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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값비싼 '무제한 요금제' 손질 없이 가계통신비 줄이겠다는 헛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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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기 기자]

# "통신은 공공재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물가 안정을 위한 고통 분담에 업계가 자발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2023년 2월 15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내뱉은 말입니다. 대통령이 직접 언급할 정도로 현 정부는 가계통신비 인하를 중요한 목표로 설정했습니다.

# 하지만 가계통신비는 좀처럼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메시지를 실현하기 위해 정부는 중간요금제, 번호이동 전환지원금 등 다양한 정책을 펼쳤지만 공염불에 그쳤습니다. 가계통신비는 왜 꿈쩍도 하지 않는 걸까요? 더스쿠프 視리즈 '이통3사 요금제의 비밀' 1편에서 '데이터 사용량'이란 색다른 관점으로 답을 찾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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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통신비 인하'란 케케묵은 목표가 좀처럼 실현되지 않고 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1인당 가계통신비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13만7800원에서 말기인 2021년 12만4000원으로 9.4%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습니다.

현 정부는 5G 중간요금제 출시, 번호이동 전환지원금 정책 등 숱한 정책을 썼지만 가계통신비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띠었습니다. 이중 전환지원금은 통신사를 바꾸는 소비자에게 이통사가 최고 50만원까지 지원할 수 있는 정책입니다. 이를 통해 이통3사 간의 소비자 유치 경쟁을 유발해 궁극적으로 통신요금을 떨어뜨리겠다는 게 정부의 전략이었지만 되레 역효과를 양산했습니다.

특히 전환지원금은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지원금으로 인해 단말기 구매 비용과 위약금이 줄면서 뛰어난 가성비로 가계통신비 인하에 앞장서던 알뜰폰 시장이 타격을 입었습니다. 적지 않은 이용자들이 알뜰폰에서 이통3사 요금제로 갈아탔기 때문입니다.

그럼 가계통신비가 요지부동인 이유는 뭘까요? 이 문제의 답을 찾으려면 '이통3사 요금제'를 쓰는 한국 소비자의 소비 패턴부터 파악해야 합니다. 알뜰폰 가입자(936만5701명·7월 기준)가 늘어났다곤 하지만 전체 무선 이동통신 가입자 수의 16.4%에 불과해서입니다.

현재 이통3사의 요금제 가격은 통화량이 아닌 '데이터 사용량'이 결정합니다. 이통3사의 요금제는 더 많은 데이터를 제공할수록 가격이 비싸지는 구조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소비자의 데이터 사용량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탐구하면 가계통신비가 줄지 않은 이유를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 관점➊ 데이터 사용량 = 먼저 한국 소비자의 데이터 소비 패턴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소비자의 데이터 사용량은 지난 몇년간 빠르게 증가했습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휴대전화 트래픽은 2017년 12월 30만9686TB(테라바이트·1TB는 1024GB)에서 올해 7월 109만874TB로 7년 새 3.5배로 늘었습니다.

트래픽(traffic)은 인터넷상에서 서버에 흐르는 데이터의 크기로, 스마트폰의 '데이터 사용량'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하면 한국 소비자의 총 데이터 사용량이 7년 전보다 3.5배 늘어났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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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여러 요금제 정책은 숱한 부작용을 낳았다.[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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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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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평균 트래픽으로 따지면 증가폭이 더 가파릅니다. 같은 기간 3115MB에서 2만108MB로 6.4배가 됐습니다. 데이터를 많이 쓰는 이른바 '헤비 유저'의 데이터 사용량도 늘어났습니다. 트래픽 발생량 기준으로 상위 10%를 차지하는 이용자들의 총 트래픽은 2019년 12월 12만1444TB에서 올해 6월 92만2360TB으로 7.5배 증가했습니다. 그만큼 데이터 제공량이 많은 고가 요금제 수요도 커졌을 공산이 큽니다.

