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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유가와 세계경제

유가 다시 100달러 시대가 올까요? YES or NO [스페셜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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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왕십리에 사는 주부 김아름 씨(35). 미취학 아동 딸, 초등학생 아들과 주말마다 고궁 나들이, 근교 박물관, 미술관 관람 등으로 알차게 시간을 보내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런 교외 이동이 부담스럽다고. 휘발유 가격 때문이다. 7월 초만 해도 ℓ당 1500원대였는데 9월 들어 1800원 중반, 서울 시내에서는 2000원을 훌쩍 넘긴다. 김 씨는 “아이들과 역사책에 나오는 곳들을 찾아다니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왔는데, 나들이 횟수를 줄여야 하나 싶을 정도로 기름값이 올랐다”며 “여기에 더해 추석을 앞두고 농산물, 생필품 가격까지 덩달아 오르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국제유가 오름세가 예사롭지 않다.

지난 9월 8일(현지 시간) 런던 선물거래소에서 11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배럴당 90달러를 돌파했다. 종가 기준으로 지난해 11월 16일 이후 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연초만 해도 50달러에서 60달러를 오가던 국제유가가 6개월 만에 50% 이상 급등하면서 산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유가 급등 왜?

아람코 추가 상장…높은 기름값 유리

석유의 종말.

안 르페브르 발레이디에가 2011년 쓴 책이다. ‘석유 매장량이 더는 충분하지 않을 때가 올 테니 이 문제에 매우 신속히 대처해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책이 나온 지 11년 만인 지난해 말, 이번에는 ‘석유의 종말은 없다(로버트 맥널리 저)’라는 책이 나왔다. 이 정도 기간이면 대체에너지 비중이 획기적으로 높아져야 했지만 상황이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로버트 맥널리는 책에서 “화석에너지는 현재 전 세계 에너지 사용의 약 83%를 차지하고 있으며 농업, 산업, 교통수단, 국방 등 석유가 지배하고 있다. 게다가 4차 산업과 대체에너지,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석유 산업에 투자가 줄어 원유 시추 역시 감소하고 있다. 공급량은 줄고 있지만 그에 따른 사용량을 확 줄일 수 없는 상태”이므로 ‘석유의 종말’이 쉽지 않을 것이라 전망했다.

이런 기류는 관련 주식 움직임에서도 찾을 수 있다.

2020년 9월. 대형 우량주로 구성되는 다우지수가 석유 회사 엑슨모빌을 퇴출시켰다. 엑슨모빌은 무려 1928년부터 다우지수에 몸담았던 기업이다. 그 자리에 세일즈포스가 들어왔다. 그런데 올해 9월까지 지난 3년간 두 종목 주가 추이는 어떨까. 엑슨모빌은 배당금을 포함하면 230% 수익률을 올렸다. 반면 같은 기간 세일즈포스 주가는 약 19% 떨어졌다. 2020년 ESG 열풍이 불면서 화석연료 관련주는 미국 증시에서 찬밥 신세가 됐지만, 이런 푸대접에도 불구하고 국제유가 상승 여파로 석유 관련주는 여전히 건재한 모습이다.

최근 유가 상승 이유도 ‘석유의 종말은 없다’는 시각에 더 가깝다.

무엇보다 수급이 꼬였다. 주요 산유국에서 생산량을 줄인, 일명 감산 여파가 컸다. 러시아와 사우디아라비아는 하반기부터 꾸준히 원유 감산을 해왔다. 그나마 9월 들어 생산량을 좀 늘릴 것으로 예상했지만 오산이었다. 사우디는 7월부터 원유 생산을 하루 100만배럴 줄이고 있으며 지난 9월 5일에는 감산 조치를 12월까지 연장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사우디의 이런 행보에는 사실 여러 속내가 있다. 대표적인 이유는 국영 석유·천연가스 기업 아람코의 500억달러 규모 추가 상장이다. 상장이 흥행하면 정부 재정이 늘어나는 등 사우디 입장에서 이득이다. 그러려면 원유 가격이 높아야 하기에 추가 감산은 한동안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미국과 ‘외교 힘겨루기’ 면에서 유리하다는 시각도 뒤따른다. 이는 고스란히 국제유가에 타격을 주고 있다.

