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현지시간) 홍콩 빅토리아 공원 인근 공중전화에 LED 촛불들이 놓여 있다. 홍콩 당국이 3년 연속 톈안먼 민주화시위 추모 집회를 금지하면서 올해도 삼엄한 단속이 계속됐다. |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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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민주화를 요구하던 시민들이 군의 유혈진압에 스러져간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중국 당국의 ‘역사 지우기’로 인해 중국 본토는 물론 홍콩에서도 잊혀진 일이 되어 가고 있다.
지난 4일은 톈안먼 시위대에 대한 중국 군대의 유혈 진압이 이뤄진 톈안먼 민주화시위 33주년이었다. 하지만 이날 중국에서 톈안먼 시위는 없었던 일 취급을 받았다. 중국 최대 포털 사이트 바이두의 ‘오늘의 역사’ 항목에는 1989년 6월4일 일어난 일로 ‘이란 호메이니의 최고지도자 피선’이 소개돼 있었다. 검색 창에 6·4를 입력하면 부르키나파소에서 발생한 학살 사건 등이 나올 뿐 톈안먼 시위를 찾을 수 없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웨이보, 위챗, 더우인 등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이용자들은 이날 프로필 사진과 개인 상태명 등도 변경할 수 없었다. 웨이보에선 ‘6월4일’과 톈안먼 시위를 상징하는 구호인 ‘이것은 나의 의무’라는 말이 모두 차단됐다. SNS를 이용한 희생자 추모 등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였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일 정례 브리핑에서 톈안먼 사태 희생자들에 대한 입장을 묻자 “1980년대말 발생한 그 정치 풍파에 대해 중국 정부는 이미 명확한 결론을 내렸다”고 짧게 답했다. 중국은 지난해 11월 채택한 제3차 역사결의를 통해 톈안먼 시위를 ‘엄중한 정치 풍파’로 규정했다. 시위 진압에 대해서는 “당과 정부는 인민을 의지해 동란에 선명하게 반대하는 것을 기치로 해서 사회주의 국가 정권과 인민의 근본 이익을 수호했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중국에서는 톈안먼 시위에 대한 추모는 물론 논의 자체가 금기시되고 있다.
이젠 홍콩에서도 톈안먼 시위 희생자 추모가 불가능해졌다. 홍콩 당국은 톈안먼 민주화시위 33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3일 오후 11시부터 5일 오전 12시30분까지 빅토리아 공원을 봉쇄했다. 빅토리아 공원은 1990년부터 매년 톈안먼 시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던 곳이다. 지난 2020년 코로나19 방역을 핑계로 시위 금지 조치가 내려졌을 때도 약 2만명의 시민들이 모여 촛불을 켜자 당국은 지난해부터 아예 기념일 전후로 빅토리아 공원을 봉쇄했다. 올해도 공원 주변을 비롯해 도심 곳곳에 배치된 무장경찰은 오가는 시민들을 수색하며 불법 시위를 원천 차단하는 데 주력했다. 검은 옷을 입거나 꽃을 손에 든 이들 위주로 검문이 이뤄졌다. 경찰관들은 LED 촛불을 밝히는 사람들에게 “단념하라”고 말하거나, 심지어 핸드폰 불빛을 켠 행인들에겐 불법 집회에 참여한 혐의를 받을 수 있다며 조명을 끄게 했다.
AFP통신은 지난 3일 한 행위예술가가 감자를 초 모양으로 깎은 뒤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시늉을 하자 곧바로 붙잡혀 경찰차에 실려가는 소동도 벌어졌다고 전했다. 홍콩 시민단체 사회민주연선의 라우샨칭은 공원 인근에서 ‘6월4일 추모’라는 문구가 적힌 마스크를 쓰고, 1989년 톈안먼 시위에 참가한 후 22년을 복역한 고 리왕양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홍콩 명보에 따르면 이날 추모 시위와 관련해 6명이 체포됐다. 이들은 흉기 소지, 경찰관 방해, 무단 집회 선동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
매년 6월4일 열리는 홍콩의 촛불집회는 일국양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행사였다. 하지만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이 도입된 이후 홍콩의 중국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촛불집회도 사라지게 됐다. 심지어 올해는 천주교 홍콩교구가 국가보안법을 우려해 톈안먼 시위 추모 미사를 열지 않기로 하면서 종교적 추도까지 사라졌다. AP통신은 “(공개 추도) 금지는 정치적 이견을 완전히 없애버리려는 움직임의 일환으로 보인다”면서 “이는 홍콩이 자유를 잃고 있다는 신호”라고 지적했다.
홍콩 주재 미국 총영사관이 4일(현지시간) 톈안먼 민주화시위에 대한 추도의 의미로 창가에 촛불을 켜 두었다. |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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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 지우기’에 맞서 해외 곳곳에서 ‘촛불 지키기’ 노력이 이어졌다. 4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중국 대사관 앞에는 종이로 만든 모형 탱크가 등장했고 몇몇 사람들은 탱크 앞에 쓰러져 있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중국 군의 탱크 모형은 인도의 거리에도 세워졌다. 대만에서는 시민 수백명이 촛불로 ‘8964’를 만들며 1989년 6월4일을 기억하자고 외쳤다. 호주 시드니에서는 중국 영사관 앞에 약 50명의 민주 활동가들이 모여 촛불로 ‘64-89’라는 모양을 만들었다. 국제 앰네스티는 이들 지역 외에도 샌프란시스코, 워싱턴, 시드니, 오슬로, 파리 등지에서 이날 톈안먼 시위 33주년 기념 행사가 열렸다고 밝혔다.
국제사회도 톈안먼 시위를 기억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4일 성명을 통해 톈안먼 시위에 대한 유혈진압을 “잔인한 폭력”이라 규정하고 “매년 우리는 인권과 근본적 자유를 지지했던 사람들을 기념하고 기억한다”고 밝혔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홍콩에서 톈안먼 시위 관련 집회가 금지된 데 대해 “이런 난폭한 수단으로 사람들의 기억을 지울 수 없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홍콩 주재 미국, 핀란드, 유럽연합(EU) 영사관 등은 이날 창가에 추도의 의미로 촛불을 켜 둔 사진을 SNS에 올렸다. 브라이언 데이비슨 주홍콩 영국 총영사는 페이스북에 “토론하고, 논의하고, 동의하지 않을 자유는 과거의 교훈을 배우는 데 있어 기본이다. 나는 1989년 베이징의 목격자로서 매년 6월4일 기억을 되짚는다”는 적었다. 이에 홍콩 주재 중국 외교부 사무소는 “불장난은 그만하라”며 “기만적인 정치적 쇼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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