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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마치 외국같아”… 36도 폭염에도 테라스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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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이태원·부암동… 속속 등장하는 ‘테라스 맛집’

지난 23일 낮 12시 서울 강남구 청담동. 태양이 쨍쨍 내리쬐지만, 테라스 자리에는 사람들이 가득 찼다. 실내 에어컨 바람은 테라스에 미달했지만, 그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36도 폭염도 큰 문제가 아닌 듯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이 녹고, 망고 빙수도 순식간에 물로 변했다. 여자들은 민소매 원피스에 선글라스, 남자들은 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햇볕을 즐겼다.

조선일보

<문화부> 테라스가 있는 핫 플레이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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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인적 드물었던 거리가 ‘테라스 마법’으로 살아났다. 마주 보고 있는 ‘보메 청담’과 ‘스케줄 청담’, 그 위에 있는 ‘테라스룸’이 ‘테라스 맛집’으로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테라스’는 푸대접의 공간이었다. 테라스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계절인 봄⋅가을은 상대적으로 짧다. 게다가 한국의 여름은 습하고 덥다. 최근 몇 년간은 황사와 미세 먼지의 습격까지. 야외 운동 할 때 자외선 차단 패치까지 붙일 정도로 희고 잡티 없는 피부를 선호하는 경향도 컸다. 유럽에서는 한국인 관광객을 구별하는 기준이 ‘양산’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최근 잘나가는 공간의 특징은 ‘테라스’다. 위 세 곳뿐 아니라 서울 용산구 경리단길 ‘보마켓’, 서울 종로구 부암동 ‘몽유도원 도이창’ 등 테라스로 승부하는 카페가 적지 않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 등에 새로 생기는 카페나 레스토랑은 어떻게든 테라스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과제. 테라스의 신분 상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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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테라스가 있는 핫 플레이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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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적이고 로맨틱한 분위기

“가로수가 늘어선 거리의 한 테라스 하우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 집에서는 아이들의 외침과 어른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알랭 드 보통의 ‘행복의 건축’은 이렇게 시작한다. 유럽에서 ‘테라스’는 필수 공간이었다. 프랑스 파리의 양대 카페인 ‘카페 드 플로르’와 ‘레되마고’처럼 유럽에서 1층에 있는 카페나 식당은 테라스가 필수다. 화가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밤의 카페 테라스’도 프랑스 아를에 있는 실제 카페를 배경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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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테라스가 있는 핫 플레이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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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인지 최근 테라스 인테리어의 핵심은 이국적인 분위기에 있다. 보메 청담에 있던 한미영씨는 “식물들로 가득 찬 테라스에 있다 보니 이 거리가 방콕 도심인지, 청담인지 헷갈릴 정도”라며 “코로나 때문에 외국에 못 나가 답답했는데 앉아서 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만 보고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해외 경험이 많은 20~30대는 해가 나면 피하지 않고 그걸 쬐던 서구적 라이프스타일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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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테라스가 있는 핫 플레이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코로나 사태로 황사와 미세 먼지가 줄어든 것도 이유 중 하나다. 기상청에 따르면, 최근 2주간은 높은 온도에도 습도는 예년보다 낮아 그늘만 들어가도 시원하기도 했다. 보마켓에 있던 이진아씨는 “테라스에 앉아 하늘만 바라보고 있어도 상쾌하다. 얼마 전 보랏빛 하늘은 너무 예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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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마켓 공식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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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채광에 사진 잘 나와

테라스란, 건물에서 직접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튀어나온 공간을 말한다. 고대 그리스 로마는 물론, 중동 지역에서도 일찍이 애용되던 건축 양식. 고층에 있는 튀어나온 야외 공간을 특별히 ‘발코니’라 호명한다. 3층에 있는 ‘테라스룸’은 엄밀히 따지면 ‘발코니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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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부> 테라스가 있는 핫 플레이스 /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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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공간의 가장 큰 장점은 자연 조명 효과로 예뻐 보인다는 점이다. 그렇다 보니 이곳에는 “서울 시내 미남, 미녀들은 다 모인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연예기획사 캐스팅 관련자들도 자주 등장한다고 한다. 사진도 잘 나온다. 몽유도원 도이창에 앉아 있던 이진리씨는 “테라스에 앉아 사진을 찍으면 필터 앱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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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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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스는 로맨틱한 분위기를 내기도 한다. 일본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이름도 ‘테라스 하우스’다. 그래서인지 ‘스케줄 청담’은 젊은 남녀 만남의 장소로도 유명하다. 건축가 양진석은 자신의 책 ‘집 짓다 담다 살다’에서 “오롯이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는 탁 트인 테라스 공간은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준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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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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