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미얀마 사가잉주 캄파트 지역에서 마을 사람들이 미얀마군의 공습으로 숨진 이들의 주검을 수습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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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1일로 쿠데타 발발 만 3년을 맞는 미얀마에선 최근 동북 지방 소수민족 반군인 미얀마민족민주동맹군(MNDAA)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진 한장으로 인해 큰 파문이 일었다. 사진에는 남성 7명이 둥근 탁자를 앞에 놓고 편안한 복장과 표정으로 물 등으로 건배를 하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얼핏 보면 중년 남성들의 평범한 친목 도모 모습으로 보인다.
미얀마 군부가 패닉에 빠진 것은 사진에 찍힌 인물들 때문이었다. 지난 5일 미얀마민족민주동맹군은 미얀마 동북쪽에 위치한 코캉자치구 주요 도시인 라우카이를 점령했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장교 200명을 포함한 2400명의 미얀마군이 투항했다며, 문제의 사진을 온라인에 올렸다. 사진에 등장한 이들은 반군에 항복한 미얀마군 지휘관(준장)들이었다. 3년 전인 2021년 2월1일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이끌던 정부를 전복하고 정권을 찬탈한 뒤 민 아웅 흘라잉 군부 정권이 동북쪽 지역의 통제력을 상실했음이 확인된 순간이었다.
미얀마군은 1948년 독립 이후 여러 소수민족 반군과 크고 작은 내전을 치러왔다. 하지만, 코캉자치구에서 당한 패배는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사상 최악의 사태라는 평가가 나온다. 타이 방콕에 기반을 두고 미얀마 소식을 전하는 이라와디는 라우카이 사령관, 코캉자치구 사령관 대행, 55사단장 등 준장 3명이 사형 선고를 받았으며, 나머지 준장 3명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고 전했다. 영국 비비시(BBC) 방송도 미얀마 수도인 네피도의 소식통을 인용해 지휘관 3명이 사형 선고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미얀마 군부는 라우카이 함락은 인정하면서도 지휘관 사형 선고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미얀마민족민주동맹군(MNDAA)에 항복한 미얀마군 지휘관 일부가 물 등으로 건배를 하고 있는 모습. 소셜미디어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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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군부는 쿠데타 이후 끈질기게 이어진 시민들의 항의 시위를 유혈 진압하며 폭압적 통치를 이어왔다. 군부가 살해하거나 수감·구금한 이들을 추적하는 미얀마의 정치단체 ‘정치범지원협회’(AAPP)에 따르면 29일 현재 쿠데타 뒤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군부에 희생된 이는 4453명에 이른다. 유엔난민기구(UNHCR)도 올해 초, 쿠데타 이후 미얀마 내에서 집을 잃고 떠도는 이들이 260만명을 넘는다고 밝혔다. 군부는 잔혹한 탄압으로 자신들을 위협할 싹을 도려낼 듯 보였다.
하지만, 민주화 세력이 2021년 4월 구성한 임시정부인 국민통합정부(NUG)가 그해 9월 군부에 전쟁을 선포하며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이와 함께 소수민족 반군도 군부에 저항을 계속하며 내전이 격화됐다. 미얀마민족민주동맹군과 타아웅(타앙)민족해방군(TNLA), 아라칸군대(AA)로 구성된 ‘형제동맹’이 지난해 10월27일 중국과의 접경지대인 샨주를 중심으로 시작한 군사작전인 ‘1027작전’ 뒤 군부는 수세에 몰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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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1027작전 이후 사태 전개와 관련해 중국이 중재자로 나서 미얀마 군부에 미얀마민족민주동맹군과 타아웅민족해방군의 활동 지역에 자치권을 허용하자는 제안을 했다고 전했다. 미얀마 군부는 이를 거절했지만, 샨주에 주둔 중인 군이 반군에 반격을 할 수 있는 지원을 해주지도 못했다. 결국 고립된 미얀마군은 반군에 무더기로 항복하게 된다.
미얀마 군부가 밀리는 곳은 이곳뿐만이 아니다. 이들은 올해 들어 방글라데시 국경 지역에서도 아라칸군대에 기지 몇 군데를 빼앗긴 것으로 전해진다. 아라칸군대는 사로잡은 미얀마군과 탈취한 무기·탄약을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인도 현지 언론인 힌두는 지난 23일, 인도 정부가 최근 소수민족 반군과 전투 뒤 인도 북동부 미조람주로 도망친 미얀마군 184명을 미얀마로 돌려보냈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권 지지층에서도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에 대한 불만이 표출되고 있다. 극우 성향 승려인 파욱 코 토는 19일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물러나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잠시 구금된 뒤 풀려났다.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태가 미얀마 군부 정권의 존립을 위협할 정도는 아직 아니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미얀마민족민주동맹군 등 형제동맹은 과거 자신의 세력권이었던 라우카이 등을 점령한 뒤인 지난 11일 중국의 중재로 윈난성 쿤밍에서 미얀마 군부와 휴전 협정을 맺었다. 다른 소수민족 반군들도 국경지대를 중심으로 미얀마군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핵심 도시 점령까지는 못하고 있다.
미얀마 정세 변화에 결정적인 열쇠를 쥔 쪽은 이 나라와 2200㎞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이다. 애초 ‘형제동맹’이 미얀마군을 밀어붙인 1027작전을 시작한 명분 중 하나가 중국 국경지대에 범람한 온라인 사기(보이스피싱) 박멸이었다. 중국 정부가 미얀마 군부가 중국인을 겨냥한 온라인 사기 범죄 단속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데 불만을 갖자 반군이 이를 기회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즉, 중국의 묵인이 있었기 때문에 ‘형제동맹’의 공세도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는 중국이 2022년 말 이후 미얀마에 대한 외교적 개입을 강화하고 있다고 짚었다. 덩시쥔 중국 외교부 미얀마 특사는 2022년 겨울부터 지난해 봄까지 미얀마 주요 소수민족 반군 연합체(EAOs)와 회담했다. 덩은 이 자리에서 미국 워싱턴에 사무소를 개설한 국민통합정부가 서방과 가까워지고 있다며 소수민족 반군들은 이들과 거리를 둬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국은 서방의 미얀마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고 있다고 이 연구소는 짚었다. 미-중 간의 전략 경쟁이 쿠데타 이후 미얀마 정세에까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셈이다.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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