감독 지망생들은 자조적으로 자신을 “묵은지”라 일컫는다. 2010년부터 영화와 OTT 드라마 연출팀으로 일하며 틈틈이 단편영화를 찍어온 30대 후반 감독은 “OTT 활성화로 영화 제작 편수가 준 탓도 있지만, 시장이 위축되니 도전을 하지 않으려는 보수적인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신인 감독은 신선한 아이디어로 승부를 봐야 하는데, 모험적인 기획으로는 투자를 받기 어려우니 방향성을 잃은 느낌”이라고 했다. 지천명 감독들의 데뷔는 이들에게 희망이자 절망이다. 그는 “50대에 데뷔할 수도 있겠지만, 그때까지 버티기가 쉽지 않아서 유튜브나 OTT 플랫폼으로 눈을 돌리는 이가 많다”고 했다.

경직된 구조는 능력 있는 인재들을 떠나게 하는 요인이다. 한 30대 배우는 “매번 비슷한 감독에 비슷한 배우가 만드니 비슷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젊은 세대에선 영화보단 오히려 창업이 ‘힙’하고 예술적이란 인식이 생긴 것 같다”고 했다.

흥행 보증수표였던 천만 영화감독들도 지난해 줄줄이 흥행에 참패하면서, 오히려 지금이 신인 발굴에 힘써야 할 때라는 분석도 나온다. 관객도 스타 배우·감독의 이름값보다는 신인 감독의 새로움에 주목했다. 지난해 한국 영화 박스오피스 10위권엔 ‘콘크리트 유토피아’ ’잠’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까지 신인 감독의 활약이 돋보였다.

유재선(34) 감독의 ‘잠’을 만든 제작사 루이스픽쳐스는 홍의정(42) 감독의 ‘소리도 없이’(2020)에 이어 신인 감독의 중소형 영화로 잇따라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김태완 루이스픽쳐스 대표는 “코로나 이후 OTT 보편화로 관객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기존 한국 영화의 ‘흥행 공식’이 오히려 리스크가 된 것 같다. 어느 쪽이 더 위험한 투자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할 때”라고 했다.

김 대표는 코로나 이후 기성 감독들이 OTT로 대거 진출하면서, 자연스럽게 신인 감독과 협업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달라진 시장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선 글로벌 수준의 작품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글로벌 시장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센스를 갖춘 신인 감독의 필요성은 점점 커질 것”이라고 했다.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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