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별관에서 '팬데믹 이후의 정책과제(Policy Challenges After the Pandemic)'라는 주제로 열린 2023년 BOK 국제컨퍼런스에 참석해 정책 대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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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금리(명목금리-물가상승률)가 성장률을 지속적으로 밑도는 ‘장기 저성장’ 국면에선 물가를 잡기 위해 세입 확대나 이전지출 축소 등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1일 한국은행이 ‘팬데믹 이후의 정책과제’를 주제로 개최한 BOK 국제컨퍼런스에서다. 물가 잡기에 긴축적인 '통화정책'에만 의존하기보다, 긴축적 '재정정책'을 병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주장을 한 건 미국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를 지낸 나라야나 코첼라코타 로체스터대 교수다. 그는 이날 기조연설에서 "고인플레이션에 대해 긴축적 통화정책으로 대응하면 일차적으로는 현재 시점의 수요를 축소시키고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며 "하지만 가계가 보유하고 있는 정부채권의 이자수익이 증가하면서 오히려 미래 수요를 자극하고 인플레이션을 상승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
코첼라코타 교수는 "반면 고인플레이션에 대해 이전지출 축소 등 긴축재정으로 대응할 경우, 가처분소득 감소를 통해 현재 소비와 인플레이션을 낮출 수 있다"며 "또 이를 통한 정부부채 축소가 미래 가계의 이자수익을 동시에 감소시키면서 미래 수요도 축소하며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효과가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플레이션 대응책으로 공급망 개선을 통한 생산비용 감축과 기업 간 경쟁 제고가 필요하다고 했다. 코첼라코타 교수는 미 인플레이션의 근본 원인으로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공급비용 상승과 함께 “기업 간 경쟁 완화에 따른 이윤율 상승”을 꼽았다. Fed가 장기간 제로금리를 유지했고,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막대한 재정을 풀어 수요가 폭증한 게 원인이라는 다른 경제학자들의 진단과는 차이가 있다.
코첼라코타 교수는 특히 공급망에 차질이 생기면서 기업의 생산비용이 늘긴 했지만, 코로나 확산으로 봉쇄조치가 내려지면서 기업 간 경쟁은 오히려 완화됐다고 분석했다. 이로인해 미국 내 기업 이윤이 코로나 위기 이전과 비교해 20% 이상 상승했고, 제품 가격도 높게 유지됐다. 치솟는 국제 물가를 구실 삼아 상품 가격을 지나치게 올려 이익을 부풀리는 이른바 ‘그리드플레이션(greed+inflation·기업 탐욕에 의한 물가 상승)’을 비판한 것이다.
확장적 재정정책에 대한 경고도 나왔다. 이후 발표 세션에서 레오나르도 멜로시 시카고연준 선임경제학자는 1960년대 이후 미국의 인플레이션 및 GDP 성장률 요인을 분해한 결과 인플레이션의 상당 부분이 미래의 재정지출 조정과 연계되지 않은 재정충격에 기인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쉽게 말해 나랏빚을 폭증시키는 재정지출이 물가를 끌어올린다는 의미다.
그는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재원이 마련되지 않은 재정지출’이 경기 회복을 뒷받침했지만 한편으론 인플레이션 상승 압력으로 작용했다”며 “특히 경기 회복국면에서 시행한 대규모 재정부양책은 인플레이션을 가속화했다”고 지적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별관에서 '팬데믹 이후의 정책과제(Policy Challenges After the Pandemic)'라는 주제로 열린 2023년 BOK 국제컨퍼런스에 참석해 정책 대담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나라야나 코첼라코타 교수, 토마스 사전트 교수.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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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성장 잠재력은 떨어지고, 물가는 내년 상반기까지 목표수준(2%)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에서 통화정책을 책임지는 한국은행의 고민과 맞닿아 있다. 이 총재는 지난달 25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저출산ㆍ고령화로 우리는 이미 장기 저성장 구조에 와 있다”며 “노동·연금·교육 등 구조개혁이 필요하지만 이해당사자 간 타협이 어려워 진척이 안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다리아 자카로바 국제통화기금(IMF) 부국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가 간 자본이동 및 무역거래 둔화, 세계화 진전에 따른 불평등 증대, 이에 기반한 정치적 포퓰리즘 득세 등 지리경제적 분절화(Geo-Economic Fragmentation)가 글로벌 경제 통합의 혜택을 저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무역거래 위축을 통해 저개발국의 빈곤문제 악화, 개도국의 경제성장 저해, 선진국의 생산성 제고 둔화, 글로벌 물가상승 등을 초래하면서 특히 저소득 국가와 선진국의 저소득층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규칙에 기반한 다자주의 시스템을 강화하자”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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