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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이슈 미술의 세계

[단독] 광주 비엔날레 ‘박서보상’ 간판 내린다…5·18 정신 훼손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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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정권 부역·군사정권 관변단체 이력에 논란 커져

1회 만에 상이름 교체…박 작가 쪽 상금 후원도 논란


한겨레

지난달 6일 저녁 열린 광주 비엔날레 개막식 도중 진행된 1회 ‘박서보예술상’ 시상식. 휠체어에 앉은 박서보 작가가 참석한 가운데 수상자인 엄정순 작가가 상금 10만달러가 명기된 패널판과 꽃다발을 들고 인사하고 있다. 박수를 치고 있는 박양우 비엔날레 재단 대표이사(왼쪽 끝)와 강기정 광주시장(오른쪽 끝)도 보인다. 광주비엔날레 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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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의 국가기록화 사업에 참여해 그림을 그리며 부역한 인사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때는 관변 예술단체 간부로 침묵하면서 군사정권에 굴종했다. 이런 경력을 안고 출세와 영달을 거듭해온 제도권 작가가 광주정신을 기려 만든 국제미술제인 광주비엔날레의 대표 미술상에 왜 자기 이름을 넣으면서 유공자로 변신하려 하는가?’

광주 지역 미술인들이 지난달 초부터 기자회견과 1인 시위들을 통해 쏟아내고 있는 항변이다. 지난달 6일 저녁 열린 14회 광주비엔날레 개막식에서 비엔날레 재단이 한국 제도권 추상화단의 원로작가 박서보(91)씨의 이름을 딴 박서보 예술상 1회 시상식을 열자 관중석에 있던 일부 미술인들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항변을 요약한 펼침막 시위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광주정신을 바탕으로 한 비엔날레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지역 미술인들의 거센 반발과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박서보 예술상이 1회 시상을 끝으로 간판을 내리게 됐다. 2일 미술계와 광주비엔날레 재단 등을 <한겨레>가 취재한 결과 재단 쪽은 최근 박서보 예술상의 명칭을 바꿔 다른 명칭의 국제예술상으로 대체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이를 위한 후속 작업을 준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비엔날레 재단 쪽은 박서보예술상의 운영재원 100만달러를 후원했던 주체로 박 작가가 후진 양성과 지원을 위해 설립한 비영리 법인인 기지재단 쪽에 지난주 내부 관계자를 보내 양해를 구하고 상의 명칭을 변경한 뒤 후원 여부 등에 대해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재단 사정에 정통한 미술계의 한 관계자는 “광주 지역 미술인들이 개막 뒤부터 연일 1인 시위를 계속하는 등 반발이 가라앉지 않고 지역 여론도 계속 악화하자 재단 쪽이 시와 조율해 박서보상의 명칭을 바꿀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재단 쪽의 한 관계자도 이와 관련해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상의 명칭은 바꾸되 기지재단 쪽 후원 사실을 명기해 후배 작가 지원을 위한 박 작가의 선의를 살리는 쪽으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의 새 명칭을 두고 재단 쪽의 다른 관계자는 “광주시 상징인 비둘기를 원용해 황금비둘기상으로 붙인 기존 박서보상의 별칭을 정식 명칭으로 쓰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러 개로 시상분야를 나눠 소장 미술인들에게 수혜를 주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재단 쪽은 박양우 대표이사가 직접 나서 박서보 예술상에 비판적인 지역 미술인들과 그동안 접촉을 지속하며 수습책을 위한 논의를 거듭해왔다. 그러나 상을 반대하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박 작가의 후원 자체를 끊으라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해 상의 명칭이 바뀌더라도 후원 문제를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가 앞으로 관건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박서보 예술상은 지난해 2월 비엔날레 재단이 기지재단과 100만달러 후원 협약을 맺고 제정한 상으로 지난 3월 이사회에서 박서보 예술상 규칙까지 만든 상황이다. 비엔날레 재단 쪽은 후원금 100만 달러를 재원으로 삼아 올해부터 2042년까지 매 행사 때마다 10만달러(약 1억3000만원)의 상금을 시상할 계획이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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