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이 지난달 5일 공개한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관련 기록 목록.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티에프(TF)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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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이 법원의 사실조회에도 ‘베트남전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관련 기록 공개를 사실상 거부했다. 국정원으로부터 열다섯자짜리 ‘기록 목록’을 받는 데만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3년이 넘는 법정 싸움을 이어온 피해자 대리인단은 진상 규명을 위해 국가기관이 관련 기록을 공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9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국정원은 최근 ‘중앙정보부(현 국정원)가 베트남전에 참전한 장병들을 상대로 퐁니·퐁넛 사건을 조사한 기록 일체를 공개해달라’는 법원의 사실조회에 사실상 거부 취지의 회신서를 제출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민사68단독 박진수 부장판사는 지난달 12일 피해자 응우옌티탄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첫 국가배상 소송의 두번째 변론기일에서 피해자 대리인단의 사실조회 신청을 받아들여 국정원과 국방부에 관련 기록 일체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법원이 행정기관에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관련 기록 일체를 보내달라고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국정원은 “중앙정보부가 1969년 11월 베트남 퐁니마을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해 최영언·이상우·이기동을 조사한 기록 목록은 정보공개 소송 판결을 통해 이미 응우옌티탄 쪽 소송 대리인에게 제공했다”며 “추가적 사항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절차 등에 따라 처리함이 타당하다고 사료돼 송부해드릴 수 없음을 양해해달라”고 회신했다.
이 때문에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관련 기록 공개는 다시 요원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기록을 받아보려면 또다시 정보공개 청구에 따른 긴 법정 다툼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피해자 대리인단이 대법원 확정판결로 국정원으로부터 ‘최영언 부산, 이상우 강원, 이기동 서울’이라고 적힌 15글자에 불과한 문서 목록을 받는 데만도 3년8개월이 걸렸다. 앞서 응우옌티탄의 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는 2017년 8월 국정원에 ‘중앙정보부가 1969년 11월 청룡부대 1대대 1중대의 세 소대장을 조사한 신문조서와 보고서 등 문서들의 목록을 공개해달라’며 정보공개 청구를 했으나 거부 처분을 받자 1~2차 비공개 처분 취소 소송을 낸 바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관련 기록 목록은 이미 소송 판결을 통해 당사자에게 제공했으며, 추가 사항은 법에 정해진 절차 등에 따라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회신해줬다”며 “앞으로도 해당 사안에 대해 관련 법과 법원의 판결 기준에 따라 성실히 대응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리인단은 “국가기관인 국정원이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정보를 왜 숨기고 있는지 납득할 수 없다”며 “법원의 사실조회 요청에 개인이 정보공개 청구를 하라는 것은 제대로 된 답변도 아닐뿐더러, 정보공개 청구를 하더라도 ‘목록 사건’처럼 시간만 끌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퐁니·퐁넛 사건’은 1968년 2월 한국군 청룡부대가 베트남 꽝남성 디엔반시(당시 디엔반현) 퐁니마을 주민 70여명을 살해한 사건을 일컫는다. 당시 8살이던 응우옌티탄은 청룡부대 1대대 1중대 군인들이 쏜 총에 왼쪽 옆구리를 맞아 중상을 입었고, 수술로 목숨은 건졌으나 지금까지 후유증을 겪고 있다. 그의 가족 5명이 목숨을 잃고, 14살이던 오빠는 크게 다쳤다.
조윤영 기자 jy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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