초과 수요도 국제유가 상승 원인 중 하나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국제 정세를 떠나) 근본적인 원인은 이미 5월부터 4달 연속 글로벌 원유 수급이 초과 수요 상태였다는 점”이라면서 “예상보다 경기가 좋은 미국 등 서방 선진국 수요가 늘어났고 이상 기온에 따른 발전 수요도 있었다”고 말했다.

미국의 에너지업계 내부 사정도 영향을 끼쳤다.

보통은 국제유가가 흔들리면 미국이 전략비축유(SPR)를 풀거나 정유 생산량을 줄여 시장에 대응했다. 그런데 미국 정유업계가 코로나19 사태 때 방역 문제로 미뤘던 시설 정비 작업을 올해 상반기에 시행하면서 생산량을 늘리기 어려워졌다. 그러니 이번 유가 급등에 또 미국이 전략비축유 카드를 쓰기가 애매한 상황이 됐다. 최근 미국 통계(마켓워치 자료)에 따르면 미국 전략비축유 재고 수준이 46일분 정도로 추산된다. 통상 2개월분 원유 공급을 확보하고 있던 때와 천양지차다. 이는 장기 평균의 3분의 1 수준일뿐더러, 1982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선철 프루츠투자자문 대표는 “미국 정부가 클린에너지, 친환경 정책으로 전환하는 한편 기존 화석에너지 산업에 대해서는 규제를 강화하면서 과거 10년 넘게 이어진 CAPEX(설비 투자) 부족이 지금의 유가 급등 기폭제가 됐다”고 총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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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발(發) 감산 여파로 브렌트유를 기준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할지를 두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진은 아람코가 운영 중인 해상 가스전 모습. (아람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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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혜 업종, 타격 큰 업종?

현대건설, 사우디 수주 ‘잭팟’

통상 고유가 시대에는 정유, 건설, 기계 업종이 수혜주로 꼽힌다.

정유주는 유가가 오르면 정제마진 개선으로 영업이익이 크게 높아질 수 있다. 정제마진은 휘발유, 등유 등 석유 제품 가격에서 원료인 원유 가격 등을 뺀 수치다. 보통 배럴당 5달러를 손익분기점으로 치는데 최근 정유업계 정제마진은 8월 기준 12.7달러에 달했다. 연말 실적 잔치를 기대하게 하는 통계다.

에프앤가이드가 에쓰오일의 3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를 8월보다 21.1% 높여 잡았고, SK이노베이션과 GS도 각각 9.7%, 3.9% 올려 잡았다.

건설, 기계 업종 역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중동 지역에 돈이 돌기 시작하면 건설·플랜트 사업 발주도 그만큼 활발해질 수 있다. 실제 올해 6월 현대건설은 아람코가 발주한 50억달러 규모 석유화학단지 공사를 따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1~8월 해외 건설 수주 실적은 200억달러를 넘겨 2018년(204억달러)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HD현대일렉트릭 역시 사우디에 678억원 규모 전력 기기 공급 계약을 했다.

물론 가슴앓이하는 업종도 있다. 항공·전력주다. 특히 항공사는 영업비용에서 30%를 차지하는 항공유 상승세가 뼈아프다. 그나마 전기요금 인상으로 버티고 있던 한국전력 역시 최근 고유가 여파에 원가율이 상승하면서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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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 이제 어디로?

역사상 재고 최소…100달러 돌파 가능

문제는 앞으로다. 세계 경제 회복세에 따라 유류 수요 확대가 예상되는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의 자발적 석유 감산 연장과 재고량 부족이 맞물리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올 4분기 글로벌 석유 시장 공급 부족분이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당분간은 국제유가가 예전 가격으로 내리지는 않을 가능성이 크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9월 월례보고서를 통해 2024년까지 세계 원유 수요가 하루 225만배럴 더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OPEC은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 지정학적 긴장 등 각종 악재에도 “지속적인 세계 경제 성장이나 특히 관광과 항공 여행·차량 이동의 꾸준한 회복을 고려할 때 석유 수요가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내년에도 중국의 지속적인 상황 개선 속에 견고한 세계 경제 성장으로 석유 소비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 경제가 회복하면 올 4분기 전 세계적으로 부족해질 석유 공급량은 하루 330만배럴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OPEC 보고서에 따르면, OPEC 13개 회원국은 이번 분기 들어 현재까지 하루 평균 2740만배럴을 생산해왔다. 소비자 수요에 비해 약 180만배럴 적은 생산분이다. OPEC은 올 4분기 예상되는 소비자 수요를 모두 충족하려면 하루 약 3070만배럴을 공급해야 한다고 추산했다. 결국 하루 330만배럴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내년 하반기 이후 미국이 기준금리를 내릴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며 “세계 경제가 회복하면 원유 수요가 덩달아 늘어나고 원유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에서는 여름철 항공 여행 증가, 중국의 석유화학 활동 급증으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까지 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파생상품 중개업체 오안다(OANDA)의 에드워드 모야 애널리스트는 “유럽과 중국 경제지표가 개선되기 시작하면 국제 원유 시장 수요가 더 늘어날 수 있다”며 “이에 따라 브렌트유가 배럴당 100달러 수준으로 오를 수 있다”고 예측했다.

