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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3 (월)

‘지방 소멸’ 막으려는 선거제 개혁, 재 뿌리는 의원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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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475

부동산·교육 등 격차 벌어지는데

수도권 의원 늘어 이익 대변 악순환

비수도권 의원 늘려야 불균형 해소

국회 전원위 논의, 타협·절충 기대


한겨레

21대 국회의원들이 2022년 9월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후반기 국회의원 단체사진을 찍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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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최우선으로 해결해야 하는 당면 과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인적 물적 자원의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지방소멸을 막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도권 집중은 수도권에 인구가 늘어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몇 가지만 짚어보겠습니다.

첫째, 부동산입니다. 서울·인천·경기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며 투기를 부추기고 자산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종합부동산세는 비수도권 사람들에게 남의 나라 이야기입니다.

둘째, 일자리입니다. 수도권에는 좋은 일자리가 늘 부족합니다. 비수도권에 있는 회사는 좋은 직원들을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렵사리 사람을 구해도 금방 서울로 떠납니다.

셋째, 의료입니다. 비수도권 환자는 수도권에 있는 큰 병원에서 치료받기 위해 병원 근처에서 숙박합니다. 비수도권에서는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병원을 찾기도 어렵습니다.

넷째, 교육입니다. 벚꽃 피는 순서로 지방대가 폐교 위기에 몰리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지방 명문대가 많았습니다. 지금은 학생도 교수도 지방대에 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다섯째, 복지입니다. 수도권 노인들은 전철을 무료로 탈 수 있습니다. 전철이 없는 비수도권 노인들은 하다못해 그런 혜택조차 누릴 수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서로 영향을 미치며 저출생·고령화를 가속하고 있습니다. 수도권 집중을 막지 못하면 지방이 소멸하고 결국은 대한민국 공동체가 붕괴할 것입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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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반격으로 좌절된 균형발전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은 사실 예고된 참사였습니다. 오래전에 그 폐해를 내다보고 대책을 세우려고 했던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국토 균형 발전과 안보를 이유로 충청권에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려고 했습니다. 1979년 세상을 떠나면서 없던 일이 됐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면서 신행정수도 건설을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노무현 자서전 <운명이다>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묵은 과제 중에서도 제일 어려운 것이 신행정수도 건설이었다. 나는 원외 정치인 시절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하면서 이 문제를 공부했다. 서울과 수도권이 돈과 자원과 인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상황이 계속되면 헌법이 명한 국토의 균형 있는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서울은 서울대로 인구 과밀화, 환경 악화, 혼잡 비용 증가, 부동산 가격 폭등 때문에 경쟁력을 가지기 어렵게 되고, 지방은 지방대로 발전의 동력을 상실하고 말라죽을 것이라는 우려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2002년 대통령 선거는 ‘중앙집권 기득권 세력’ 이회창 후보와 ‘지방분권 연합 세력’ 노무현 후보의 한판 대결이었습니다. 지방분권 연합 세력이 이겼습니다. 국회는 2003년 신행정수도 건설특별법을 제정했습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2004년 10월 “수도 서울은 경국대전 이래의 관습 헌법”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당시 위헌 결정을 한 사람들은 윤영철 김영일 권성 김효종 김경일 송인준 주선회 이상경 등 8명의 재판관이었습니다. 전효숙 재판관 혼자 반대의견을 냈습니다. 저는 위헌 결정을 내린 8명의 재판관은 서울 기득권자들이요, 역사의 죄인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에 따라 국회는 청와대와 국방부 등 행정 기능의 일부를 서울에 남기고 나머지를 연기군 일대로 옮겨 행정중심 복합도시를 세우는 법률을 새로 제정했습니다. 세종시를 만든 것입니다.

하지만 세종시 건설로 수도권 집중의 기세를 꺾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세종시 건설 이후에도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 현상은 가속하고 있습니다.

최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에 관한 결의안’을 의결했습니다. 결의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대한민국 국회는 전반적인 인구 감소와 지역 간 불균등한 인구의 증감에 따라 수도권에 더 많은 경제적 자원과 정치권력이 집중되면서 지역 균형 발전이 더 어려워지고 전체 국가 발전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의 이익을 고르게 대변하고 정치적 자원을 공정하게 분배하기 위한 특단의 개혁이 절실함을 인식하며… (후략)”

국회의원 선거제도를 고쳐야 하는 첫번째 이유가 바로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도대체 지방소멸 현상이 얼마나 심각하기에 그럴까요?

1988년 현행 소선거구제를 도입한 이후 전체 지역구에서 수도권(서울·인천·경기)이 차지하는 비중을 계산해 보았습니다.



