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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3 (목)

코로나 터널 뒤에 도사린 '고용없는 회복' 덫을 우회하라 [Big Pi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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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대한민국 경제의 반등을 이끌고 있는 수출이 가파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사진은 해가 지는 인천공항 화물터미널에서 대한항공 화물기에 수출 화물이 선적되고 있는 모습. [사진 = 매경DB]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상처를 입었던 자리에 새살이 돋아나듯, 혼란스러웠던 경제도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다. 손님들로 북적북적한 백화점의 풍경도, 운동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의 응원 소리도, 공원을 뛰노는 아이들의 표정도 코로나19 경제 충격으로부터 돌아온 모습이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있는데, 고용은 그러지 못했다. 그 현상과 문제의 본질을 살펴보고 대응책을 모색해 보자.

경기회복 신호 보이지만

경제의 3대 주체들이 바삐 움직이고 있다. 가계의 소비도 회복되고, 기업의 투자도 상당 수준 진척되며 정부의 공적 사업도 활발하다. 주요 거시경제 지표인 수출, 투자, 소비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고 있다. 피해가 집중됐던 대면서비스업 경기도 점진적으로 회복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던 항공·여행·면세점업도 백신 보급과 함께 바닥을 찍고 반등하고 있다.

경기종합지수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뚜렷하게 돌아왔다. 경기종합지수는 '국민경제 전체의 경기 동향을 쉽게 파악하고 예측하기 위해 주요 경제지표의 움직임을 가공·종합해 지수 형태로 나타낸 것'으로 정의된다. 즉 숫자 하나로 경제 상황을 보여주는 지표인 것이다.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2021년 3월 103.1로 상당히 강한 회복세로 진전되고 있다. 이는 2002년 104.0을 기록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동행지수 순환변동치도 2021년 3월 100.2를 기록해 경기 확장 국면임을 보여준다.

일자리 잃은 3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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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은 제자리를 못 찾고 있다. 2020년 2분기 대혼란이 시작되면서 수출 계약이 줄줄이 파기되고 공장 가동도, 항공·해운 운항도 모두 멈춰 섰다. 임시·일용근로자들을 중심으로 일자리 대규모 해고가 시작됐고 자영업자들은 버티지 못해 폐업을 단행했다. 취업자가 2020년 2분기 약 41만명 감소했고 올해 1분기에도 약 38만명이 감소해 취업자 감소폭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올해 1분기 실업률은 5.0%로 2019년과 2020년 1분기와 비교했을 때 월등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왜 고용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을까? "원래 그렇다." 무책임한 답변 같지만, 가장 원론적인 답변이기도 하다. 고용은 경기 후행적인 변수이기 때문에 위기 이후 상당한 시간적 격차를 두고 회복되는 경향이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고용이 회복되는 데 약 31개월 걸렸고 2008년 금융위기 때는 약 16개월 소요됐다. 고용주로서는 언제 경기가 다시 악화될지 모르는 불확실성을 떠안고 채용을 할 수도 없고, 그동안 경영 실적이 악화됐던 부분을 인건비를 절약해서라도 상쇄하고자 할 것이다. 실무적으로도 공고, 모집, 선발 등의 채용 절차가 있기 때문에 경기와 고용이 동행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산업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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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투자와 소비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고 있지만 고용시장은 아직도 제자리를 못 찾고 있다. 사진은 중소기업들이 몰려 있는 시흥시 국가산업단지 거리. [사진 = 매경DB]


그렇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그동안의 위기와는 달리 고용이 영구적으로 제자리에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 즉 경제 충격은 일시적이지만, 일자리는 영구적으로 변할 수 있다. 경제 충격과 함께 산업의 구조적 변화가 맞물렸기 때문이다. 비대면화·디지털화·자동화라는 구조적 변화가 함께 찾아왔기 때문에 줄어든 일자리가 다시 늘어날 수 없는 것이다. 경제 충격은 대규모 해고를 이끌었지만, 경제 회복은 채용이 아닌 디지털 기반 투자를 이끄는 것이다.

비대면이 새로운 표준이 되고, 디지털이 일상이 됐다. 금융사들은 영업지점을 축소하고 비대면 금융 서비스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제조사들은 제품을 생산해 판매하는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플랫폼을 활용해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고, 생산공정마저 자동화에 많은 투자를 쏟고 있다. 유통사들은 온라인쇼핑과 라이브쇼핑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고도화하는 데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는 프랜차이즈나 자영업체도 해고한 일자리를 이미 키오스크(무인 주문기)로 대체했다. 바뀐 산업환경에서는 경제가 회복돼도 해고된 인력이 다시 설 자리가 없다.