데이터 사용량이 급격히 늘어난 데 가장 크게 기여한 건 2019년 4월 상용화한 5G입니다. 그해 12만1444TB(12월 기준)였던 5G 트래픽은 올해 7월 94만7387TB로 4년 7개월 새 7.8배가 됐습니다. 5G 상용화 직전인 2018년 당시 최신 통신기술이었던 4G 트래픽(39만4765TB)보다도 2.4배 더 많은 양입니다. 5G가 대중화하면서 이용자들의 데이터 사용량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얘기입니다.

누군가는 "데이터를 무료로 쓸 수 있는 와이파이가 늘었기 때문에 이용자가 부담해야 할 실제 트래픽양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언급했듯 휴대전화 트래픽은 2017년 12월부터 올해 7월까지 3.5배(250%) 증가한 반면, 와이파이 트래픽은 같은 기간 1만4495 TB에서 1만6966TB로 17.0%밖에 늘지 않았습니다. 소비자들이 와이파이로 데이터 사용량을 절감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건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결국 가계통신비가 떨어지지 않은 이유는 '데이터 사용량' 때문이라는 건데, 사실일까요? 답을 찾기 위해선 먼저 살펴봐야 할 게 있습니다. 8만~13만원대로 가격이 제일 비싼 '5G 무제한 요금제' 가입자의 트래픽입니다. 이 요금제가 가계통신비를 끌어올리는 주범으로 꼽히고 있어서입니다.

■관점➋ 무제한 요금제 = 무제한 요금제 가입자의 총 트래픽은 2019년 10만6333TB에서 2022년 53만160TB로 3년간 400% 증가했습니다. 1인당 트래픽도 같은 기간 3만3034MB에서 5만393MB로 152.5% 늘었죠. 1인당 트래픽은 전체 트래픽에서 가입자 수를 나눈 값일 테니, 이를 역산하면 무제한 요금제 가입자 수를 어렵지 않게 추산할 수 있습니다.

계산해 보면, 무제한 요금제 가입자 수는 2019년 337만5257명에서 2022년 1103만1553명으로 226.8% 늘어났습니다. 비싼 요금제를 쓰는 이용자가 계속 늘고 있으니 가계통신비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건 당연한 결과입니다.

물론 이통3사는 이 지점에서 반론을 폅니다. 5G 가입자 중에서 무제한 요금제 가입자를 따져보면 통계가 달라진다는 겁니다. 표면적으론 사실입니다. 전체 5G 가입자 수 대비 무제한 요금제 가입자 비중은 2019년 72.3%에서 2022년 39.3%까지 낮아졌죠. 올해 6월엔 그 비중이 28.8%까지 쪼그라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최근 언론사들은 이 통계를 근거로 '정부의 요금제 인하 정책이 통했다'는 보도를 앞다퉈 쏟아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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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를 두고 '무제한 요금제 가입자가 줄었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4G에서 5G로 넘어오는 이용자가 늘면서 전체 5G 가입자 수가 증가한 게 통계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분모가 늘어나면서 '무제한 요금제 가입자' 비중이 줄어든 것 같은 착시 현상이 나타난 겁니다. 앞서 역산한 결괏값이 말해주듯 무제한 요금제 가입자 수는 실제로 계속해서 늘고 있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겁니다.

그렇다고 이통3사가 요금제를 개편조차 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고가요금제와 저가요금제 사이에 중간이 없다'는 지적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받아들여 '5G 중간요금제'를 출시하긴 했습니다만, 이 또한 문제가 많습니다.

데이터 제공량을 애매하게 책정한 탓에 저가요금제를 쓰던 소비자는 중간요금제로, 중간요금제 이용자는 고가요금제로 갈아타는 현상을 부채질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중간요금제 역시 가계통신비 상승을 부추긴 셈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지는 '이통3사 요금제의 비밀' 2편에서 상세히 다루겠습니다.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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