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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공부 못하면 저렇게 돼”… 갑질 시달리는 경비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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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서울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경비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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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잘해라. 못하면 저 아저씨처럼 된다.”

경비노동자 A씨가 과거 들었던 폭언을 회상하며 한 말이다. A씨는 그러면서 “대놓고 비하하는 발언을 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특정되지 않는다. 나이 많은 사람이 더 그런다. 40~50대 남성 여성이고 자녀가 있는 사람들도 그런 소리를 한다”고 했다.

직장갑질119는 16일 경비노동자 5명, 청소노동자 1명, 관리소장 1명, 관리사무소 기전 직원 2명 등 총 9명을 심층 면접해 정리한 ‘경비노동자 갑질 보고서’를 공개했다. 심층 면접은 지난해 10월 이뤄졌다. 이들 모두 연령대가 50세를 넘었으며 아파트 경비노동자의 경우 모두 65세 이상이었다. 청소노동자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성이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자 9명 모두 입주민으로부터 고성·모욕·외모 멸시, 천한 업무라는 폄훼, 부당한 업무지시·간섭 등 갑질을 경험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대응에 나선 면접자는 단 2명이다. 나머지는 용역 업체와 계약 종료 등의 문제를 우려해 갑질을 당하고도 참고 넘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면접자들이 당한 갑질 내용은 이렇다. 한 아파트 주민은 경비노동자에게 경비실에 불을 켜 놓은 것을 두고 “너의 집이었으면 불을 켜놓을 거냐”며 윽박질렀다. “키도 작고 못생긴 사람을 왜 채용했냐, 당장 바꾸라”며 인신공격을 하는 일도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났을 때 “이런 것도 제대로 못 하냐”며 소리치거나, 차를 빼달라고 요구했을 때 “아침에 겨우 잠들려고 하는데 왜 깨우냐”며 폭언을 하는 경우도 있다. 특별한 이유도 없이 “해고하겠다” “저 XX 잘라” 등 협박하는 상황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했다.

입주민뿐만 아니라 관리소장으로부터 부당한 업무지시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경비노동자 B씨는 “2021년 7월, 정화조가 여름철 무더위로 인해서 끓어 올라 청소가 필요했다. 관리소장이 경비대장에게 지시하고 다시 경비대장이 경비대원에게 청소를 지시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처음에는 어디인 줄 모르고 작업하라고 해서 장화도 안 신고 작업했는데, 알고 보니 정화조 작업이었다. 분뇨가 발목까지 찼다. ‘똥독’이 올라서 2주 넘게 약을 바르며 치료했다”고 했다.

이 같은 갑질은 청소노동자, 관리소장, 관리사무소 기전 직원에게도 비슷하게 발생했다. 청소노동자는 “청소를 하는데, 청소가 깨끗하게 안 되어있다고 소리를 지르며 멱살을 잡고 관리사무소로 끌고 가 갑질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사례가 너무 많아 속이 답답하고, 불면 증상이 있어 약을 처방받고 있다”고 했다. 해당 입주민은 경비노동자에게도 이 같은 갑질을 이어갔다고 한다.

직장갑질119는 이들이 갑질에 노출되는 근본적인 이유로 간접 고용 구조와 초단기 근로계약 기간을 꼽았다. 조사 대상 노동자 9명 모두 1년 미만의 단기 근로계약을 반복해서 체결하는 고용 형태였다. 경비회사에 고용된 경비노동자의 계약 기간은 더욱 짧았다. 5명 중 4명은 3개월 단위로, 1명은 1개월 단위로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직장갑질119는 이들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용역회사 변경 시 고용 승계 의무화 ▲갑질하는 입주민 제재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적용 대상 확대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임득균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갑질을 행한 입주민·관리소장이 처하는 처벌이 너무 약하고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으로 인해 갑질에도 참고 일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갑질 방지 및 처벌 규정 강화와 고용불안 해소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박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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