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직접 나선 건 이례적
필리핀 親美 정책에 갈등 고조
지난 14일(현지 시각)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오른쪽) 필리핀 대통령이 황시롄 필리핀 주재 중국 대사를 초치해 중국 함정이 자국 선박을 향해 레이저를 쏜 것에 항의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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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남중국해 필리핀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에서 중국 함선이 필리핀 해안경비대 함정을 향해 레이저를 조사(照射)하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이 중국 대사를 직접 불러 항의했다. 지난해 취임한 마르코스 대통령이 전임자와 달리 미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가운데, 필리핀과 중국의 갈등이 계속 커지는 양상이다.
15일(현지 시각) 필리핀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마르코스 대통령은 전날 황시롄 주필리핀 중국 대사를 초치해 “남중국해에서 필리핀 해안경비대와 어부들을 노린 중국의 적대적 행위가 늘어나 긴장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고 항의했다. 외교 문제가 발생하면 통상 외교부의 고위 관료가 자국 주재 대사를 불러서 항의하는데, 국가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이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이에 앞서 중국과 필리핀 등이 영유권 분쟁 중인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난사 군도) 내 세컨드 토머스 암초(필리핀명 아융인섬)에서 지난 6일 군용 물자 수송을 지원하던 필리핀 해안경비대 순시선이 중국 해경국 함선에 레이저를 맞는 일이 발생했다. 레이저 불빛이 강력해서 당시 필리핀 승선원 일부는 일시적으로 시력을 잃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 정부는 중국이 군사용 레이저를 의도적으로 쏴 긴장을 고조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레이저 속도계 등으로 상대 선박과 거리, 속도를 측정한 것”이라며 부인했다.
필리핀 외교부와 해안경비대는 14일 이 같은 사실을 밝히며 “마르코스 대통령이 지난달 중국에서 시진핑 주석과 ‘해상 갈등을 대화로 풀자’고 합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한 공격”이라며 “합의를 흐트러뜨려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반면 중국 외교부는 “우리 해역에서 적법한 대응을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필리핀 측이 중국의 영해를 계속 침범하기에 경고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2018년엔 미군이 “2017년 9월부터 2018년 6월까지 (남중국해를 비롯한) 태평양 일대에서 중국 함선의 레이저 공격으로 의심되는 사건이 최소 20건 발생했다”고 밝힌 바 있다.
세컨드 토머스 암초 부근엔 현재 필리핀 해군이 주둔, 이 해역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필리핀 정부의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맞서 중국은 1953년 남중국해에 그은 9개 선인 ‘남해구단선’에 이곳이 포함되므로 자국 관할 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양국은 2021년 11월에도 충돌한 바 있다. 당시 이 지역에서 중국 함정이 필리핀 군용 물자 보급선에 “우리 영토에 무단 침입했다”며 물 대포를 쏘는 일이 발생했다.
1965~1986년 필리핀을 독재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의 아들 마르코스 주니어는 지난해 5월 대선에서 승리한 뒤, 이전 정부의 친중 정책에서 탈피하고 있다. 그는 취임 이후 아세안을 제외한 첫 해외 순방국으로 미국을 선택했다. 지난 10월엔 남중국해 등에서 미군과 연합 훈련을 진행하기도 했다. 지난 2일 필리핀 마닐라를 찾은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필리핀 내 군사 기지 4곳을 추가로 확보했다”고 밝혔다.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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