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지난 14일 ‘한·일 제4의 경제블록’ 조성이란 거대 담론을 던졌다. 제46회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다. 그룹 총수가 경제블록 창설을 주장한 건 매우 이례적이지만 그 발신자가 최태원 회장이라면 고개는 절로 끄덕여진다. 이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과 같은 거대 담론을 수차례 제시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최 회장의 ‘한·일 경제블록’ 아이디어는 우리가 처한 지정학적 위기에서 비롯됐다.
“인도·태평양 전역의 국가들은 미·중 사이 각자의 선택에 직면해 있습니다. 과거 한국의 사드 사태가 대표적인 예죠.” 최근 미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에서 과거 존 매케인의 외교정책 고문을 지낸 리처드 폰테인 신미국안보센터(CNAS) 회장은 인도·태평양 국가들, 그중에서도 한국을 콕 집어 “워싱턴 D.C.와 베이징 사이에 낀 국가”라고 표현하며 이렇게 말했다. 물론 공식적으론 미·중 양국 모두 “양자택일하라는 건 아니다”고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그들은 물론 그들의 추종국가들마저도 한국과 같은 중요한 나라가 양다리를 걸치는 중립외교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폰테인 회장은 지적했다.
이처럼 미·중에 이어 유럽연합(EU)까지 세력화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결국 산업·경제가 얽히고설킨 주변국과 연합해 그들과 대등한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동시에 때론 맞서 싸워야만 작금의 위기를 타개할 수 있다는 게 최 회장의 논리로 보인다.
실제 한·일 경제블록이 조성되면 7조달러(한국 1조7219억달러·일본 4조4097억달러, 2023년 4월 기준)에 육박하는 새 시장이 열린다. 재계 관계자는 “관세인하와 같은 무역제한 철폐에 따른 무역창출·투자유인 등 실질적 이익에 그치지 않고 지역안보 문제와 같은 정치적 측면에서도 꽤 얻을 게 많을 것”이라고 했다. 최 회장은 EU의 형태를 언급하며 단일화폐 사용 가능성까지 주장했다. 한·일 스와프와 같은 복잡 다난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고질적인 환율 문제까지 일거에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란 얘기로 들린다.
제4 경제블록은 한·일 두 국가만으로 귀결되진 않을 거다. 얻을 게 많은 매우 매력적인 두 경제 대국의 블록에 대만·필리핀 등 인도·태평양 국가들이 왜 관심을 두지 않겠는가.
물론 넘어야 할 산도 많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훈풍이 불고 있긴 하지만 과거사 문제 등으로 비롯된 서로에 대한 적대감은 여전히 크다. “단기간에 만들어질 순 없지만 국가전략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최 회장의 언급도 이 때문일 터다. 그렇다고 “패러다임 전환을 넘어 솔루션을 한꺼번에 만들 것”이란 그의 전망마저 흘려들어선 안 된다. 보수, 진보,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최 회장의 얘기에 귀 기울여야만 하는 건 그가 바로 내로라하는 대한민국 대표 장사꾼이기 때문이다.
대한상의 회장 취임 이후 글로벌 리더들과 교류하기 위해 최 회장이 뛴 거리만 지구 한 바퀴(4만Km)를 돌고도 남는다. 그 누구보다 돈 냄새를 기가 막히게 맡는 건 기업인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보다 ‘촉’이 좋은 인물은 별로 없다.
최태원(오른쪽 두 번째)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회장 겸 SK그룹 회장이 14일 제주 해비치 호텔&리조트에서 열린 제46회 대한상의 제주포럼 ‘경영토크쇼’에 패널로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대한상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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