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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이슈 끊이지 않는 성범죄

군사법제도 보면 ‘공군 성추행 은폐 의혹’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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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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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제20전투비행단에서 성추행 피해를 당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모 중사의 지인이 7일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분향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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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여성 부사관 성추행 은폐 의혹 사건으로 군 사법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군은 조직의 특수성을 이유로 민간과 다른 군사법제도를 운영한다. 7일 경향신문이 법조계 전문가에게 자문해 현행 군사법원법을 분석한 결과 검찰·법원이 모두 지휘관에게 종속돼 불공정한 수사·재판이 이뤄지기 쉬운 구조였다.

군검찰 검사는 군사법원법상 부대 지휘관에게 소속돼 지휘·감독을 받는다. 보통검찰부는 육군 사단급, 해군 함대사급, 공군 비행단급 부대에 설치돼 부대 내 사건을 수사하고 기소한다. 군검사는 부대 지휘관에게 사건을 보고하며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 지휘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부대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일어나면 지휘관의 평가와 승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은폐할 가능성이 높은 구조다.

국방부 검찰단은 공군이 성추행 사건을 축소·은폐했는지 수사 중이다. 공군 제20전투비행단 보통검찰부는 지난 4월7일 군사경찰(구 헌병)로부터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송치받았지만 피해자 이모 중사가 지난달 22일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까지 피해자나 가해자를 조사하지 않았다. 가해자인 장모 중사를 구속하지 않았고 휴대전화 압수수색 영장은 지난달 27일 발부받고도 집행하지 않았다. 장 중사를 조사하며 휴대전화를 임의제출 받은 날은 이 중사가 숨진 뒤인 지난달 31일이었다. 제20전투비행단은 이 중사가 숨지자 다음날 국방부에 단순 변사 사건으로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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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법원 판사는 부대 지휘관이 아닌 국방부와 육·해·공군본부 소속이지만 지휘관이 재판에 개입할 여지가 많다. 군사법원은 군단장급 이상 지휘관의 부대에 설치된다. 지휘관은 관할관으로서 재판관을 지정하고 심판관을 임명한다. 군사법원 재판관은 원칙적으로 군판사가 맡지만 지휘관이 지정한 사건에는 일반장교인 심판관이 재판관으로 참여할 수 있다. 지휘관에게는 군사법원이 선고한 형을 3분의 1 미만의 범위에서 감경하는 확인조치권도 있다.

‘노 소령 성추행 사건’에서는 군검찰이 군사법원 판결을 옹호하는 촌극도 벌어졌다. 육군 15사단에서 근무한 여성 장교 오모 대위는 2013년 10월16일 상관인 노 소령에게 10개월 동안 폭언, 구타, 성추행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노 소령의 범행은 2013년 육군본부 국정감사에서 유족이 오 대위의 문자메시지를 공개하며 알려졌다. 2014년 3월 1심 보통군사법원은 노 소령에게 “추행의 정도가 약하고 전과가 없다”며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2심 고등군사법원은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해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1심 판결을 언론이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비판하자 군검찰 수사를 총괄한 김흥석 육군 법무실장은 국방부 기자실을 찾아 “노 소령이 오 대위에게 성관계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농담한 것”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김 실장은 이후 고등군사법원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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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여성 부사관을 성추행한 혐의를 받는 장모 중사가 2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으로 압송되고 있다. 국방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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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피해자 국선변호인 제도를 도입했지만 예산의 한계 때문에 민간 변호사가 아닌 군법무관을 선임하는 경우가 많다. 군법무관은 선후배인 군판사·군검사를 상대로 적극적인 활동이 어려울 수 있다. 군법무관 수가 적어 사건이 많이 몰리기도 한다. 지난해 6월 군범죄 피해자를 위해 군검사가 국선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도록 군사법원법이 개정됐다. 2013년 9월 시행된 국방부 훈령 ‘군 형사절차에서의 성폭력범죄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훈령’에 따르면 민간 변호사도 국선변호인이 될 수 있다. 국방부의 ‘군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한 업무 매뉴얼’을 보면 피해자가 여성인 경우 여성 국선변호인을 우선 배정해야 한다.

이 중사 유족은 이날 국방부 검찰단에 이 중사의 국선변호인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소했다. 이 국선변호인은 선임된 지 50일 만에 이 중사와 처음 통화했고 이 중사가 숨질 때까지 한 번도 면담하지 않았다. 공군본부 법무실은 피해가 접수된 지 6일 만인 지난 3월9일 법무실 소속 남성 군법무관을 이 중사의 국선변호인으로 지정했다. 공군본부에는 여성 법무관이 없었다. 공군은 남성 군법무관 2명이 번갈아가며 국선변호를 담당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는 지난해 7월 군사법원법 개정안을 제출해 국회가 심사 중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1심 보통군사법원을 국방부 장관 소속으로 설치하고 고등군사법원을 폐지해 항소심을 민간 법원인 서울고법이 담당한다. 관할관·심판관 제도도 폐지한다. 군검찰에 대해선 국방부 장관과 각군 참모총장 소속으로 검찰단을 설치한다. 군검사가 지휘관에게 구속영장 청구 승인을 받는 제도도 폐지한다. 군검찰의 독립성 강화를 위해 국방부 장관과 참모총장은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는 소속 검찰단장만을 지휘·감독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군판사는 군검사나 법무참모 등 다른 보직을 맡을 수 없도록 금지한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간 법원과 검찰은 각각 사법부와 행정부로 분리돼 있지만 군대는 군판사·군검사가 가족 같은 원시적 구조”라며 “군범죄 수사·기소·재판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궁극적으로 이것들을 민간으로 옮기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진무·박은하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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