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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삼복더위 날리는 미스터리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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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BOOK]

엘러리 퀸이 엮은 선집 두 권

뒤팽, 홈스, 푸아로 등 명탐정과

완전범죄 꿈꾸는 범인들 계략 담아

“명탐정은 예술 비평가”라는 자부도


한겨레

추리소설의 황금기로 일컬어지는 1920~30년대 단편 추리소설을 추리 작가 엘러리 퀸이 ‘탐정편’과 ‘사건편’으로 나누어 엮은 선집 두 권이 한꺼번에 출간되었다. 사진은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 <오리엔트 특급 살인>(2017)에서 감독이자 주연배우를 맡은 케네스 브래너가 주인공인 에르퀼 푸아로 탐정 역을 맡아 연기를 하는 모습. 이십세기폭스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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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은 영원하다
, 이것이 완전범죄다

엘러리 퀸 엮음, 김석희 옮김 l 섬앤섬 l 각 권 1만7000원

공포 영화 관람은 여름 무더위를 쫓기에 효과적인 방책 중 하나로 꼽힌다. 오싹한 화면 속 상황에 몰입하다 보면 저절로 땀이 식고 오히려 서늘한 기분을 느끼게 마련이다. 추리소설 읽기는 공포 영화 관람의 활자 매체 버전이라 할 수 있겠다. 범인과 범죄 수법을 추리하느라 두뇌를 풀가동하노라면 삼복더위쯤이야 어느새 잊곤 한다. 마침 여름 한복판을 벗하며 나기에 좋을 추리소설 선집 두 권이 한꺼번에 출간되었다. 미국의 사촌형제 추리소설 작가 엘러리 퀸이 엮은 <명탐정은 영원하다>와 <이것이 완전범죄다>가 그것으로 각각 소설 속 명탐정들의 활약상과 완벽에 가까운 범죄를 묘사한 작품들을 추려 실었다.

<명탐정…>에는 추리소설 역사상 최초의 탐정이라는 오귀스트 뒤팽을 주인공 삼은 에드거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를 비롯해 단편 11편이 묶였다. 탐정의 대명사라 할 셜록 홈스(아서 코넌 도일, ‘얼룩 끈의 비밀’), 팔자 수염이 트레이드마크인 에르퀼 푸아로(애거서 크리스티, ‘죽음의 체스 게임’), ‘생각하는 기계’라는 별명을 지닌 밴 두젠 교수(잭 푸트렐, ‘13호 독방의 문제’), ‘안락의자 탐정’의 원조로 꼽히는 ‘구석의 노인’(엠마 오르치, ‘더블린 미스터리’), 그리고 이 책의 엮은이 이름과 같은 엘러리 퀸(엘러리 퀸, ‘미친 다과회’) 등의 활약을 만날 수 있다. <…완전범죄다>에도 도로시 세이어스의 ‘의혹’과 휴 월폴의 ‘은가면’, 펄 벅의 ‘몸값’을 비롯해 단편 11편이 실렸다.

“탁월한 재능을 지닌 수사관은 단순히 후각이 예민한 수색견의 피가 혈관에 흐르고 있는 직관적인 경찰관이나 꼼꼼한 과학자가 아니라, 그 이상의 존재야. 그런 사람은 예술 비평가이기도 하지.”

<…완전범죄다>에 실린 벤 레이 레드먼의 ‘완전범죄’에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탐정”이라 일컬어지는 해리슨 트레버 박사는 친한 친구 그레고리 헤어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의 말은 우리가 빼어난 탐정의 활약에 매료되는 까닭을 알게 한다. 탐정의 본질은 범인의 정체를 밝혀내는 데에만 있지 않다. 그보다는 범죄의 수법과 테크닉을 간파하고 해석하는 것이 탐정의 본분에 더 가깝다. 예술 비평가로서 탐정의 해석이 박수를 받자면 비평 대상인 범죄 역시 어느 정도의 수준에 올라야 한다. 그런데 세상에는 그런 수준 높은(?) 범죄가 드물다. 트레버 박사가 이렇게 개탄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시시한 이류 작품만 계속 비평하도록 강요당하는 건 어떤 비평가도 좋아하지 않는다네.”

