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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7 (토)

“퇴출 시나리오는 없다”…COP28의 의장이 화석연료 옹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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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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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축·축소가 아닌 퇴출 필요”
유엔 총장 발언에 ‘정면 반박’
탄소 포집·저장·활용 등 펼쳐
순배출량 줄이자는 산유국들

세계기후연구프로그램 등
“석유 유지 땐 ‘1.5도’ 불가능”

기후위기 대책을 논의하는 국제회의의 의장을 ‘산유국’에 맡겨도 될까. 회의 개최 전부터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꼴’이라는 우려가 나왔는데 그대로 현실이 됐다. 영국 일간매체 가디언은 지난 3일(현지시간) 유엔 기후변화협약 제28차 당사국 총회(COP28)의 술탄 자비르 의장(사진)이 “1.5도 목표를 지키기 위해 화석연료를 퇴출해야 한다는 과학이나 시나리오는 없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자비르 의장이 지난달 21일 한 온라인 행사에서 전임 유엔 기후변화특사인 메리 로빈슨의 질의 과정에서 이같이 답하는 영상도 함께 공개했다.

앞서 지난 1일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에서 열린 COP28에 참석한 각국 대표단에 “과학은 명확하다. 지구온난화를 1.5도 이내로 제한하려면 화석연료를 태우는 것을 궁극적으로 멈춰야 한다”며 “감축하거나 축소하는 게 아니라 퇴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도 시점으로만 보면 자비르 의장이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말을 정면으로 반박한 셈이다. 자비르 의장은 UAE 산업첨단기술부 장관이면서 국영 석유회사인 아드녹의 최고경영자(CEO)이기도 하다.

해당 영상에서 자비르 의장은 “화석연료 감축은 피할 수 없지만 실용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로빈슨에게 “세계를 동굴 속에서 살던 때로 돌려놓고 싶지 않으면, 사회경제적으로 지속할 수 있는 개발을 하면서 화석연료를 퇴출할 수 있는 로드맵을 내놓으라”고 말했다. 또 “세계는 에너지원이 계속 필요하다”며 “(UAE는) 석유와 가스의 탄소 집약도가 가장 낮은 곳”이라고 주장했다.

로빈슨은 “당신의 회사가 미래의 화석연료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지 않나”라고 묻자 자비르 의장은 “당신이 편향된 미디어를 보고 있고, 그 정보는 틀렸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7일에는 UAE가 기후정상회의에 앞서 외국 정부들에 자국 석유·가스 기업을 홍보하고 거래를 제안할 계획을 드러내는 문서를 영국 BBC가 입수해 보도했다. 유엔 기후변화협약 사무국은 당시 기자회견을 열어 “COP 의장의 기본 원칙은 공정성”이라며 “건전하고 독립적이고 공정한 판단에 따라 이기심, 선호 또는 특혜 없이 행동해야 한다”고 밝혔다.

UAE 등 산유국들은 ‘화석연료 퇴출’보다는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등을 통해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줄이자고 주장한다.

세계 19개국 과학자들의 네트워크인 ‘미래의 지구’와 국제과학평의회·세계기상기구의 후원으로 설립된 세계기후연구프로그램 등 연구진은 자비르 의장의 발언이 보도된 3일 ‘기후과학의 10가지 새로운 통찰 2023/2024’ 보고서를 내고 ‘화석연료의 신속한, 단계적 폐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구를 보면 화석연료의 생산 기준, 소비 기준 양쪽으로 봐도 기존 인프라의 수명 동안 예상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1.5도 목표(달성 확률 50%)를 이루기 위해 배출할 수 있는 ‘탄소예산’을 이미 넘어섰다. 기존의 ‘석유 추출시설’을 유지하면 1.5도 목표를 지키기 어렵다는 의미다. 여기에 천연가스, 석탄 시설까지 합치면 ‘2도 목표’ 탄소예산에 가까워진다.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파리협정의 목표 범위를 유지하려면 신속하고 관리된 화석연료의 단계적 폐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고소득 국가가 전환을 주도하고 저소득 국가를 지원해야 한다”며 “사회경제적 영향을 최소화하며 정의로운 전환을 추구해야 한다”고도 밝혔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6차 종합보고서에도 “화석연료 인프라에 추가 설치 없이도 1.5도 목표를 위해 남은 탄소예산을 초과한다”고 명시돼 있고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지난 9월 발표한 ‘넷제로 로드맵’에서 “새로운 장기 원유, 가스 생산 프로젝트는 필요치 않다. 새 탄광, 광산 확장, 새 석탄발전소도 필요하지 않다”고 했다.

저명한 기후과학자인 장파스칼 판이페르셀(전 IPCC 부의장)과 마이클 E 만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교수 등은 이날 자비르 의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기후시스템의 측면에서 본다면 2050년까지 화석연료 퇴출에 합의하는 것을 인류가 반드시 이뤄내야 하고, 숲 파괴도 멈춰야 하는 게 ‘저지선’”이라며 “2050년까지 매우 적은 비중의 화석연료가 쓰일 수는 있으나, 100% 포집·저장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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