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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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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물가 잡으러 간다" 3년만에 금리 올린 파월…긴축 시대 개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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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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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밀린 숙제(물가 안정)를 빨리 끝내겠다.' 3년 3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올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시장에 전한 메시지다. 긴축의 가속 페달을 짧고 굵게 밟아 '물가 잡으러 간다'는 신호를 분명히 했다. Fed가 '인플레 파이터'의 본색을 드러내며, 물가와 경기 사이의 균형점을 찾기 위한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도 시작됐다.

Fed는 15~16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연 0~0.25%인 기준금리를 연 0.25~0.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Fed가 금리를 올린 건 2018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지난 2020년 3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2년간 이어진 '제로(0) 금리' 시대도 막을 내리게 됐다.

긴축의 첫발을 '베이비 스텝'(0.25%포인트 인상)으로 뗀 건 예상대로였다. 치솟는 물가 속 실기(失期) 논란을 의식한 듯, 향후 긴축 강도는 예상보다 셌다. 이날 Fed가 공개한 점도표(dot-plot)에 따르면 FOMC 위원들이 예상한 올해 말 기준금리는 연 1.9%(중윗값)다. 올해 남은 6차례 회의에서 금리를 계속 올리겠다는 의미다. '빅 스텝(0.5%포인트) 인상' 가능성도 열어놨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금리를 더 빨리 올리는 것이 적절하다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말 금리 예측 수준은 연 2.75%다. 내년에도 3~4차례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뜻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기준금리를 9차례 올렸던 2015~18년에 비해 상당히 빠른 속도로, 2004~2006년 17차례 연속 올렸던 것에 더 가깝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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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기준금리 추이.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돈줄을 죄려 '양적 긴축(QT)'도 병행한다. 양적 긴축은 Fed가 채권을 사들여서 돈을 시중에 푸는 것(양적 완화)과 반대로 채권을 팔아 시중의 유동성을 흡수하는 것이다. Fed의 보유 자산은 8조9000억 달러로, 코로나19 이후 2년 새 두 배로 불어났다. 파월은 "5월 회의에서 대차대조표(자산) 축소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매파(통화 긴축) 본색을 제대로 드러낸 것이다.

Fed의 공격적 긴축에는 '물가를 잡겠다'는 의지가 깔려있다. 지난달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보다 7.9% 급등해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석 달 연속 7%를 웃돌고 있다. 같은 달 생산자물가지수(PPI)도 1년 전보다 10% 뛰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 유가가 치솟으며 '오일 쇼크' 트라우마까지 불러일으켰다.

Fed는 인플레이션(물가상승) 압력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의 2.6%에서 4.3%로 올려 잡았다. 파월도 "우크라이나 사태가 단기적으로 물가 추가 상승 압력을 만들고 경제 활동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했다. 강력한 긴축으로의 태세 전환을 '물가 위험에 대한 대굴복(the Great Capitulation)'으로 평가(뱅크오브아메리카)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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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FOMC 점도표.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문제는 Fed가 물가의 고삐를 세게 쥐면서 경기 연착륙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데 있다. 파월이 "미국 경제가 여전히 강하다"고 강조했지만, Fed는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보다 1.2%포인트 낮춘 2.8%로 예상했다. 경제 엔진이 식어가는 데 강력한 긴축 모드에 돌입하면 경기 둔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이다.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물가 상승)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최근 펀드매니저 서베이에서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지난달 30%에서 62%로 배로 뛰었다. 시모나 모쿠타 스테이트스트리트 글로벌자문 수석이코노미스트는 "Fed가 너무 공격적인 것 같다"며 "경제가 어떻게 움직일지 불확실한데, (전망대로) 금리를 올릴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물가와 경기 사이의 아슬아슬한 시소게임이 시작되며 Fed의 정책 딜레마도 커지게 됐다. 경기 하강을 막기 위해 긴축 강도를 완화하면 물가가 날뛸 수 있고, 물가를 잡으면 불황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에도 금융 시장에는 일단 안도감이 퍼졌다. 금리 인상이란 첫 단추를 끼우며 불확실성이 해소됐기 때문이다. 16일 미국 뉴욕증시에서 나스닥 지수는 3.77% 급등했고 S&P 500(2.24%)과 다우지수(1.55%)도 일제히 올랐다. 17일 아시아 주요 증시도 상승세로 마감했다. 코스피는 1.33% 올랐고 일본 닛케이(3.46%)와 중국 상하이 지수(1.4%)도 상승했다.

위험자산 선호 심리가 강해지며 원화 가치는 올랐다. 이날 원화값은 전날보다 21.4원 오른(환율 하락) 달러당 1214.3원에 마감했다. 2020년 3월 27일 이후 2년 만의 최대 오름폭이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채권전략팀장은 "Fed가 금리 인상 사이클의 종료 지점으로 여겨지는 중립금리를 기존 2.5%에서 2.4%로 낮췄다"며 "일단 인플레이션 파이팅에 집중하겠지만, 물가 안정화 신호가 나타나면 금리 인상을 멈추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시장이 안도하는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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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d의 올해 미국 경제 전망.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미국이 긴축에 속도를 올리며 한국은행의 계산도 복잡해지게 됐다. Fed의 이번 금리 인상으로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상단 기준) 차이는 0.75%포인트로 좁혀졌다. 한은이 현재 연 1.25%인 기준금리를 올해 2~3차례 추가 인상하더라도, 미국이 올해 말까지 예상대로 기준금리를 1.75~2.0% 수준까지 올린다면 금리 역전 현상까지 발생할 수 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한국은행은 오는 5월과 8월에 0.25%포인트씩 금리를 올릴 것으로 본다"며 "연말에 기준금리가 미국 우위로 역전되더라도 금리 격차가 작아 자금 유출 우려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리 인상의 속도가 빨라지며 대출자들의 부담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미국의 금리 인상 기조를 한국이 따라갈 경우 전국 가계의 이자 부담 증가액이 연간 39조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금융 부채가 있는 가구당 연 340만원씩 이자를 더 내야 한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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