이러한 현상은 고용의 이중구조를 심화시킨다. 첨단산업 위주로 사업이 재편되고 디지털 전환이 이뤄짐에 따라 더 많은 고급 인력이 필요하다. 하이패스가 보급되면서 요금 수신원의 일자리는 줄어들지만, 하이패스 제조 및 인프라 산업의 인력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챗봇이 확산하면서 전화 상담사 일자리가 줄어들지만, 챗봇 소프트웨어 및 개발 인력은 더 많이 필요하다. 인공지능(AI) 비대면 면접 솔루션이 도입되면서 수만 건의 채용 서류를 검토할 인력이 대체될 수 있지만, 솔루션 기업들은 두 자릿수 성장률로 인력을 확보하고 있다. 고급 숙련 일자리는 늘어나고, 중숙련·중위임금 일자리는 소멸하고 있다. 제조업의 공장 노동자나 서비스업의 요금 수신원, 소위 '운영 일자리(operational job)'가 급감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유수 기업들의 채용 공고를 보면 온통 인공지능·빅데이터 경력직을 찾고 있을 뿐, 운영 일자리는 좀처럼 찾기 힘들다.

되레 실업 부추기는 실업급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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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수요자 측뿐 아니라 공급자 측에서도 구조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 청년들은 '폼 나는 직장'을 선택하거나, 아니면 차라리 '알바'를 선택한다. 즉, 중숙련·중위임금 일자리가 줄어든다고 하지만, 중숙련·중위임금 일자리를 찾는 청년도 없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알 수가 없다. 프리터족(free arbeiter), 즉 특정한 직업 없이 갖가지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젊은 층이 늘고 있다. 대기업의 안정적인 직장이 아니라면, 적당히 일하고 삶을 즐기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심지어 실업급여 제도를 활용해 '힘들게 일해 얼마 버느니, 실업급여 받으며 일 안 한다'는 생각마저 확산하고 있다. 효용을 극대화하는 삶의 방식이요, 개인의 선택일 수 있다.

이마저도 다행인가? 니트족(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이 늘어나는 현상은 문제가 아니라 할 수 없다. 니트족은 정규 교육을 받지도 않고 노동시장에서도 제외돼 있으며 취업을 위한 직업훈련에도 참여하지 않는 청년층을 의미한다.

현대경제연구원에 재직 시 발표했던 보고서 '김광석(2015), 청년 니트족(NEET) 특징과 시사점'을 통해 "고용 대책의 핵심은 청년이고, 청년 고용의 핵심은 니트족"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수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부분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변한 바가 없다. 주식 투자로 돈 벌었다는 몇몇 사례에만 솔깃해 자기 계발과 취업 준비는 뒤로하고 '한탕주의' 기회만 바라고 있다. 장년층은 부동산에, 청년층은 주식 투자에 혼이 빠져 있다. 도대체 '나에 대한 투자'는 어디에 두었는가? 미래를 그리고 꿈을 좇는 청년들의 모습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사실 중소기업은 심각한 인력난에 처해 있다. 코로나19와 관련 없이 고질적인 문제다. 기업의 규모가 커질수록 인력 부족률이 하락하는 경향성이 뚜렷하다. 2015~2019년 평균 인력 부족률은 29인 이하가 4.6%, 500인 이상이 0.4%로 현격한 차이가 있다. 통계상으로는 확인할 수 없지만, 5인 이하 사업체는 얼마나 인력 부족이 심각할지 가늠이 될 정도다. '일자리'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가 부족한 것이다.

양질의 고용창출 머리 맞대야

원치 않는 직장에 취업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지만, 원하는 직장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가능하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근로 조건의 격차가 있다면 정책은 그 격차를 축소하는 데 집중돼야 할 것이다. 중소기업이 유연한 근로환경이나 높은 임금 및 복지 조건을 제공할 수 있도록 정책적 보조가 강화된다면, 청년층에게 선호를 자극할 수 있지 않을까? 네임 밸류의 한계를 극복하긴 어렵겠지만 중소기업의 부족한 부분이 상쇄되고 오히려 청년층이 원하는 근로환경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고용 안전망을 확대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실업급여 등과 같은 안전망을 강화하는 부분에도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 고용 안전망이 오히려 실업을 장려하는 것이 아닐지 고찰해 봐야 한다. 실업이 아니라 근로를 장려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일 안 하고는 못 버티는' 베이비붐 세대에게는 고용 안전망이 실업을 촉진하지 않겠지만, '일하고는 못 버티는' 밀레니얼 세대에게는 오히려 실업을 즐길 수 있게 할 수 있다. 실업자와 비경제활동 인구를 양산하기보다 견실한 취업자를 유도하고 취업 준비나 역량 개발 등을 독려하는 고용제도가 필요하다.

산업 패러다임이 전환하듯, 인력 패러다임도 전환돼야 한다. 초점은 일자리의 규모가 아니라 구조다. 일자리의 규모가 줄어드는 것보다, 일자리의 구조가 바뀌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산업의 비대면화·디지털화·자동화는 '운영 일자리'를 소멸시키지만, 기술 및 경영 혁신을 위한 일자리는 더 많이 요구된다.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생각해 보자. 제품의 총부가가치에서 노동(인건비)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될까? 기술의 비중은 또 얼마나 될까? 지금까지의 교육 제도와 인재 육성 프로그램들이 운영 일자리를 양산하는 데만 머물러 있지 않은지 고찰해 보고 미래에 요구되는 역량을 함양할 수 있도록 청년들에게 안내해 줘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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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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