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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6 (화)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스토킹 신고 했더니, 경찰 “같이 있는 현장 사진 없으면 못도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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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 “경찰 부실대응 철저히 조사하라” 청와대 청원

경찰 “통화 녹취 확인결과 그런 대화는 없었다”

조선일보

서울 중구 오피스텔 스토킹 살인 피의자 김병찬(35)/연합뉴스, 서울경찰청


30대 여성 A씨를 스토킹하다 살해한 김병찬(35)의 피해 유가족이 가해자에 대한 엄벌과 경찰의 부실 대응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청와대 청원을 통해 요구했다. 피해자의 112 신고에 경찰이 “사진이나 영상 증거 없이는 곤란하다”는 취지로 답했고, 끝내 살해됐다는 주장이었다. 경찰은 “녹취 확인 결과와는 다르다”고 해명했다.

지난 2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계획적이고 잔인한 스토킹 살인범에게 살해 당한 고인과 유족의 억울함을 호소합니다’란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최근 벌어진 ‘스토킹 살해’ 사건 피해자 A(32)씨의 남동생이라고 밝힌 청원인은 “누나는 살고자 발버둥 쳤으나 허술한 피해자 보호체계와 경찰의 무관심 속에 죽어갔다”며 경찰의 무책임한 대응을 지적했다.

그는 “누나는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접근한 치밀하고 잔인한 살인마에게 희롱 당하다가 흉기에 수십 차례 찔려 꽃다운 나이에 비참하게 살해당했다”며 “괴롭힘을 당하는 과정에서 누나는 살기 위해 경찰에게 수차례 도움을 요청했고, 나라가 제공한 피해자 보호 제도를 굳게 신뢰했다”고 말문을 뗐다.

이어 “생전 누나는 경찰로부터 스마트워치를 받고 걱정해주는 친구들에게 ‘나에게는 만능시계가 있다!’ ‘경찰청이 바로 코앞에 있어서 신이 도우신 것 같다’고 얘기했다”며 “그러나 허울 뿐인 피해자 보호 제도는 누나를 살인범으로부터 전혀 보호해주지 못했고, 누나는 차가운 복도에서 고통 속에 홀로 외롭게 세상을 떠나야 했다”고 토로했다.

조선일보

'스토킹 살해' 피해자 유족이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청와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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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인에 따르면 A씨는 지난 7일 김병찬으로부터 협박을 받아 경찰에 신고했다. A씨는 경찰서에서 진술서를 작성한 뒤 다음날까지 임시보호소에서 머물렀고, 9일부터 14일까지 지인 집에서 지냈다. 김병찬은 A씨가 오피스텔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자 9일 A씨 직장으로 찾아갔다.

당시 A씨는 ‘갤럭시 SOS 메시지’ 기능을 통해 직장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이들은 해당 기능으로 전송된 위치정보를 보고 A씨를 찾아와 김병찬을 분리시켰다. 이후 A씨는 112에 신고했지만 결국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다.

청원인은 ‘112 신고를 받은 경찰이 A씨에게 증거를 요구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A씨가 “임시 보호소에 있던 A인데 가해자가 회사 앞으로 찾아왔다”고 하자 경찰은 “같이 있냐” “어디로 갔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A씨가 “잘 모르겠다”고 답하자 경찰은 “증거가 없으면 도와드릴 수 없다”며 “같이 있는 사진이나 동영상이 있어야 도와드릴 수 있다”는 취지로 답했다는 것이다.

청원인은 “정말 기가 막히지 않나. 위협을 가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데 피해자가 동영상을 찍을 수 있을까. 셀카라도 한 번 찍자고 해야 할까”라며 “이게 대한민국 피해자 보호 체계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후 경찰은 김병찬에게 100m 이내 접근금지 및 정보통신 이용 접근금지 등을 내렸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고 한다. A씨는 15일부터 원래 살던 오피스텔에서 출퇴근을 시작했고, 지난 19일 김병찬을 피해 이사갈 곳을 알아보려 휴가를 내고 외출했다가 김병찬에 살해당했다.

청원인은 “끔찍하게 공격당하는 와중에 살기 위해 스마트워치를 애타게 눌렀으나, 스마트워치는 엉뚱한 곳을 알려줬다”며 “신변보호자에게 제공되는 스마트워치를 누른 최초의 시간인 오전 11시29분에 경찰이 출동해 현장에 제대로 도착했다면, 누나는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신변보호 요청을 한 여성에게 지속적으로 보호 인력을 배정했다면 괜찮지 않았을까”라고 토로했다.

그는 “경찰의 부실대응으로 구해야 할 국민을 지키지 못한 책임자를 규명해 처벌하고, 책임자는 고인과 유족 앞에서 직접 진심어린 사과를 약속해달라”며 “또 유사한 피해가 재발되지 않도록 피해자보호 체계 개선을 위한 확실한 일정을 빠른 시일내에 공표 해달라”고 호소했다.

아울러 김병찬에 대한 엄벌도 촉구했다. 청원인은 “가족들은 계속해서 김병찬이 ‘전 남자친구’로 표현되는 것이 매우 불쾌하다”며 “만에 하나라도 이 살인범이 ‘사랑’을 들먹이며 형을 낮추려고 한다면 강하게 항의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청원했다.

경찰은 청원 내용 가운데 112 신고 부분이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서울청 112상황실은 “신고내용 녹취를 확인한 결과, ‘증거가 없으면 도와드릴수없다 같이 있는 사진이나 동영상이 있어야 도와드릴수 있다’는 대화는 실제로 없었다”고 했다. 경찰에 따르면, 당시 경찰은 “경찰관을 보내주겠다 어디로 보내면 되겠느냐”고 물었고 피해자는 “지금은 현장을 벗어나 먼곳에 있고 피혐의자도 어디있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에 경찰은 “(현재상황에선 신고건에 대해) 할수 있는건 없는데 저녁이나 내일 출근할때 경찰의 도움이 필요하면 다시 연락하면 도와주겠다”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112상황실은 “실제로 그날저녁 피해자분이 도움을 요청하여 경찰관들이 집까지 동행한 사실이 있다”고 했다.

앞서 경찰은 지난 24일 A씨를 살해한 피의자 김병찬의 신상정보를 공개했다. 김병찬은 지난 11개월 동안 A씨를 위협하는 등 괴롭혀왔고 A씨는 스토킹 피해를 당하는 과정에서 총 6차례 경찰에 신고했으나 지난 19일 신변 보호를 받던 중 서울 중구 한 오피스텔에서 살해 당했다. 사건 당일 A씨는 경찰이 지급한 스마트워치를 통해 두 차례 경찰에 긴급상황을 알렸지만 경찰이 도착했을 당시 김병찬은 살인을 저지르고 범행 장소를 떠난 뒤였다. 경찰은 기술적인 문제로 A씨의 자택에 뒤늦게 도착했다고 해명했지만, 경찰의 부실 대응에 대한 비난 여론이 확산했다.

[김자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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