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전셋값이 하락하면서 집주인이 전세금 차익만큼 매달 월세를 돌려주는 ‘역월세난’까지 나타날 조짐이다. 사진은 대구의 한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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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셋값 하락에 역전세, 역월세까지
▷집주인-세입자 처지 뒤바뀌어
부동산 경기 침체로 매매가뿐 아니라 전셋값까지 동반 하락하면서 집주인 고민이 커지고 있다. 전셋값 하락으로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워진 ‘역전세난’만 문제 되는 것이 아니다. 목돈을 마련하기 어려운 집주인 입장에서는 이에 해당하는 월세를 돌려주는 ‘역월세’까지 나타나는 조짐이다. 한마디로 집주인과 세입자 처지가 뒤바뀐 셈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8월 전국 주택 전셋값은 0.28% 하락해 2019년 4월(-0.29%) 이후 3년 4개월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9월 첫째 주 기준으로 전국 176개 시군구 중 전셋값이 하락한 지역은 143곳에 달한다. 사실상 전국 대다수 지역 전셋값이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의미다.
전셋값이 하락하면서 집주인보다 세입자들이 우위에 서는 상황이 벌어졌다.
한국부동산원의 아파트 전세수급동향을 보면 8월 29일 기준 90.2로 2019년 11월 11일(88.3) 이후 가장 낮다. 전세수급동향은 0에 가까울수록 공급이 많고, 200에 가까울수록 수요가 많다는 의미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9월 21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3만8383건으로 전년 동기(2만2682건) 대비 69.2% 증가했다. 전세 공급이 쏟아지면서 갈수록 세입자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라는 의미다.
집주인이 전세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운 ‘역전세난’이 확산되면서 임대차 시장에서는 역월세가 하나둘씩 나타나는 분위기다. 가령 전세 계약 만기가 도래한 세입자가 전셋값을 1억원 낮춰달라고 할 경우 전세금을 돌려주기 어려운 집주인이 은행 이자 수준으로 20만~30만원가량 월세를 매달 세입자에게 내줘 계약을 연장하는 개념이다. 대구 B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세입자에게 매달 월세를 주려는 집주인도 있지만, 기존에 계약했던 전세금과 현재 전세금 시세의 차액에 대한 이자를 일시불로 주고 재계약하자는 사례도 적잖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역월세가 나타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최근 몇 년 새 집값이 급등하면서 온갖 대출을 끌어모아 주택을 구매한 투자자들이 많아 도저히 억 단위 전세금을 돌려줄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세입자 입장에서도 부동산 중개수수료, 이사비용 등을 감안하면 매달 월세를 받고 계속 거주하는 것도 나쁠 게 없다.
역월세 현상이 나타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9년 당시 9510가구 대단지인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가 입주할 때 송파구는 물론 강동, 광진구 등 인근 전셋값이 일시적으로 하락하면서 역월세가 확산된 적이 있었다. 최근 다시 등장한 역월세는 대구, 세종 등 아파트 입주 물량이 몰린 지방 대도시에서 주로 나타나는 양상이다. 세종의 경우 올 들어 9월 5일까지 전셋값이 9.87% 하락했다. 대구 전셋값도 같은 기간 5.89% 떨어졌다. 2015년 입주한 대구 수성구 ‘e편한세상범어(842가구)’의 경우 한때 전용 84㎡ 전셋값이 6억원까지 치솟았지만 최근 3억원대 중반으로 떨어졌다. 전세 실거래가는 지난해 9월 6억원에서 올 6월 4억3000만원, 8월 3억5000만원으로 연일 하락세다.
김광석 리얼하우스 대표는 “전셋값이 급락한 지방 대도시에서 목돈 마련이 어려운 집주인들이 종종 월세를 돌려주는 경우가 나타난다. 지방뿐 아니라 매매, 전셋값이 동반 하락하는 인천, 화성 등 수도권 대도시까지 역월세 현상이 퍼질 가능성도 있다”고 진단했다.
▶역월세 ‘고육지책’ 우려도
▷깡통전세 피하고 반환보증 가입할 만
문제는 역월세가 ‘고육지책’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매달 월세를 지급해 급한 불을 끄더라도 전셋값이 계속 하락할 경우 재계약을 해야 하는 2년 후가 또 문제다. 전셋값을 더 낮춰 새로운 세입자를 구해야 하는 처지에 놓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칫 전세금을 내주기 위해 거액의 대출을 받아야 할지 모른다. 역전세, 역월세 현상이 지방뿐 아니라 수도권 전역으로 확산되고 매매 가격도 동반 하락할 경우 부동산 시장은 깊은 침체로 치달을 우려가 크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아파트 공급 물량이 몰린 지역 입주를 피하고, 계약에 앞서 인근 지역 전셋값과 입주를 앞둔 매물 전셋값을 꼼꼼히 비교해봐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 조언이다. 전세 기간이 만료돼도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월세조차 챙기지 못해 집주인과 갈등을 겪을 수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특히 집주인이 집을 처분해도 전세금을 온전히 돌려주지 못할 위험이 큰 ‘깡통전세’가 늘고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통상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80%를 넘으면 깡통전세 위험이 큰 것으로 풀이된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6~8월 기준 수도권에서는 경기 화성(107.7%), 안산 상록구(94.6%), 고양 일산동구(93.8%), 인천 미추홀구(93.3%) 순으로 빌라 전세가율이 높았다. 서울의 경우 강동구(88.7%), 광진구(86.5%), 강서구(86.4%) 전세가율이 80%를 넘어섰다.
유재벌 법무법인 센트로 변호사는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기 전에 인근 중개업소 여러 곳을 방문해 해당 주택 시세와 인근 시세를 비교해봐야 한다. 부동산 등기부를 통해 선순위권리관계를 확인해, 선순위 담보와 임차인의 보증금 합계가 해당 주택 시세의 70% 이내인 매물을 계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미 전세 계약을 마쳤다면 전세반환보증에 가입해 전세보증금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도 방법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이나 서울보증보험(SGI)의 ‘전세금보장신용보험’이 대표적이다.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HUG나 SGI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전세금이 하락하거나 집주인 신용에 문제가 생겨 집이 경매로 넘어가도 전세보증금은 걱정 없다.
HUG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의 보증금액은 수도권 7억원 이하, 기타 지역은 5억원 이하다. SGI 전세금보장신용보험의 경우 아파트는 금액 제한이 없다. 일반 주택은 10억원 이하면 보증금 전액이 보장된다. 가입 가능 기간도 조금씩 다르다. HUG의 경우 보증 가입을 신청하려면 전세 계약 기간이 절반 이상 남아 있고, 계약 기간이 1년 이상일 때 가능하다. SGI는 전세 계약 기간이 1년 이상 남아 있고, 임대차 계약 개시일로부터 10개월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가입할 수 있다.
[김경민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77호 (2022.09.28~2022.10.0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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