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강원 설악산에서 관측된 올해 첫 단풍 모습. [사진 기상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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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들어 날씨는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었지만, 가을 정취를 제대로 느끼기는 어렵다. 유난히 물들지 않은 올해 단풍 때문이다.
6일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설악산 첫 단풍이 지난 4일 시작됐다. 지난해(9월 30일)보다 4일, 평년(9월 28일)보다는 6일이나 지각했다. 기상청은 산 정상에서 20%가량 물들었을 때를 단풍의 시작으로 본다. 고도가 높고 기온이 낮은 설악산부터 시작한 단풍은 점차 남하한다. 보통 9월 말부터 단풍이 시작하는데, 올해는 그 시점이 예년보다 늦어졌다. 기상청은 전국 21개 유명산의 단풍을 관측하는데, 6일 기준으로 설악산을 빼고는 단풍이 시작된 산이 없다. 설악산의 경우에도 10월에 첫 단풍이 든 건 2011년(10월 4일) 이후 13년 만이다. 소셜미디어(SNS)에는 “단풍 없는 단풍놀이였다” “10월에 단풍이 없는 게 말이 되냐” 등의 반응이 올라왔다.
단풍이 이렇게 늦어진 건 9월 기온이 여름철 수준으로 높게 유지된 탓이다. 설악산의 9월 평균 기온은 14.2도로 평년(11.1도)보다 3도 이상 높았고, 특히 아침 기온이 예년보다 포근했다. 기상청은 “설악산 관측 지점의 9월 일평균 최저기온이 11.6도로 지난해(10.4도)보다 높아 단풍이 평년보다 늦게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정근영 디자이너 |
단풍의 절정 시기는 더 늦어질 수 있다. 10월 기온도 높은 추세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기상청은 중기예보에서 16일까지 전국 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것으로 전망했다. 서울의 경우 일교차는 10도 안팎으로 크겠지만, 한낮에는 23~25도로 비교적 포근할 전망이다. 단풍 절정(단풍이 80%가량 물들었을 때)은 일반적으로 시작 약 20일 뒤에 나타난다. 설악산의 경우 지난해는 10월 23일, 평년은 10월 17일이 절정이었다. 민간기상업체인 케이웨더 반기성 예보센터장은 “10월에도 북쪽의 찬 공기가 잘 내려오지 않으면서 11월 초까지는 평년보다 기온이 높을 것으로 본다”며 “단풍 절정 시기도 당초 예상한 것보다 더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각 단풍이 올해 만의 일은 아니다. 기후 변화 영향으로 여름이 길어지면서 단풍 시작 시기도 점점 늦어지고 있다. 케이웨더가 최근 5년간 첫 단풍 시기를 분석한 결과, 1990년대와 비교해 지리산이 11일, 오대산이 6일 늦어졌다. 단풍 절정 시기도 지리산이 8일, 팔공산이 6일 지체됐다.
문제는 기후 변화가 단풍 시작 시기를 늦출 뿐 아니라, 나무의 생장 시계까지 고장 내고 있다는 점이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면서 기온이 내려가고 일조량이 줄어들면 나무는 겨울을 날 준비를 한다. 광합성을 멈추면서 잎 색깔이 변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단풍이 물들고 이어 낙엽이 돼 떨어진다. 하지만 온난화 여파로 기온과 일조량의 균형이 깨지면 나무의 이런 생장 사이클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올가을처럼 고온 추세가 이어지다가 기온이 갑자기 급강하할 경우 단풍이 제대로 물들지 못한 채로 잎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가을이 되면서 광량은 줄어 드는데 생태계가 기억하는 기온과 지금의 기온이 너무나 다르다 보니 나무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푸른 잎 상태로 떨어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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