가뜩이나 공급이 부족한데 원유 재고량은 앞으로 더 줄어들 전망이다. 과거에는 OPEC에서 감산을 결정하면 다른 산유국이 생산을 늘리는 방식으로 가격을 방어해왔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OPEC 회의에서 하루 200만배럴 감산이 결정됐을 때만 해도 국제유가는 오히려 하락했다. 미국이 유가 안정을 위해 2021년부터 꾸준히 전략비축유를 방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탓에 이제 미국 내 전략비축유는 역사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까지 줄어들었다. 선진국 원유 비축량은 이미 2015~2019년 평균보다 약 1억1400만배럴이나 적은 상태다. 블룸버그는 세계 석유 재고량이 올 3분기에 급감했으며, 4분기 공급 부족이 현실화하면 2007년 이후 최대 재고 감소 상황이 될 것이라 진단했다. 박수연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OPEC플러스의 감산 의지가 큰 반면, 비(非)OPEC플러스 국가에서는 감산을 상쇄할 만큼 원유를 증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추세가 2014년부터 누적된 결과라는 점에서 유가는 장기적으로 상승 압력이 크고 하방 경직성도 크다는 설명이다.

이선철 대표도 연내 배럴당 100달러 돌파가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말한다. 이 대표는 “각국 정부와 기업들이 친환경 기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화석연료 부족에 대비하지 못한 탓에 유가는 역사적 최고점인 140달러도 깰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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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가 10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사진은 캘리포니아주의 한 주유소에서 미국 시민이 주유를 하는 모습. (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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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달러 돌파 없다?

“경기 둔화 국면에 수요 줄어들 것”

반면 미국 쪽 시각은 조금 다르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4분기 브렌트유 가격 전망은 기존 배럴당 86달러에서 93달러로 상향 조정하면서도 공급 부족분이 OPEC의 예측치보다는 크게 적다는 판단이다. EIA는 글로벌 원유 재고 감소량이 올 3분기 하루 60만배럴, 4분기 하루 20만배럴에 각각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4분기에는 전 세계적으로 원유 부족분이 하루 23만배럴 수준일 것으로 예상했다. 원유 재고가 금세 회복되면 내년 하반기까지는 브렌트유가 배럴당 87달러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같은 맥락에서 JP모건과 RBC캐피털마켓은 현 상황에서 유가가 100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블룸버그가 보도했다. 싱가포르 소재 반다인사이츠 설립자인 반다나 하리는 “현재 상승 모멘텀이 없다”며 “추가로 상승하려면 새로운 요인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국제유가 흐름과 관련해 경기 전망을 특히나 주목하는 분위기다. 세계 경제가 기대만큼 회복하지 않을 가능성도 적잖은 만큼 수요 둔화 여파로 가격이 떨어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정용택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내년 이후 미국과 유럽 경기 둔화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높고, 중국 성장률도 다시 4% 초반으로 내려앉을 가능성이 있다”며 “동절기까지는 현재 유가 수준이 유지되겠지만 내년 1분기가 지나면 전반적인 수요 둔화가 부각돼 유가 역시 하락세를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세원 신한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국제유가가 특정 분쟁이나 사고 등 일시적으로 배럴당 100달러를 터치할 가능성은 남았으나 미국, 유럽, 중국 등에서 석유 수요 증가세가 둔화되고 있어 내년까지는 유가가 더 오르지 않고 현재 수준에서 가격이 횡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7호 (2023.09.20~2023.09.2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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