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큰 비는 내리지 않지만 태풍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마린시티 인근의 해운대구 우동항 삼거리 4차선 도로에서는 파도가 칠 때마다 하수구 구멍 사이로 성인 남성 키 높이만큼 하얀 물기둥이 솟구쳐 오르는 광경이 펼쳐졌다. 해상 교량인 수영구 민락동의 수영2호교는 다리가 곧 잠길 듯 수위가 차올라 지나는 주민들이 한 명도 없었다.
상습적으로 침수되는 마린시티 앞 가게들은 저마다 태풍에 대비하고 있었다. 이곳의 한 카페와 국수 가게는 영업을 일찍 종료하고, 유리창 전면을 파란 천막으로 감쌌다. 또 3kg 상당의 황토색 모래 주머니를 가게 문 앞에 50여개 쌓아 바닷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두고 있었다.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오늘 오전부터 모래주머니를 요청하려고 동사무소와 구청에 전화를 계속 돌렸다. 6년 전 차바 태풍 때 우리 가게에 1000만원 상당의 피해를 봤다”며 “이번 태풍은 그보다 더 크다 하니 한마디로 망연자실이다. 아마 오늘은 뜬 눈으로 밤을 새지 싶다”고 했다.
인근 아파트 건물에서 세탁소를 4년 동안 운영해 온 김모(44)씨는 “지난번 태풍 때 가게 앞으로 물고기가 쓸려와 파닥거릴 정도로 난리였다. 우리 세탁소까지 물이 차오를까봐 밑에 있는 옷들을 전부 천장으로 올리는 작업 중이다”라며 “여긴 물도 물이지만 바람도 겁난다. 한쪽 창이 2층 높이의 유리로 돼있어 깨지면 복구에 한 달은 걸릴 거다. 추석 앞이라 가게를 오래 쉴 수도 없는 게 걱정이 크다”고 했다.
인근 거주민 최모(47)씨는 “태풍이 온다고 해서 주변을 돌아보는 중이다. 아파트 유리창에 테이프를 붙여야 하나 고민이 크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아파트 앞이 더러워지고 뻘밭이 된다는 것”이라 했다. 또 다른 주민 김모(21)씨는 “제니스 아파트 사거리에 가면 가만히 서있지도 못할 만큼 바람이 분다. 태풍이 잦아들기 전까지는 높은 아파트들 사이에 가지 않는 게 유일한 방법인 것 같다”고 했다.
오후 8시 기준 부산시에서 ‘대피 명령’이 떨어진 곳은 동구와 남구의 침수 우려 지역 총 145세대다. 모두 인근의 모텔과 친인척집, 경로당 등으로 대피하도록 안내한 상황이다. ‘대피 권고’가 내려진 곳은 해운대구와 사하구의 총 132세대다. 특히 해운대구의 마린시티와 미포, 청사포, 구덕포 등 파도가 제방을 넘어 침수될 우려가 있는 지역이 해당한다. 해운대구 마린시티 1층 상가 업주들은 해강중학교로, 청사포나 미포 주민들은 동백초등학교, 구덕포 주민들은 송정초등학교로 임시 대피하도록 안내됐다.
5일 저녁 6시 45분, 마린시티와 가장 가까운 대피소인 해운대 해강중학교 3층 강당은 피난 온 주민들을 맞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곳은 266명을 최대 수용 가능한 693㎡(210평)으로, 체육용 매트리스와 모포, 마스크를 지원한다. 해강중 행정실 관계자에 따르면 “재난 대피 권고가 해제될 때까지 운영될 예정이다. 학생들은 내일 6일 온라인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라 수업에 방해되거나 할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이곳 외에도 해운대구에 꾸려진 대피소는 해운대구 중동의 동백초, 해운대구 송정동의 송정초가 있다.
[신지인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