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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학생 A 씨는 오늘도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누군가 나를 따라오지 않을까, 누가 나를 해치지 않을까 걱정 때문입니다.
지난해 2월 한 통의 SNS 메시지를 받은 후 그녀의 삶은 무너졌습니다. 누군지 알 수 없는 계정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거 너 아니야?" 트위터 주소도 함께 왔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들어간 게시물에는 내 얼굴을 한 성적 사진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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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심해지는 범행
첫 시작은 얼굴 사진이었습니다. A 씨의 비공개 SNS 계정에 있는 사진을 도용했습니다. 게시물에는 A 씨가 평소 성적으로 문란한 사람이라는 허위 주장도 담겼습니다. A 씨의 신상정보와 개인 SNS 계정도 노출됐습니다. 수십 명의 2차 가해자들이 A 씨에게 연락을 걸어왔습니다. 그들이 던지는 추파가 A 씨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로 쌓여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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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씨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또 다른 계정이 등장합니다. 이 계정은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성착취물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A 씨 사진에서 눈만 합성해 눈동자의 위치를 위쪽으로 향하게 합성했습니다. SNS에서 '아헤가오'라고 불리는데, 일본 성인 만화 등에서 여성의 표정을 비하하는 표현입니다. 여기서 '지인능욕', '지인박제'라는 해시태그도 등장합니다. 해당 계정은 본인이 A씨를 잘 아는 지인이고, 평소 A 씨가 성적으로 문란하고 합성된 표정을 실제로 지었던 것처럼 게시물을 꾸몄습니다.
A 씨는 처음 성착취물을 확인한 날 밤새 울었습니다. A 씨는 "새벽에 처음에 확인하고 뇌가 정지되는 느낌이었다. 새벽 내내 집에서 울었고 벌벌 떨었다"고 말했습니다.
"노예가 되거나 노출 사진을 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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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보자인 척 접근했던 계정은 한 달 뒤 돌변합니다. A 씨에게 돌연 "텔레그램에 너의 합성 사진이 돌아다니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더니 여성의 나체 사진 여러 장을 보냈습니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여성의 나체 사진에 A씨의 얼굴을 합성한 딥페이크 제작물이었습니다. 기사로는 표현할 수도 없을 정도로 노골적인 사진들이 연달아 보내졌습니다.
그러더니 돌연 "내가 이것을 지워줄 수 있다. 지워주면 뭘 해줄 거냐?"라고 물었습니다. A 씨가 무엇을 원하느냐고 묻자 "(나체 사진을 보내거나 노예가 돼라)"고 협박했습니다. 나체 사진을 보내면 자신만 소장하고 다른 딥페이크 성착취물들은 지워주겠다는 겁니다.
A 씨는 "협박 범죄도 새벽에 이뤄졌다. 새벽에 울면서 택시 타고 경찰서 찾아가고, 울면서 변호사에게 전화하고 그런 일상의 반복이었다"고 피해를 호소했습니다. 또 심각한 수준의 딥페이크 제작물을 본 뒤에는 대인기피증도 생겼습니다. A 씨는 "누가 만들었는지, 몇 명이 봤는지 알 수 없다 보니까 가족 말고는 아무도 못 믿는 대인기피증이 생겼다"라며 "길을 가다가 누가 쳐다보고 있는 거 같고, '혹시 트위터나 텔레그램에서 나를 봤나'라는 피해 망상에 시달렸다"고 말했습니다.
가해자는 '고등학교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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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씨는 그나마 운 좋게 IP 추적을 통해 가해자 계정 한 개의 접속 위치를 알아냈습니다. 가해자를 유도하기 위해서 그동안 고통을 참으면서 연락을 이어가야 했습니다. 변호인이 개발한 IP 추적 프로그램을 통해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접속 위치를 확보했습니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가해자의 위치는 A 씨가 사는 동네였습니다. 피해자의 비공개 계정에 있는 사진으로 딥페이크 제작물을 만들 때부터 '어쩌면 근처에 있는 사람일 수도 있다'고 의심했는데, 실제 범인은 바로 옆에 있었던 겁니다. A 씨와 변호인은 위치 정보를 바탕으로 가해자를 추궁했습니다. 그렇게 베일을 벗은 가해자는 고등학교 1년 선배인 20대 남성 김 모 씨였습니다.
피해자 A 씨와 가해자 김 씨는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서로의 연락처를 알고 있는 정도였습니다. 학창 시절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고, 학원도 같이 다녔던 소위 '동네 선배'였습니다. 피해자가 원한을 살 만한 행동을 하지도 않았고, 둘 사이는 선후배 그 이상도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A 씨는 "처음에 잘못 본 줄 알았다. (피의자를 특정했던 그날이 심리적으로는 가장 힘들었다). 내가 뭘 잘못했으면 나에게 이렇게까지 했을까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다"고 당시 충격을 전했습니다.
그동안 최소 6개의 익명 계정 역시 모두 김 씨였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딥페이크 게시물을 올린 것도, 게시물을 A 씨에게 제보한 것도 모두 김 씨의 소행이었습니다.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혐의 대부분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황당한 변명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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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A 씨의 사진을 유포하고 협박할 때 내가 도와준다면 나에게 호감이 생길 거라고 판단했다. A 씨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서 (영웅처럼 나타나 해결할 생각이었다)."
9개월 만에 잡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지난해 3월 A 씨는 가해자들을 경찰에 고소했습니다. 정확히는 가해자로 추정되는 계정 여러 개를 신고한 겁니다. 경찰은 즉각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담당 수사관은 트위터와 텔레그램 등에 수사 협조 공문을 보내는 등 A 씨의 피해 회복과 가해자 체포를 위해서 최선을 다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범행 장소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는 SNS 공간이었던 점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해외 기업들의 분사가 한국에 있더라도 서버는 대부분 해외에 있습니다. 수사를 위해서는 본사에 수사 협조 공문과 압수수색 영장 등을 보내야 하고, 한글 공문이 영어로 번역되고 메일 등을 통해서 소통하는 시간이 더해지면서 길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통상적으로 본사로부터 수사 관련 자료를 받더라도 시간이 오래 지체되면서 가해자 검거에는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국민의힘 허은아 의원실이 경찰청에게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딥페이크로 제작한 성적 허위 영상물의 검거율은 지난 2년간 50%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지난 2021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전체 딥페이크 허위 영상물 유포 범죄는 모두 312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중 검거는 137건으로 전체의 45%에 불과합니다.
"피해자가 당당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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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피해자 A 씨에게 용기 내서 인터뷰에 나선 이유를 물어봤습니다. A 씨는 "많이 힘들었고, 그동안 고민도 많이 했지만, 제 잘못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라며 "피해자가 당당해지고 공론화해야 범죄도 줄고 더 많은 범죄를 차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비슷한 피해가 발생했을 때 해외 기업들과 보다 빠른 협조를 통해 피해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토대가 만들어지기를 바란다고 전했습니다.
사공성근 기자(402@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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