“가장 뛰어난 정신을 가진 사람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가 없다”는 사실을 아쉬워하는 트레버 박사는 급기야 이런 상상을 하기에 이른다. “내 지성을 총동원해서 범죄를 저지른 다음, 그 세부적인 사항을 모조리 잊어버리고, 내 수사 기법을 총동원해서 나 자신이 창조한 수수께끼를 해결하는 실험이야. 나는 나 자신을 범인으로 잡게 될 것인가, 아니면 놓치고 말 것인가?” 오만의 극치라 하겠거니와, 예술적 창조로서의 범죄와 그에 대한 비평으로서의 수사를 강조하던 그가 결국 범죄와 수사의 경계를 넘나들게 되는 결말이 흥미롭다.

‘13호 독방의 문제’의 주인공인 밴 두젠 교수도 그런 점에서는 트레버와 비슷하다. 논리와 지력을 맹신하다시피 하는 그는 어느 날 친구들과 대화 도중, 제 아무리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도 철통같은 감방에서 탈옥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말에 자신이 직접 행동으로 반박해 보이기로 한다. 그 자리에서 곧장 체포되어 사형수 독방에 수감된 그가 약속대로 일주일 만에 탈옥에 성공하는 과정이 스릴 있게 그려진다.

포의 ‘도둑맞은 편지’는 라캉의 욕망 이론과의 관련성 때문에도 잘 알려졌다. 주인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가운데 편지를 훔친다는 설정, 그렇게 훔친 편지를 감추기 위해 “아예 편지를 감추려고 애쓰지 않는” 책략에 의지한다는 과감하고도 독창적인 설정이 인상적이다. 그런가 하면 길버트 체스터튼의 ‘비밀의 정원’은 밀실 살인 미스터리의 변형이라 할 법하다. 밀실처럼 봉쇄된 정원에서 목이 잘린 시체가 발견되고, 저녁 식사에 초대된 손님 중 한 사람이 사라짐으로써 그가 범인으로 지목되지만, 머지않아 그 역시 살해당한 것이 확인되면서 사건은 미궁에 빠지는 듯하다. 그 순간, 평소에는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이 떨어지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놀라운 예지와 추리력을 발휘하는 브라운 신부가 등장해 사건을 해결한다.

두 선집에는 암호와 숫자 수수께끼를 둘러싼 사건이 있는가 하면(리처드 오스틴 프리먼, ‘암호 자물쇠의 비밀’), 사고로 시각을 잃은 대신 놀라운 촉각 인지 능력을 지니게 된 탐정도 등장하고(어니스트 브라마, ‘브루크벤드의 비극’), 한동안 시간이 멈추는 초현실적 상황을 소재로 삼은 작품도 실려 있다(앨프리드 에드워드 우들리 메이슨, ‘시계’). 빗나간 추리로 위험을 자초하거나(도로시 세이어스, ‘의혹’), 절체절명의 순간에 기지를 발휘해 위기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도 있다(애거서 크리스티, ‘나이팅게일 별장’).

그러나 아마도 가장 유명한 탐정들이라 할 뒤팽과 홈스, 푸아로의 사건 해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역시 날카로운 관찰력과 합리적인 추리 같은 기본 중의 기본이 중요하다는 사실이겠다. ‘얼룩 끈의 비밀’에서 처음 보는 의뢰인이 기차 편으로 런던에 왔다든가 그 전에 이륜마차를 타고 심하게 흔들리는 진창길을 지나 역에 도착했다는 사실 등을 간파해 내는 홈스의 ‘초능력’은 바로 그런 관찰력과 추리의 결과다. 아울러, 제 아무리 유능한 탐정이라도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교훈 역시 챙기는 게 좋겠다. ‘완전범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명탐정 트레버가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지목해 놓고는 자신의 실수가 드러나자 그 실수를 덮고자 무리수를 두는 결말을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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