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부 임차 모델이 편의점의 '뉴노멀'로 떠오르며 편의점 창업의 패러다임이 '고위험 고수익'에서 '저위험 저수익'으로 전환되는 모습이다. 사진은 한 편의점 전경. (이충우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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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증하는 ‘본부 임차’ 편의점
▷CU, 4월 신규점 10개 중 6개 해당
매경이코노미가 단독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CU의 본부 임차 매장은 6780개(전체 1만6165개 중 41.9%), GS25는 6968개(1만5601개 중 44.7%), 세븐일레븐 3450개(1만1359개 중 30.4%)에 달한다(CU와 GS25는 4월, 세븐일레븐은 3월 기준). 특히, CU의 경우 4월 한 달간 새로 문을 연 편의점 160개 중 본부 임차 비중은 약 60%에 달한다. 그동안 본부 임차 편의점 비중이 20~30%에 불과했음을 감안하면, 본부 임차 비중이 눈에 띄게 높아졌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정액제 방식을 고수해 온 이마트24도 지난 3월 로열티 방식의 본부 임차형 가맹 모델을 처음으로 도입했다.
편의점 업체들이 본부 임차 경쟁에 나서는 이유는 뭘까. 이를 알려면 먼저 편의점만의 독특한 가맹 모델과 규제 흐름을 이해해야 한다.
편의점은 일반 프랜차이즈와 달리 가맹 모델이 여럿이다. 창업 시 본부와 점주가 점포 보증금과 월세, 인테리어 비용 등을 얼마나 부담하느냐에 따라 수익 배분율도 달라진다. 가령 본부와 점주가 제반 비용을 7:3으로 분담하면, 수익 배분율도 7:3으로 정해지는 식이다. 일반적으로 창업 비용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점포 보증금이다. 따라서 점포 임대차 계약을 본부가 하느냐, 점주가 하느냐가 중요하다. 전자는 본부 임차(위탁 가맹), 후자는 점주 임차(완전 가맹)로 가맹 모델이 나뉜다.
그동안 국내 편의점은 점주 임차 비율이 70~80%에 달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점주가 창업 비용을 더 부담하고, 수익도 더 많이 가져가는 ‘고위험 고수익’ 모델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1개 점포에서의 수익을 적게 가져가는 본부는 대신 출점 개수를 늘렸다. 1인 가구 증가가 본격화되며 편의점 창업 붐이 일었던 2010년대 중반, 연간 5000개 가까운 편의점이 순증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자리한다. 이로 인해 현재 국내 편의점은 5만개가 훌쩍 넘어 인구 대비 포화도가 일본과 대만의 2배에 달하는 수준이 됐다.
‘미친 출점’으로 점주들 원성이 높아지자 정치권에서 근접 출점 규제를 시작했다. 지난 2018년 서울시가 각 자치구에 ‘담배 소매인 지정거리’를 50m에서 100m 이상으로 늘리도록 권고한 것이 대표 사례다. 담배는 편의점 매출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수익원. 이를 제한하자 당연히 신규 출점도 크게 줄었다.
그런데 신규 출점 제한은 뜻밖의 ‘나비 효과’를 불러왔다. 경쟁자 진입이 원천 봉쇄되자 기존 고매출 점포가 고수익을 독차지하게 된 것. 5년 계약이 만료돼 브랜드를 갈아타는 시점이 되면 고매출 점포에는 억대 권리금이 붙었다.
거의 유일하게 점포 수를 늘릴 수 있는 기회인 만큼, 본부들의 기존점 쟁탈전도 더욱 치열해졌다. 수익 배분율을 점주에게 90% 이상 몰아주거나, 신제품이 출시되면 직원이 직접 가서 매장 진열을 해주겠다며 구애할 정도였다. 그동안 ‘슈퍼갑’이었던 본부가 이제 을이 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자 본부들은 전략을 바꾸기 시작했다. 점주에게 권리금을 주고 임차권을 사들이기 시작한 것. 점주 임차 매장이 본부 임차 매장으로 전환되면 상가주와의 점포 계약 연장은 물론, 5년 계약 만료 후 브랜드 전환 권리도 본부가 갖게 된다. 마침 2018년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도 본부가 직접 임차에 나선 배경이 됐다. 임차인이 최대 10년까지 점포를 운영할 수 있도록 임차인 권리가 강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시는 기존 담배 소매인 매장을 인수하면 인근 매장과 100m 이내라도 계속 담배를 팔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는 ‘5년 유예’ 기간을 뒀다. 이 기간이 만료되는 시점이 2024년 3월이다. 2년이 채 남지 않은 만큼, 담배 소매인 매장의 본부 임차 전환 경쟁은 당분간 계속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예비 창업자가 점포를 이미 계약해놓고 찾아오는 경우가 아니면, 웬만해서는 본부 임차를 종용하는 분위기다. 본부 임차로 오픈했을 때 가점을 주니 점포 개발 담당 직원도 적극적이다. 본부가 먼저 점포를 계약해놓고 점주를 찾다 못 찾아 계약금을 날린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일매출 180만원 정도 나오는 평범한 점포인데도 권리금을 1억원 넘게 주고 본부 임차로 전환해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본부가 권리금을 넉넉히 주고 임차권을 인수하니 당장 점주들은 마다하지 않는 분위기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본부 임차 편의점이 다수가 됐을 때 점주 협상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가령 본부가 갑질을 했을 때 점주들의 단체 행동 등 견제 수단이 줄어들 수 있다는 것. 신상우 전편협 공동대표는 “본부 임차 비율이 50%를 넘어서면 점주들의 협상력이 약화될 수 있어 예의 주시하고 있다. 업체들이 본부 임차를 지나치게 늘리는 행위는 자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담배권 제한이 부메랑 ‘규제의 역설’
▷“위탁 가맹 점주 권익 보호해야”
본부 임차가 늘어나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 중론이다.
우선 본부가 직접 투자 리스크를 부담하니 장기적으로 과당 출점이 완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강성민 가맹거래사협회장은 “그간 편의점 시장은 포화도가 지나치게 높아 점주 피해가 막심했다. 본부 임차는 점주의 투자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낮은 만큼, 시장이 안정화되면 생계형 창업자에게 유리할 수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실제 ‘편의점 선진국’인 일본은 물론, 대만도 본부 임차 비율이 60~90%로 높은 편이다. 다만, 일본과 대만은 편의점 규모가 30평 이상 대형점이 많고 포화도도 낮아 점포당 매출이 월등히 높다. 같은 본부 임차 모델로 창업해도 점주가 가져가는 몫이 일본, 대만보다 우리나라가 훨씬 적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점주들의 최소 수익 배분을 담보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 스마트경영학과 교수(경영학 박사)는 “위탁 가맹은 사실상 점주가 본사에 반(半)고용된 형태다. 임차권이나 브랜드 변경권이 없는 만큼 본부에 대한 협상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창업 시 최소 수익을 보장하는 등 위탁 가맹 점주의 권익 보호 장치가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성민 협회장은 “본부 임차형은 점주가 열심히 운영해 점포 가치를 높인 데 대한 보상이 모두 본사로 돌아간다는 맹점이 있을 수 있다”며 보완책 마련을 주문했다.
[노승욱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160호 (2022.05.25~2022.05.3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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