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자 5명 중 1명 '다중채무'…대출 잔액 563조 훌쩍
가상화폐 폭락에 투자자 피눈물…주담대 이자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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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비즈=주형연 기자] 올 겨울 결혼을 앞두고 있는 직장인 이모(35)씨는 결혼자금 모두를 주식투자에 올인했다가 쪽박을 차게 됐다. 코로나19 이후 꾸준히 주식투자를 한 동학개미로서 자부심을 갖고 큰 욕심 없이 목표 수익만 내고 매도하려 했지만, 미국이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한 후 증시가 무섭게 미끄러지며 패닉에 빠졌다.
이씨는 “작년에 각종 공모주 청약도 대출받아 투자했지만 나름 수익률이 좋았고, 하반기 코스피가 3000포인트까지 오른다는 전망도 있어 결혼자금을 몽땅 넣었다”며 “현재 무서운 속도로 자금이 빠지고 있다. 예비신부, 부모님에게 말 못하고 혼자 끙끙 앓는 중이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처럼 코로나19 이후 예·적금에서 주식과 가상화폐로 갈아탔던 영끌(영혼까지 끌어 대출)·빚투(빚내서 투자)족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은행 빚은 카드사 카드론으로, 카드론은 저축은행과 대부업체 대출로 ‘대출 돌려막기’를 하다 결국 감당이 어려워진다. 최근엔 높은 금리에 이자까지 불어나 이들의 부담이 더 커지고 있다.
27일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가계대출 전체 차주 가운데 22.1%는 3곳 이상의 금융회사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인 것으로 집계됐다. 5명 가운데 1명꼴이다. 이들이 빌린 돈의 규모는 전체 가계대출 잔액의 32.1%, 금액으로 따지면 563조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 1분기 말 은행권의 가계대출 연체율은 0.17%, 제2금융권은 1.26%로 전년말 대비 각각 0.01%포인트, 0.1%포인트 상승했다.
가상화폐 투자자들의 피해도 만만치 않다. 사회생활 2년차에 접어든 장모(30)씨는 투룸으로 이사를 가기 위해 시중은행에서 1억원 이상 변동금리형 전세자금 대출을 받았다. 장씨는 남은 여윳돈 2000만원과 첫 회사생활 후 받은 1년치 연봉에 가까운 성과급을 합친 5000만원 모두를 가상화폐 선물에 투자했다. 하지만 다음 날 눈을 떠보니 ‘0원’이 된 것을 보고 두 눈을 의심했다. 상폐된 것이다.
그동안 비트코인, 알트코인(비트코인 외 코인) 등으로 재미를 봤던 장씨는 가격이 하락해도 수익을 낼 수 있는 선물거래를 알게 돼 투자했지만 상폐로 인해 한 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처음 돈을 모아 새로운 재테크를 시도하려던 중 찾아온 시련에 매일 술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주식, 가상화폐뿐만 아니라 집을 산 영끌족은 올 연말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8%대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에 한숨만 내뱉고 있다. 최근 집값 상승세가 주춤하면서 ‘갭투자’에 나섰던 2030세대의 충격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2월 동탄신도시에 위치한 전용면적 84㎡ 아파트를 6억원대에 구매한 박모(37)씨.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기 위해 직장과 거리가 멀어도 매입했지만 올 들어 집값이 2억원 가까이 하락했다.
주민들 사이에서 2기신도시는 아직 재건축, 리모델링 가능성이 없는데다 집값 고점논란과 기준금리 인상 지속 등 영향에 추가로 하락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더욱 혼란에 빠졌다. 시중은행, 저축은행의 신용대출까지 영끌해 반 이상 넘게 대출을 받은 그는 당시 금리가 더 낮은 변동금리를 택했지만, 현재 금리가 계속해서 올라 멘붕에 빠졌다.
은행업계에 따르면 6월 셋째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주담대 고정형(혼합형) 금리 범위는 연 4.33~7.09%로 나타났다. 주담대 고정금리 상단이 7%를 돌파한 건 지난 3월말 6%대로 올라선 지 두 달여 만이다.
부동산 정보업체 직방 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담대 금리 7% 적용 시 서울에서 전용면적 84㎡ 아파트를 대출로 산 소유자는 가계 소득의 약 70%를 원리금 상환에 써야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매달 갚아야 하는 원리금 상환액은 291만원에 달한다. 주담대 금리 8%를 적용하면 가계 소득의 80%, 300만원 이상을 다달이 상환해야 되는 셈이다. 앞으로 대출을 받아야 하는 실수요자들은 더 큰 문제에 직면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하반기에도 금리 인상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집값도 당분간 약세를 이어갈 것으로 관측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앞으로 기준금리가 부동산 시장의 최대 변수가 될 것”이라며 “금리가 계속 오르면 매수세가 줄어들어 거래절벽이 심화되고 가격도 약세를 보일 수 밖에 없다. 국내 주택가격의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 교수는 “2기신도시 아파트 가격은 서울 일부지역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비쌀 정도로 급격히 올랐다”며 “향후 금리인상까지 예고된 만큼 당분간 가격조정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jh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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