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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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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일선 특파원의 차이나 프리즘] 위기의 시진핑 주석… 실업률·물가 못 잡으면 KO패 당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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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들은 과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시(習)황제’라고 표현했다. 미국과 맞서는 G2 국가인 중국의 절대 권력자에게 붙여진 칭호였다. 실제로 시 주석의 권력은 절대 무너질 수 없는 성벽처럼 단단하고 빈틈이 없었다. 시 주석이 앞세운 ‘반부패 투쟁’은 그의 정적 또는 잠재적 정적들을 옭아매는 효율적인 도구였다. 2018년 헌법을 개정해 국가주석의 연임 제한 규정(2회)을 철폐하면서 장기집권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탄탄한 권력 기반 때문이었다. 지난해 11월에는 제3차 중국 공산당 ‘역사결의’를 통해 마오쩌둥, 덩샤오핑과 함께 중국 3대 지도자의 반열에 올라서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이 같은 시 주석의 절대 권력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기 된 계기는 상하이 도시 봉쇄다. ‘우한폐렴’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려는 듯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강력한 방역 정책을 펼친 것이다. 이른바 ‘제로코로나(淸零·중국명 칭링)’ 정책이다. 덕분에 전 세계가 코로나19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 중국은 코로나 청정구역으로 탈바꿈하면서 경제도 V자 반등을 이뤄냈다. 중국 공산당은 이를 시 주석의 최대 치적으로 포장했다. 시 주석의 제로코로나 정책이 중국 코로나 방역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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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게 부메랑이 됐다. 상하이 도시 봉쇄는 중국 코로나 방역 신화에 금이 가게 만들었다. 이는 곧 시 주석의 정책 실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중국의 경제수도인 상하이 상주인구는 2500만 명에 달한다. 웬만한 국가 총인구와 맞먹는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지구상에서 이뤄진 사상 최대 규모의 도시 봉쇄였다. 외신들은 상하이 봉쇄로 인한 자동차·반도체 공급 차질과 물류 대란을 걱정했지만 정작 중국인들의 시선을 끈 것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림에 시달리고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숨지는 상하이 시민들이었다. 상하이는 중국에서 가장 잘사는 도시였기에 중국인들의 충격은 더 컸다.

시 주석의 최측근인 리창 상하이 당서기가 현장시찰에서 주민들의 집단 항의를 받는 장면은 공산당과 시 주석 리더십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주민들이 봉쇄된 아파트 정문 바깥에서 리 서기에게 “식료품 등 물자가 공급되지 않는다”라고 소리를 지른 것이다. 공산당 고위간부에 대한 공개적인 반발은 중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다.

더 큰 문제는 중국 공산당에게 퇴로가 없다는 점이다. 중국은 제로코로나 정책을 미국 등 서방에 비해 중국 정치 시스템이 훨씬 우월하다는 증거로 선전해왔다. 특히 시 주석은 직접 제로코로나 정책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수차례 피력했다. 그는 “코로나 방역은 중국이 금메달”이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로코로나의 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시 주석에 대한 도전으로 비칠 수 있다. 일부 전문가들이 “제로코로나 출구 전략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지만 하루아침에 SNS에서 모두 사라진 것도 이런 맥락이다. 블룸버그는 “방역에 대한 불만은 상하이를 넘어 중국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어 시진핑 주석이 집권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전했다.

권력자들의 불안감은 관영매체의 보도에서도 묻어난다. 무관용의 엄격한 방역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중국 관영매체들이 제로코로나 정책에 대한 정당성과 당위성을 설파하는 기사들을 쏟아낸 것이다.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제로코로나가 최선의 방역대책”이라고 했고 신화통신은 “제로코로나가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의료체계가 뚫릴 위험이 있고 이는 집단의 심리적 안정을 위협하는 중대한 사회문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환구시보는 “서구의 ‘위드코로나’ 정책은 면역 능력이 떨어지는 약자를 대량으로 도태시키는 잔혹한 사회 다윈주의”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런데 제로코로나에 대한 민심이반이 시 주석 앞에 놓인 위기의 전부는 아니다. 봉쇄와 통제 위주의 방역대책에 대한 불만은 눈에 보이는 시 주석의 위기라면 눈에 보이지 않는 위기는 경제불안이다. 경제불안과 관련해 기자가 가장 유심히 보는 지표는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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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실업률 목표 5.5% 달성 힘들어지자 돈 풀기 나서

매년 3월 열리는 중국의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의 하이라이트는 총리의 업무보고다. 특히 언론들은 중국 당국이 제시한 경제성장률 목표치에 주목한다. 그런데 정부가 양회에서 경제성장률과 함께 제시하는 숫자가 또 있다. 바로 실업률과 물가상승률 목표치다. 올해 3월 양회에서는 도시 실업률은 5.5%, 물가상승률은 3% 이내에서 관리하겠다고 발표했다.

전문가들은 중국 공산당이 신중국 성립 이후 70년 넘게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으로 고용안정과 물가안정을 꼽는다. 고속성장 과정에서 넘쳐났던 양질의 일자리와 안정적인 물가는 권위적 체제에 대한 인민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올가을 시 주석은 10년 임기라는 기존 관례를 깨고 장기집권에 나선다. 그 어느 때보다도 체제 유지를 위한 사회안정이 중요한 시기다. 리커창 총리가 올해 양회 연설에서 ‘안정’이라는 단어를 76번이나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하지만 중국 경제 여건이 만만치 않다. 특히 고용 시장은 당국의 기대와 달리 안정보다는 혼란에 가까운 형국이다.

올해 중국 대학 졸업생은 역대 최고인 1067만 명에 달한다. 여기에 미취업자까지 포함하면 올해 구직 시장에 나올 대졸 취업자는 16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 3년째 이어지는 코로나 불황과 당국의 기업 때리기로 사람을 뽑겠다고 나서는 기업은 크게 줄었다. 교육·부동산 기업의 폐업이 속출하고 있고 중국의 일자리 보루였던 IT 기업들마저 오히려 인력을 정리해고하고 있다. 이에 청년인구 실업률(16~24세)은 16%까지 치솟았다. 애국주의와 중화주의로 무장한 중국의 젊은 세대들은 시 주석의 최대 지지층이다. 그들의 분노는 곧 시 주석의 위기로 연결된다. 1분기 도시 실업률도 2월 5.5%에서 3월 5.8%로 상승했다. 5.8%는 2020년 5월 이후 최고치다.

그동안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던 중국 소비자물가도 들썩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올해 들어 1%를 밑돌던 CPI 상승률이 3월 들어 1%대 중반으로 크게 높아진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코로나19 확산으로 에너지와 식료품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저양안천하(猪粮安天下)’라는 말이 있다. ‘돼지고기와 양곡이 천하를 안정시킨다’는 의미다. 중국 당국이 국민들의 주식인 돼지고기 가격 안정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급망 불안, 도시 봉쇄로 인한 사재기 현상 등이 계속되면 14억 인민들의 밥상물가가 치솟을 수 있다. 이는 공산당의 집권기반 약화로 이어진다. 시 주석이 이번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손일선 특파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40호 (2022년 5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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