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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美 '임신중지권 폐지' 파장

반세기 만에 깨진 임신중지권 판례…“미국, 노예시대 이래 최대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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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주들 “임신중지 불법화 법 즉각 시행”

민주당 주들 “불법화 주에서 오는 여성 보호”

영·프·캐나다 정상, 미 대법 판단 공개 비판

“남북전쟁 전 분열상으로 향한다” 분석까지


한겨레

25일 시민들이 미국 연방대법원 청사 앞에서 전날 ‘로 대 웨이드’ 판례 폐기에 항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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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1973년에 이어 여기에 또 와야 하나.”

25일 오후(현지시각) 뙤약볕에 섭씨 32도까지 기온이 올라간 워싱턴의 연방대법원 청사 앞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전날 판결에 충격을 받은 시민들은 그래도 계속 몰려들었다. 49년 전에도 자신이 이곳에서 임신중지권을 요구했다고 쓴 손팻말을 든 초로의 여성이 눈에 띄었다.

“집에서 앉아 있을 수만은 없어” 델라웨어주에서 2시간 반을 운전해 왔다는 아이네그 스틸은 <한겨레> 취재진에 17살 고등학생 때인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나오기 직전 바로 이곳에서 임신중지 합법화 촉구 집회에 참여했다고 했다. 스틸은 “당시 내 친구가 숨어서 비의료인에게 임신중지 수술을 받는 끔찍한 일을 겪었다”며, 이제 그런 상황이 다시 벌어질 참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례를 폐기하기 전날 뉴욕주의 공공장소 권총 휴대 허가제가 위헌이라고 한 것도 놀랍다며 “그들이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임신중지권을 헌법상 권리로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례가 깨진 것에 충격을 받은 미국의 정치·사회적 대립과 양극화가 급속히 표면화되고 있다. 대법원이 23일 “헌법은 임신중지권을 부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49년 전 판례를 폐기하자 임신중지권 폐지 지지자들과 공화당 주정부들은 큰 승리라며 환호했다. 대법원은 22~24주까지 임신중지권을 보장한 판례를 깨면서 임신중지의 합법·불법화 여부는 각 주 법률로 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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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 직전에도 연방대법원 앞에서 임신중지 합법화 집회에 참여했다는 여성이 “내가 왜 1973년에 이어 여기에 또 와야 하나”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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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임신중지권을 부인하는 법률을 만들어놓고 기다려온 오하이오와 아칸소주 등은 판결이 나온 이튿날인 24일 즉각 법률 시행에 들어갔다. 이런 주들에서 임신중지 수술을 하는 기관들은 영업이 곧장 중단돼 예약자들은 수술을 받을 수 없다. 아이다호·노스다코타·텍사스주는 ‘트리거 조항’에 따라 판결로부터 30일이 지난 뒤 임신중지 불법화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텍사스주는 빠르면 임신 6주에 해당하는 태아의 ‘심장 박동 감지 시기’ 이후엔 임신중지를 금지한다. 성폭행이나 근친상간의 경우조차 임신중지를 불법화하는 주들도 있다. 현재 임신중지 불법화 법률을 시행하기 시작한 주가 8곳이다. 앞으로는 50개 주 가운데 절반이 넘는 26곳이 임신중지 금지법을 갖게 될 전망이다.

반면 워싱턴 대법원 청사 앞을 비롯한 미국 곳곳에서 반발 시위가 이틀째 진행됐다. 민주당이 장악한 미네소타·매사추세츠·캘리포니아 주정부는 임신중지 불법화 주에서 오는 여성이나 이들을 돌보는 의료인을 보호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발동하거나 임신중지권 강화 법률 시행에 들어갔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판결 직후 “대법원에 의한 비극적 실수이자 극단적 이데올로기의 실현”이라고 비판을 쏟아내며 여성들의 임신중지권 보호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상원의원 34명은 대통령과 각료들이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서한을 발표했다.

이번 판결은 다른 서구 국가 정상들이 공개적으로 충격을 표현할 정도로 국제적 파장도 크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끔찍하다”며 “나는 미국 여성들이 느끼는 공포와 분노를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트위터에 썼다. “너무 큰 퇴보”(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임신중지는 여성의 기본권”(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엄청 속상한 일”(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우려스럽고 실망스럽다”고 했고,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대변인은 “세계적으로 임신중지의 45%가 안전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뤄진다”며 우려를 밝혔다.

이 판결을 둘러싼 미국 보수와 진보의 대결은 11월 중간선거가 다가오면서 더욱 격화될 전망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방의회의 입법으로 임신중지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민주당에 표를 달라지만 공화당이 상·하원을 장악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그럴 경우 공화당이 연방 차원의 입법으로 민주당이 장악한 주들의 임신중지권 보호까지 무력화할 가능성도 있다.

임신중지를 둘러싼 민주당과 공화당 장악 주들의 대립은 자유주와 노예주가 심각하게 갈등하던 19세기 ‘남북전쟁’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워싱턴 포스트>는 “전문가들은 주들 간에 노예 시대 이래 본 적이 없는 갈등을 예상하고 있다”고 했다. <타임>은 “임신중지 등 많은 문제를 놓고 미국은 대체로 남북전쟁 때의 전선에 의해 나뉘어 있다”고 했다.

워싱턴/글·사진 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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