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제10회 춘천영화제 이준익 감독 데뷔 30주년 기획전 ‘라디오 스타’ 상영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한 배우들과 감독. 오른쪽부터 김형석 집행위원장, 배우 안성기, 박중훈, 안미나, 이준익 감독. 춘천영화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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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훈이 박민수가 됐네.”
제10회 춘천영화제에서 열린 이준익 감독 데뷔 30주년 기념전을 축하하기 위해 10일 오후 배우 안성기와 한 차로 춘천에 도착한 박중훈을 보고 이 감독이 말했다. 박민수는 2006년 영화 ‘라디오스타’에서 안성기가 연기한 인물로 한물간 스타 ‘최곤’(박중훈)을 20년 간 애틋하게 보살펴온 매니저다.
17년 뒤 혈액암에서 회복 중인 안성기를 이제는 박중훈이 오래된 매니저처럼 살갑게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이 감독이 한 이야기다. 이날 ‘라디오스타’가 상영된 메가박스 남춘천에서 이들을 만났다.
“데뷔하기 전에 명동에서 안성기 선배를 보고 너무 신기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계속 쫓아갔던 기억이 나요. 그런 대스타와 ‘칠수와 만수’(1988)에서 시작해 ‘투캅스’(1993)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라디오 스타’까지 호흡을 맞췄어요. 이게 촬영인지 현실인지 모를 정도로 둘이 한 몸처럼 찍었던 작품입니다.”
박중훈의 말을 받아 아직 목소리가 회복되지 않은 안성기가 “박중훈과 찍은 세 편의 영화를 사람들이 모두 좋아했고 이 영화에서도, 하여튼 그랬습니다”라고 애써 답하자 객석에서는 큰 웃음과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준익 감독은 “영화에서 내가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건 관계다. 함께 일하는 배우와 스태프들 간의 관계뿐 아니라 시나리오 안에서도 인물 간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 사실 ‘라디오 스타’는 대단한 이야기가 아닌데 두 배우가 만들어낸 관계의 높은 밀도에 관객들이 빠져들었던 것”이라고 했다.
영화 ‘라디오 스타’ 촬영 당시 안성기, 박중훈 배우와 이준익 감독(가운데). 춘천영화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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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스타’는 영화 광고 디자인으로 충무로 이력을 시작한 이준익 감독의 네 번째 연출 작품이다. 영화사 ‘시네월드’를 창립하면서 처음 연출했던 ‘키드캅’(1993)이 “창피할 정도로” 망한 뒤 수입과 제작에 집중하다 ‘황산벌’(2003)로 재기했고 ‘왕의 남자’(2005)로 천만 관객을 달성했다. 이후 박스오피스에서 ‘흥한 영화’와 ‘망한 영화’를 오가며 ‘평양성’(2011)때는 흥행 실패를 책임지고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지만 복귀하면서 지금까지 15편의 작품을 연출했다. 최근작 ‘자산어보’(2021)의 변요한처럼 흥행이 잘 안 된 영화들도 영화제에서 배우상을 휩쓸 정도로 캐릭터와 배우들을 빛나게 찍는 것으로 유명하다. 안성기·박중훈은 ‘라디오 스타’로 나란히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준익 감독은 스스로를 “삐꾸”(B급), “양아치”라고 부르며 배우나 스태프들과의 수직적인 관계를 질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두 배우뿐 아니라 이준기, 박정민, 최희서 등 젊은 배우들도 개막 직전까지 촬영 스케줄을 조정해가며 이 작은 규모의 영화제에 참석하는 열의를 보인 데는 이 감독의 이런 기질도 한몫했을 터다.
‘라디오 스타’에서 다방 레지역으로 스물두살에 배우 데뷔를 했던 배우 안미나도 이날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해 “첫 작품이었고 까마득한 선배님들과 찍는데도 신나는 촬영 현장이었다. 엔지를 냈을 때 감독님이 박수치면서 달려와 지금 정말 좋은 데 한 번만 더 해보자고 말씀하시던 게 생생하다”고 떠올렸다.
배우 안성기는 이날 많은 질문에 답하지는 못했지만 특유의 따뜻한 미소로 40분 이상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 자리를 지키며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 연기관을 묻는 마지막 질문에 “(인위적인) 연기를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드는 느낌을 잘 표현하는 게 좋은 연기라고 생각한다”며 “잘해냈을 땐 뿌듯하고, 못 했을 땐 엄청 욕을 먹는 것”이라고 그가 답하자 객석에서 다시 큰 웃음이 나왔다.
이준익 감독은 행사를 마친 뒤 만나 처음 30주년 기획전을 제안받았을 때 “당황스러웠는데 어쩌다 낚여버렸다”며 “함께 해준 배우들의 우정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30년의 결산보다는 차기작 준비에 더 바쁘다는 그의 다음 작품은 12부작으로 준비 중인 오티티 시리즈물이다. 1910~1920년대 중국과 조선을 아우르는 실존인물을 주인공으로 각본을 쓰고 있다.
‘욘더’(티빙)에 이어 다시 시리즈물에 도전하는 이 감독은 “최근 영화산업이 죽었다고 하는데 극장 플랫폼의 하향세를 영화가 죽었다고 직결하는 데는 동의하기 힘들다”면서 “오티티는 영화의 두 시간에 넣을 수 없는 시대의 깊이나 이면을 담을 수 있어 영화의 확장이라고 생각해 도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춘천/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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