13대 77석/224석 34.4%

14대 82석/237석 34.6%

15대 96석/253석 37.9%

16대 97석/227석 42.7%

17대 109석/243석 44.9%

18대 111석/245석 45.3%

19대 112석/246석 45.5%

20대 122석/253석 48.2%

21대 121석/253석 47.8%

어떻습니까? 놀라운 속도로 수도권 국회의원 비중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기준으로 22대 선거구 획정을 하면 내년 총선에서는 사상 최초로 수도권 지역구 의원이 전체 지역구 의원의 절반을 넘게 됩니다.

국회의원은 입법부 구성원으로서 국가의 일을 하는 사람이지만 자기 지역구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도권 집중으로 수도권 국회의원 수가 늘어나고, 늘어난 국회의원은 수도권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수도권 집중을 다시 가속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걸려든 것입니다.

반면에 비수도권 지방은 국회의원 한 사람이 여러 개의 구·시·군을 대표해야 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21대 선거에서 3개 구·시·군으로 구성된 선거구가 9개였습니다. 4개 구·시·군으로 구성된 선거구는 무려 13개였습니다.

그 가운데 4개 선거구가 강원도에 있습니다. 강원도 지리 공부를 한다고 치고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춘천시·철원군·화천군·양구군을(한기호 의원), 동해시·태백시·삼척시·정선군(이철규 의원), 속초시·인제군·고성군·양양군(이양수 의원), 홍천군·횡성군·영월군·평창군(유상범 의원)입니다. 강원도는 국회의원이 모두 8명에 불과합니다.

4개 구·시·군으로 구성된 선거구는 이 밖에도 충북 1, 전북 1, 전남 3, 경북 2, 경남 2개가 더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가면 22대 총선에서는 5개 구·시·군으로 구성된 초대형 선거구가 나올 것 같습니다.

개헌 아니어도 당장 할 수 있는 일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수도권 집중과 지방소멸을 막을 수 있을까요?

여러 차원의 처방이 가능하지만, 비수도권 지방의 이익을 대변하는 국회의원 비중을 늘리는 방안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봅니다. ‘수도권 집중-수도권 의원 증가-수도권 집중 가속화’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입니다.

근본적으로는 헌법을 개정할 때 양원제를 채택하는 방안이 있습니다. 미국 상원처럼 인구와 관계없이 각 지역을 대표하는 의원들이 상원을 구성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경험이 있습니다. 1960년 4·19 이후 2공화국에서 민의원과 참의원 선거를 동시에 시행해 233명의 민의원과 58명의 참의원을 선출했습니다.

상원에 해당하는 참의원 선거는 서울과 각 도를 선거구로 하고 한 선거구에서 2~8명씩의 의원을 선출하는 대선거구제, ‘제한 연기명 투표’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제한 연기명 투표는 유권자가 선거구별 당선 정원의 절반까지 복수 후보에게 투표할 수 있도록 한 방식입니다.

그렇다면 헌법 개정 이전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선거제도를 바꿔서 비수도권 지방 의원을 늘려야 합니다.

국회의장 자문기구인 ‘헌법개정 및 정치제도 개선 자문위원회’가 비례대표 의원 50명을 늘려서 비수도권 지방의 대표성을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국회 전원위원회 토론을 위한 선거법 개정안을 정리하면서 의원 정수를 현행 300명으로 다시 묶었습니다.

한겨레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4월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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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6일 느닷없이 국회의원 정수 30명 이상 감축안을 들고나왔습니다. 지역구에서 8석, 비례대표에서 22석을 줄이자는 것입니다.

김기현 대표의 제안은 4·5 재보궐선거 패배와 당 지지도 하락의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한 꼼수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나 용산 대통령실과 얼마나 교감했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주장은 서울 기득권 세력의 전형적인 반정치주의 궤변입니다. 수도권 집중 해소와 지방소멸 방지라는 당면 과제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무책임한 사람들입니다.

걱정입니다. 오는 10일부터 국회 전원위원회가 시작되지만, 여권의 이러한 재 뿌리기 탓에 선거제도 개선 논의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래도 이번 선거법 개정에서 어떻게든 비수도권 지방을 대변하는 국회의원들이 많이 선출될 수 있도록 의원들이 최선을 다해주면 좋겠습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 석패율제 등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소선거구제에서 도농복합선거구제로 바꿀 수 있다면 대도시에서 지역구 의원 수를 줄이고 그만큼 비례대표에서 비수도권 지방 몫을 확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정답이 없습니다. 나라마다 다르고 시대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는 10일부터 시작되는 국회 전원위원회를 잘 지켜보시기 바랍니다. “개혁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며 원론적 주장을 강하게 펴는 사람이 바로 ‘개혁에 반대하는 기득권 세력’입니다. 타협과 절충을 통해서 조금씩이라도 제도를 바꿔 나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개혁 세력’입니다.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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